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솜방망이 처벌’이 산재사망 늘린다

‘솜방망이 처벌’이 산재사망 늘린다 
2009-08-07 오후 12:21:45 게재


대형사고 나도 안전모 안전띠 지급책임만 따져
산업안전법위반 입증어려워 시공사 처벌 드물어
5명 죽은 ‘의정부 경전철 사고’ 처리과정 관심

#지난해 1월 경기 이천시 호법면 코리아2000 냉동창고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에 현장에 있던 노동자 40명이 숨지고 10명이 화상 등을 입었다. 당시 지하에서 우레탄발포작업과 용접작업을 동시에 벌이는 등 현장 안전 수칙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대형 참사를 불렀다. 이 사고로 코리아냉장 대표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돼 같은 해 12월 벌금 2000만원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지난 2월 경기도 성남시 동판교 연구소 신축현장 터파기공사장에서 흙막이 벽과 컨테이너 사무실이 무너지며 인부 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이 사고는 안전도가 떨어지는 설계 변경과 부실시공, 현장 안전조치 미흡 등으로 인해 흙막이 벽이 무너지며 발생했다. 경찰은 지난 7월 15일 시공업체 현장소장, 공사과장 등 4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하청업체 현장소장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우리나라에서 공사장 안전사고로 사망하는 수가 일년에 700명이 넘는다. 이렇듯 하루 2명꼴로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일차적으로 안전불감증에 원인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책임자 처벌이 경미해 사고 이후에도 제대로 된 안전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난달 발생한 의정부 경전철 공사현장(사진참조)에서도 5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망자에 대한 보상은 신속히 이뤄졌으나 아직 책임자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기계가 오작동했다는 현장 인부의 증언에 따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기계 결함 여부를 조사하고 있으며 노동부에서도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중이다. 경찰은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자를 사법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지만 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현재 시공사인 A사와 하청업체인 CCL코리아 관계자 등 20명이 경찰 조사를 받은 상태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사업주와 근무자의 안전관리규정과 관련해 “작업수행상 위험발생이 예상되는 장소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만 규정돼 있을 뿐 위반시 명확한 처벌규정은 마련돼 있지 않다.
안전관리규정의 강제성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고 위반 사실이 증명됐다 해도 처벌받는 경우가 적다. 특히 대기업인 시공사의 경우 과실치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를 당해도 항소를 제기하면서 책임을 피해가는 경우가 많다.
외국의 경우 시공사에 큰 액수의 벌금형을 선고하기 때문에 공사현장에 대한 안전관리와 안전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독일이나 호주는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 과실로 판단해 기업에 막대한 벌금을 물린다. 또 영국은 노동자가 찰과상만 입어도 강력한 조치가 취해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망사고의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인데 실제 징역형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벌금형으로 마무리된다.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업주가 처벌 받은 사례는 0.5%도 안 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개 벌금형이나 무혐의 처분을 받는 것으로 종결된다. 벌금 액수도 작아 건설업체들이 안전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에 대한 느슨한 처벌이 공사장 사고를 계속 키운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박종국 노동안전국장은 “사고가 발생하면 공사장 노동자들의 ‘안전불감증’을 탓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공사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도급에 하도급을 주다보니 시공사는 책임을 피해가고 하청업체가 책임을 떠맡게 된다는 얘기다.
박 국장은 “A사는 3년전 9명이 사망한 이천 물류창고 사고 때 시공사였는데 현재 아파트 도급순위 1위를 달리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도 작업자인 하청업체에게만 책임을 돌렸고 A사에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로는 시공사의 책임을 ‘작업을 무리하게 강행’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공사장 인부에게 한달에 1~2번의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안전모, 안전벨트를 지급하면 시공사는 책임이 없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이영록 정책국장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만 강조하다 보니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안전에는 무관심할 수 밖에 없고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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