[경향신문] 제약사-병원 리베이트…의료비 한해 2조 증발

제약사-병원 리베이트…의료비 한해 2조 증발
 | 기사입력 2009-07-30 18:32 | 최종수정 2009-07-30 18:47
 
ㆍ내달부터 적발땐 건보가 최대 44%까지 삭감 ‘철퇴’

약품 공급권을 둘러싸고 제약사와 병·의원 간에 이뤄지는 ‘검은 거래’(리베이트) 탓에 한 해 수조원에 이르는 국민 의료비가 낭비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지출된 건강보험재정(30조원) 중 2조원가량이 제약사와 병·의원들의 뒷주머니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됐다. 2조원이면 전 국민 치석제거(스케일링) 비용과 노인 틀니를 무료로 제공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달부터 약품거래 과정에서 병·의원에 ‘뒷돈’(리베이트)을 제공하다 적발되는 제약사에는 해당 약품의 건강보험적용가를 최대 44%까지 깎는 방안을 시행한다.

◇ 리베이트 비용 연간 2조 = 복지부는 30일 이 같은 내용의 ‘유통질서 문란 의약품 약가 인하 기준 고시’를 마련하고 8월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고시에 따르면 리베이트 1차 적발 시 해당 약품 건보가의 최대 20%까지 가격이 깎이고 1년 이내에 다시 적발되면 추가로 24%를 더 깎을 수 있게 했다. 제약사의 수익구조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처벌조항인 만큼 리베이트 근절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복지부의 설명이다.

가장 흔한 리베이트 지급 방식은 약값 채택 대가로 채택료(랜딩비)를 지불하는 것이다. 병원 규모에 따라 월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의 리베이트가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리베이트 처벌 강화조항 시행을 앞두고 아예 1년치를 몰아주는 방식도 등장했다. 약값을 대폭 할인해 주거나 특정 약품 처방 대가로 지급하는 ‘매칭비’(처방비)도 있다. 검사의뢰나 자문·강연비, 세미나와 학회 등에 대한 지원을 통해서도 리베이트가 이뤄진다.

◇ 지나치게 높은 복제약값 등이 원인 = 현행 약품가격제도인 ‘실거래가 상한제’는 병원이 약품을 얼마에 구입하든 건강보험에는 상한가로 약품값을 청구할 수 있다. 예컨대 A약품 상한가가 100원이면 70원에 구입한 뒤 100원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사나 병원 측이 약품을 애써 싸게 구입할 필요가 없어지고 비슷한 효능과 가격을 가진 약품 가운데 리베이트를 많이 주는 약품을 선택한다. 반면 제약사 입장에서는 리베이트 외에는 타사 제품과 경쟁할 요인이 없기 때문에 리베이트를 지급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복제약값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통상 복제약값이 오리지널약의 30%선인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80%까지 약값을 보장해준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국내 제약사들이 리베이트를 주면서도 연간 15% 내외의 높은 영업이익을 남기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의대 의료정책실 권용진 교수는 “현행 약가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실거래가 상한제로 가격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제약사끼리 가격을 통해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경쟁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진식기자 truejs@kyunghyang.com>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