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 활동가 운동장]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 되기

일터기사

노동안전보건 활동가 – 되기

안태진 (전) 보건의료노조 정책부장

“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인가?”
보건의료노조 활동 마무리를 준비하던 중 기고 요청을 받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노조 활동을 시작함과 동시에 노동안전보건 사업을 맡게 된 지 4년이 지났지만 노안 활동가라고 칭하기는 어렵게 느껴졌다. 연이어 “노안 활동가는 어떻게 될 수 있을까?”란 질문이 따라붙었다. 고민 끝에 ‘노동자 건강권/질병권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활동하는 사람’이라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 여러 정책 사업을 병행하면서 노안 사업을 하다 보니, 노동자 건강을 최우선으로 두고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매번 느꼈다. 그만큼 조직 내에서 ‘노동안전활동가’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들이 꼭 필요하다는 점도 깨달았다.
노조 활동도 처음, 노안 활동도 처음, 병원 사업장도 모르던 내가 본조 정책실의 노안 사업 담당자가 됐을 때의 막막함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노안 사업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선배의 말에 당장 병원 현장 경험을 해야 하나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짧지만 긴 4년 동안 어찌어찌 해왔지만, 지도부와 지부의 요구도가 더 높은 사업을 하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나면 노안 사업은 뒷전이 되곤 했다.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으며 조직의 힘을 만들고 현장과 제도를 바꿔나간 타 노안 활동가들을 보면서 부러움과 조급함,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현장을 직접 바꾸는 노안 활동에 대한 갈증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노동안전보건 기획단을 위원회로 격상시키고, 정기 교육, 각종 체크리스트·모범규정 및 매뉴얼 마련 등에 함께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려 나름 노력했지만, ‘노안 활동’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는 역시 구체적인 현장의 사례를 만나 고민할 때였다.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응하거나, 유해 요인을 개선하는데 지부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하며, 비슷한 사례를 발굴해 공동 대응으로 갈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략조직실과 협업해 병원별 간접고용 노동자 휴게실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사항을 담아 토론회를 열며 개선을 요구한 경험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유해 물질에 노출되어 일하던 지부의 노동자 사례보고를 바탕으로,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직 전체에 공유한 사례 역시 기억에 남는다.
산재 사망 사건에 대한 전 조직적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하고 싶었던 사업이다. 현재는 해당 지부나 담당자의 의지에 따라 대응 여부가 갈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병원 외벽 청소 중 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에 대응하지 못한 것과 의정부 을지대병원 간호사 자살 사건을 노동안전보건 차원에서 접근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와 같이 비교적 젊은 간호사들이 근무 중 뇌동맥류 파열로 쓰러져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경우도 올해 세 건 정도 파악됐는데, 이를 전체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렇게 산재사고/사망 사건을 조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언론이나 지부를 통해 접수된 산재 사건에 대해서 일정한 형식을 갖춰 의무적으로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대응 방향을 의결기구에서 논의하는 절차가 절실하다고 느꼈다.

노안 활동가의 눈으로 보건의료 사업장 다시 보기
불규칙한 교대근무, 인력 부족, 감정노동, 폭언/폭행과 일터 괴롭힘…. 보건의료 노동자가 겪는 핵심적인 고충은 모두 노동안전보건의 문제이다. 산별교섭을 통해 유급 병가기간을 60일로 확대하고, 유급 수면 휴가와 유해 위험 부서 1인 근무 금지를 쟁취하는 등 전 조직적 차원의 노력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유방암, 혈액암 등 각종 암, 감염성질환, 근골격계질환, 수면장애와 각종 정신질환 등 조합원들이 겪는 구체적 상병에서 직업적 인과관계를 찾아내어 제도적 보장을 확대하는 작업은 부재하다. 여성노동자가 80%가량인 사업장 특성을 반영한, 젠더 관점을 반영한 위험성 평가 도구 개발 등의 활동도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학연금 직무상 재해보상 제도 개선방안에 관해 신청 절차 개선, 절차 전반에서 재해자를 비롯한 노동자의 참여권을 높이는 투쟁은 단기과제로 가져가야 한다.
그동안 보건의료노조에서의 노안 활동은 성과보다 과제를 많이 남기고 마무리하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노동자 관점의 안전보건을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는 경험의 시간이었다. 언젠가는 스스로를 노안 활동가라고 칭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노동운동의 모든 활동가가 노안 활동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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