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노동자를 기계처럼 쓰고 싶은 마음, 탄력근로와 초단시간 노동

일터기사

노동자를 기계처럼 쓰고 싶은 마음, 탄력근로와 초단시간 노동

최민 (상임활동가, 동아시아과로사통신팀)

자본의 필요에 의해 초장시간 노동해온 한국의 노동자
한국에서 주 노동시간 40시간 제도는 2004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 것도 겨우 2011년이다. 게다가 ‘당사자 간 합의하면 1주 12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고, 여기에 주말근무는 포함되지 않는다.’라는 노동부의 이상한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사실상 주 68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했다.
그러다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주 최장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했다. 법을 바꾸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하던 버스 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대형 교통사고가 연달아 발생하고, IT 산업, 택시 운전, 집배원 등 많은 업종에서 집단 과로사가 발생하고 나서야 얻어진 ‘정상화’였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유가족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싸운 뒤에야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 때에도 주말을 제외한 12시간 연장 노동은 유지되었고, 그나마 3개월까지 가능하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6개월로 확대되기도 했다. 이미 한국의 자본은 노동자를 기계처럼, 자본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하는 데 별 지장이 없는 셈이었다.
코로나 유행 시기에 기업들은 특별연장근로를 마음껏 사용하기도 했다. 특별연장근로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와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주당 12시간이 넘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활동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가 2019년 908개, 2020년 4,204개, 2021년 6,477개로 급증하고 있다며 ‘고무줄 노동시간을 견인하는 것은 특별연장근로’라고 지적했다.
거기에 노동시간 단축 효과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2019년 이후 52시간 상한제 도입 초기에 정책 적용 노동자뿐 아니라 미적용 노동자에게서도 실노동시간 감소가 나타났었다. 그러나 올해 8월 ‘상반기 장시간 근로 감독’ 결과에서 감독 대상 498개소 중 470개소(94.4%)에서 연장근로 한도 위반 및 연장근로 가산 수당 과소 지급 등 총 2,252건 법
위반이 있었다. 이 중 48개소(9.6%)에서 주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하도록 했고, 위반 사업장의 평균 연장 노동시간은 주 18.4시간이었다.

증가하는 노동시간 유연화와 초단시간 노동자
새 정부는 이렇게 거꾸로 돌아가려는 흐름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12월 12일 ‘미래노동시장연구회’라는 일군의 전문가들이 ‘노동시간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놓았다. 권고안은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1주 12시간이 아니라, 월, 분기 나아가 1년 440시간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고안대로 주 단위 연장근로를 월 단위로만 확대해도 특정 주는 69시간까지 일하는 게 가능하다. 사실상 한 주에 90시간을 직장에서 보낼 수도 있다. 이전 정권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되었지만, 연차휴가도 제대로 소진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여전히 많고, 회사가 원하는 시기에 강제로 연차를 사용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여러 차례 폐기되었던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다시 ‘권고’하기도 했다.
자본이 필요한 시기에 노동자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꼼수가 개발되는 사이 다른 한편에서는 초단시간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주휴일, 연차, 퇴직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보험 직장 가입에 예외가 된다.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사업주들의 욕망에 따라 2019년 130.2만 명이었던 초단시간 노동자의 수가 2021년에 151.2만 명, 2022년 3월 164.7만 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이 짧은데다 주휴수당이나 퇴직금 배제로 노동시간 비례 이하로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투잡, 쓰리잡을 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 ‘초단시간 과로 노동’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필자가 만난 한 지방자치단체 관현 악단 트럼펫 연주자는 관현악단에서 주 6시간 근무하고, 카페에서 주 3일 24시간 근무하며, 개인 레슨도 3개를 하느라 주 6일 노동하고 있었다.
탄력근로와 초단시간 노동을 늘리는 마음은 결국 같다. 노동자를 기계처럼 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사회에서 노동자 과로사는 사라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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