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9 유노무사 상담일기] 지난 10년간 바라본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그리고 앞으로

일터기사

지난 10년간 바라본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 그리고 앞으로

유상철(노무사, 노무법인 필)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도개선을 위한 노사정 논의를 바탕으로, 업무상 질병에 대한 판정의 객관성·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8.7.1.부터 지역본부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를 설치·운영하였다. 의사, 노무사·변호사 등 법률인, 산재보험 전문가, 인간공학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들이 심의를 통해 뇌·심혈관질병, 근골격계질병, 정신질병, 직업성 암 등에 대해 업무 관련성 판정을 한다.
그러나 초창기 질판위는 객관성, 공정성을 보장하는 기관으로 보기 어려웠다. ‘근로복지공단’을 ‘근조(謹弔)복지공단’으로 칭하며 투쟁을 전개하는 시기였다. 2012.3. 서울도시철도 기관사의 자살 사건을 진행하며 서울 질판위 심의에 참석하였다. 다른 위원들은 조용히 눈치만 보고 위원장이 나에게 40분가량 질문을 쏟아붓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사측에서 적극적으로 업무 관련성을 부정하며 주장했던 내용의 반복이었다. 심의 후 노동조합에 “집회신고부터 하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12년 민주노총은 노동안전보건 활동 강화 측면에서 질판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결정하였다. 노동자 건강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위원들을 추천하여 질판위 운영에 변화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이런 계기로 2012.9.10.부터 10년간 서울 질판위 판정위원으로 활동했다. 얼마 전 질판위 실무자에게 “위원님의 판정이 최종 판정 결과와 거의 일치하는 것 같아요”라는 영광스러운 말도 들었다.

질판위에도 변화가
2012.10. 판정위원 자격으로 처음 심의 회의에 참석하였다. 서울도시철도 기관사 자살사건 심의 때 권위로 나를 찍어 눌렀던 위원장과 함께 판정하게 되었다. 당시 위원장이 더 놀란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심의 회의에 참석하는 일은 한동안 없었다. 2012년 1회, 2013년 8회, 2014년 4회, 2015년 6월까지 0회가 전부였다. 2013년의 경우에도 불참한 다른 위원 대신 참석했던 적이 많았다.
초창기 5년은 싸우러 가는 형국이었다. 업무 관련성을 충분히 인정할 여지가 있는 사건에 대해 굽히지 않고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만큼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질판위가 점점 바뀌기 시작하였다. 근골격계 질병에서 ‘퇴행성’이라는 의사의 한마디만 나오면 인정되지 않았던 상황이 직업력, 작업 자세, 노동자의 개인적 특질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경향으로 바뀌어 갔다.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척추협착증’을 비롯해, ‘사인 미상’ 사건이 인정되는 경우도 생겼다.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았던 자살, 정신질환에서도 인정되는 경우가 늘었다.
가장 큰 변화를 체감하게 된 것은 2018년 1월부터다. 이는 업무상질병의 인정기준이 대폭 개선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질판위원들이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선입견보다는 노동자 건강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전국적으로 사건이 증가하면서 2022년 서울 북부, 경남 질판위가 새롭게 설치·운영되고 있다. 2022.7.1.부터 업무상 질환 인정에 관한 노동부 고시가 개정되는 등 변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남은 과제들
하지만 2021년 질판위 판정현황 수치는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질병별 인정률을 살펴보면, 뇌심혈관계 38.6%, 근골격계 66.6%, COPD 79.6%, 레이노증후군 80%, 직업성 암 66.2%, 정신질병 70.8%, 세균성 질병 71.6%, 간질병 42.9%, 기타 66.6%이다. 인정 건수는 16,441건으로 2020년 14,422건 대비 2,019건(14.0%) 증가하였고, 인정률은 63.2%로 전년 동기 63.0% 대비 0.2%P 증가하였다.
다른 질병에 비해 뇌심혈관 질병의 인정률이 특히 낮다. 2017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뇌심혈관 질병 산재 소송 건수 1,079건 중 근로복지공단은 198건 패소하였다.(18.4%) 구체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의 개선, 심의 회의의 전문성·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 9월부터 서울 북부 질판위 판정위원으로 새롭게 위촉되었다. 지난 10년간 질판위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았고, 앞으로도 질판위 제도가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통해 심의 회의에 참석할 계획이다. 위촉 기간이 유지되는 때까지 최선을 다해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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