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 활동가 운동장] 밥하는 여자가 직업병에 걸리면

일터기사

밥하는 여자가 직업병에 걸리면

 

정하나 후원회원, 전국서비스산업노조연맹 정책국장

 

밥하는 노동자들의 폐암

밥하는 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직업병에 걸렸다. 그것도 예후가 안 좋은 심각한 직업성 암, ‘폐암’이다. 초·중·고 학생들을 위해 단체급식을 조리하는 노동자들의 얘기다. ‘전국학 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에 학교 급식노동자 폐암이 처음으로 보고된 것은 2017년이었 다. 수원 권선중학교에서 근무하는 A조합원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권선중에서는 몇 해 전부터 급식실 근무 중 노동자 몇 명이 쓰러져 실려 갔고, 그래서 2016년부터 후드 공 조기를 개선해야 한다고 노동조합이 요구했으나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던 차였다.

A조합원의 폐암 진단 이후 학비노조는 우선 진단을 받은 A조합원의 산재보상을 신청 했다. 학비노조 경기지부를 중심으로는 학교 급식실의 공기질 조사를 공식 요구하는 등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2021년에는 전국의 학교에서 일하는 영양사·조리(실무)사·배 식보조원 약 5,000명을 대상으로 <급식실 산업안전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급식실 근무 이후 암 진단을 받았는지 여부를 묻는 설문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응답한 수가 189명 (3.5%)이나 됐다. 일반인에 비해 20배 이상 높은 결과였다. 폐암 이력 응답자 대부분은 조 리를 담당하는 조리사와 조리실무사였다(98%). 이후 노조는 ‘직업성·환경성암찾기 119’와 함께 환자를 찾아, 집단 산재신청을 진행하는 한편, 교육부와 교육청, 노동부에 환기시설 교체와 단체 급식종사자 특수건강검진을 요구했다. 그 결과 학교 급식 종사자 31명이 폐 암 산재를 신청해 현재까지 13명이 승인을 받았다. 정부는 작년 말 학교 급식 종사자 폐 암 건강검진 실시 계획을 내고, 급식조리실 환기시설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젠더 한계를 넘어선 노동자 건강

대응과정에서 조리노동자 직업성 폐암에 대한 젠더적 편견으로 인한 한계를 쉽게 목격 할 수 있었다. 노동조합이 각 학교와 관할교육청에 급식실 환경의 위험성을 제기하고 개 선을 요구할 때, 조리 시 발생하는 ‘조리흄’이 산안법상 작업환경측정 대상물질이 아니고 조리흄을 측정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급식노동자들이 ‘조리흄’이 유해위험요인임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정부가 이 문제를 노동안전의 문제로 정확히 인지 하고 개선안을 만드는 데까지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조리흄에 대한 연구와 제도 개선이 향후 필수 과제이다.

산재 신청 과정에서도 젠더 편견이 작동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작성토록 하는 ‘재해조사 문답서’에 단체급식 조리사인 경우에만 집에서도 조리를 하는지, 조리 빈도와 열원이 무 엇인지 묻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성 집중 직종인 용접공・광부・정비공에게는 묻지 않는다. 오직 여성 집중 직종인 (집단)급식실 조리종사자에게만 물었다. 현재 이 질문은 문제제기 후 재해조사 문답서에서 삭제됐다.

조리노동자의 직업병을 둘러싼 제도는 “여자들이 매일 해 바치는 밥, 그 밥을 할 때 발암 물질이 나온다니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여자들은 집에서도 매일 밥을 하니 집 밖에서 밥하 는 걸로만 직업성 암에 걸린 건 아니다” 사이를 맴돌고 있다. 상호모순적인 두 편견이 만들 어낸 제도적 해태와 왜곡이 여성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예방하는 데에도, 사후 신속한 요양 과 보상에도 문제가 되었다. 꼭 젠더 편견이 아니더라도 노동자가 걸린 병의 업무적 요인을 가리는 데에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답습하는 비과학적 편견이 작동하는 것을 왕왕 경험해왔 다. 부디 급식노동자의 직업성 암 대응 사례가 이제는 ‘성평등 관점’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 강을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되어야 함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일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