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월/기획1] 급증하는 안전사고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과제

일터기사

[기획1]

급증하는 안전사고와 전국철도노동조합의 과제
전국철도노동조합 산업안전차장 이태영

철도 현장의 현실

2001년, 수많은 선배동지들의 희생을 딛고 철도에 민주노조가 기치를 내걸었다. 하지만 민주노조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너무나도 많았다. 민영화 등의 철도 구조개악 저지 투쟁, 죽음의 행렬에 조종을 울릴 노동조건 개선 투쟁, 그리고 현장 곳곳에서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철도청과 어용노동조합의 잔재를 청소하는 것 등, 모든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최우선 과제가 철도 구조개악 저지 투쟁임을 확인하고 혼신의 투쟁을 전개하여 왔다. 물론, 노조의 기본적인 요구 사항에 노동조건 개선 등 다른 중요 사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사실상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면서 여전히 한 해에 약 20-30여명의 노동자가 열차에 치이고, 추락하고, 전기에 감전되고, 그리고 과로로 사망하고 있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을 철도 현장에 적용시킴으로써, 노동자의 안전기본권을 확보하였다는 점은 커다란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성과급과 연계된 노동재해 처리방식의 관성이 현장에 남아 있고, 안전을 보장할 근본적인 인력의 충원이나, 근무형태의 변경은 철도청의 방해와 거부로 난관을 거듭하고 있다.

하청 및 비정규직의 투입

그런데 더욱 심각한 현실이 있다. 철도청의 구조조정에 따라 진행된 일부 외주화로 인해, 수많은 비정규 하청노동자들이 안전하지 못한 철도 현장에 투입되면서, 이제는 이들의 죽음과 사고도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더불어 인력감축의 여파가 이제 현장조합원들의 코 앞까지 밀려오면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내년 고속철도 개통에 맞추어 선로 곳곳에서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계약직노동자 채용과 외주화 확대를 모색하는 정부는 적자 운운하며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정규직 철도노동자들을 대체한 이들 외주 하청 노동자들은 안전의 기본적인 조건도 마련되지 않은 죽음의 현장에서 작업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것은 결국 국민들을 대형 철도사고로 몰아붙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제 철도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과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국민이 함께 천길 낭떠러지로 아슬아슬하게 몰리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전국철도노동조합의 과제

향후 몇 달 사이에 철도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은 중요한 고비를 맞이할 것이다. 지난 수년간 공공부문 민영화라는 정부 정책은 철도의 안전사고와 사망재해를 증가시켜 왔으나, 이에 대한 대응은 체계적이거나 본질적이지 못하였다. 그것은 철도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현실인식이 부족했던 노동조합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인력충원쟁취ㆍ노동강도 강화 저지를 목표로 진행할 근골격계 직업병 근절 투쟁’과 ‘주휴일 보장과 근무체제 변경을 목적으로 하는 시범운영의 진행’은 철도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근골격계 직업병의 원인이 다름 아닌 극단적인 노동조건에 있기 때문에 이를 근절하기 위한 모색은 필연적으로 철도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 철도 역사상 처음으로, 철도청과 노동조합이 동등한 지위에서 안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중앙산업안전보건위원회 활동이 시작될 예정이다. 물론 철도청은 형식적인 참여와 노동조합의 요구를 방어하기 위한 공간으로 산보위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산보위를 철도 안전보건의 실질적인 합의기구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를 제대로 운영한다면, 안전장치 없는 작업을 중단시키고, 사고를 유발하는 인력 감축을 막아내는 유력한 논의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철도는 철도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수 천만 명이 철도를 이용하고 있으며, 나의 가족과 친척이 늘 철도를 이용한다. 이들의 안전은 철도 노동자의 안전한 노동과 직결된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기에 더디지만 쉼 없이 노동환경 개선 투쟁에 매진할 것이다.

(Box)
성명서 – 9월 5일 서울기관차 사무소 구내 탈선사고에 대한 철도노조 성명서

열차안전 위협하는 무분별한 계약직 채용 철회하라

철도청의 안전불감증은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인가
계속되는 안전사고에도 불구하고 철도청의 안전불감증은 도무지 치유될 조짐이 없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고모-경산역 간 열차추돌사고에 대한 수습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철도청은 최소한의 안전대책조차 마련하지 않고 수도권전철 심야연장운행과 분당선 연장개통을 강행했다.
특히 분당선의 경우 기존 기관사 1인승무에 더해 신설역을 위탁운영함으로써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도 강력하게 반발하며 안전대책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무분별한 계약직 기관사 채용은 철도안전을 사실상 포기하는 것
7월 1일 파업철회 이후 철도청은 대량징계로 인한 인력공백을 메우기 위해 퇴직한 기관사들을 계약직 기관사로 채용했다. 그리고 향후 고속철도 파견 등으로 부족한 인력에 대해서도 모두 계약직 기관사로 충원할 계획이다.
계약직으로 채용된 퇴직 기관사들은 대부분 고령일 뿐만 아니라 장기간 운전업무에 종사하지 않아 기관사로 채용하기에는 부적합한 자들이다. 더욱이 이들은 현재 충분한 교육과 견습과정을 거치지 않은 가운데 운전업무에 배치되고 있다. 입출고 등 아무리 경사업일지라도 부적격 기관사들을 졸속으로 운전업무에 투입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9월 5일 10시경 서울기관차승무사무소에서 견습 승무 중인 계약직 기관사의 잘못으로 기관차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개황은 도저히 기관사가 운전취급을 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사고 기관사가 발령받은 지 불과 4일밖에 안된다는 점이다. 본청과 현업사무소 할 것 없이 철도청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계약직 기관사 채용을 즉각 철회하라!
철도 안전의 최후 보루이자 투철한 사명의식을 필요로 하는 기관사를 계약직으로 충원하는 것은 사실상 철도안전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재 각 현업 승무사무소에서는 계약직 기관사들의 배치를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안전상의 문제를 고려하여 주로 준비 업무 등에 배치하고는 있으나, 이들로 인해 장기간 본선승무를 하지 않은 준비기관사들이 본선승무로 내몰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년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대다수 준비기관사들은 본선승무에 대해 상당한 부담감을 호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선승무를 위해서는 상당기간 견습승무가 불가피하여 실제 계약직 채용이 인력공백을 메우는데 아무런 기여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16일 건설교통부는 철도안전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철도안전법(안)은 안전의 최후보루인 기관사들을 정부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기관사면허제 도입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계약직 기관사를 채용하고 있는 가운데 기관사면허제를 도입하고 철도안전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안전법(안) 제정에 앞서 계약직 기관사 채용을 즉각 철회하라!

3일터기사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