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 유노무사 상담일기] 기숙사 생활을 경험하며

일터기사

기숙사 생활을 경험하며

유상철(노무사, 노무법인 필)

변하지 않아 온 기업 기숙사 제공의 이유, 생산효율 증대
최근 일 때문에 한 기업 기숙사에서 1주에 2~3일간 생활하고 있다. 침대가 있고 화장실이 딸린 2인 1실을 혼자서 사용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불편하기 그지없다. 출근을 위해 아침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무표정해 보인다. 일하기 위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이 유쾌, 상쾌, 통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퇴근 후 휴식하거나 삼삼오오 술 한잔 걸치러 가는 발걸음에서 그나마 활기를 찾을 수 있다.
기숙사 관련 규정은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부터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근로기준법」 제98조(기숙사 생활의 보장)는 “① 사용자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부속기숙사에 기숙하는 근로자의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② 사용자는 기숙사 생활의 자치에 필요한 임원 선거에 간섭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은 기숙사에서 집단생활을 했다. 중간 규모 이상의 공장 기숙사는 민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난방과 온수, 세탁장, 텔레비젼, 오락실 등 근대의 외양을 갖추고 있었다. 잔디가 깔린 공장시설과 함께 근대 시설을 갖춘 기숙사는 시골에서 올라온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근대 시설이 노동자들에게 개인 생활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숙사는 공장과의 연결을 극대화하면서 노동자들이 밤중에 자다가도 작업 현장에 투입되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감시와 규율의 강제가 항상 작동했다는 점에서 기숙사는 자유로운 삶의 공간이라기보다는 감옥 같은 곳으로 회상되는 공간이었다.” (창비, 「한국현대생활문화사, 1970년대」)
해당 책은 1960~70년대 당시 노동자들의 집단생활 양상을 서술하며 집단정체성과 연대감의 조성, 각종 소모임을 통해 감시와 통제에서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나가는 노동자들의 삶과 노동운동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통해 더 말하고 싶은 것은 기업이 기숙사를 제공하는 본질적인 이유와 상황은 1953년이나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나 2023년 현재나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기업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기업이 기숙사를 제공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생산의 효율을 증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조건을 넘어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춰야 하는 건 사업주의 의무
2023년 3월, 「임시가건물은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다」라는 기사를 마주했다. “민주노총과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은 (중략)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임시 가건물 기숙사 전면 실태조사 및 근본 대책을 촉구하는 집단 진정을 냈다. 진정서에는 △컨테이너, 샌드위치패널 등 임시 가건물 기숙사 실태 전면 조사, △임시 가건물 기숙사 금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숙사 보장 등”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임시 가건물을 제공하면서 되려 비싼 비용을 요구하거나 숙소 변경을 위해 사업장을 옮기라면서 금전을 갈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고용허가제 문제와 맞물려 이주노동자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실정도 담겨 있었다.
굳이 쾌적한 주거환경을 붙이지 않더라도 인간이 살기 위한 기본적인 여건을 마련하면 되는 것인데, 먼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다.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 농촌 청년들의 이농현상과 이주노동자의 농어촌 유입 상황은 궤를 같이하는 듯하다. 10년 뒤에 이런 기사를 다시 접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든다.
2023년 「근로기준법 시행령」은 기숙사가 충족해야 할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제55조(기숙사의 구조와 설비) “사용자는 기숙사를 설치하는 경우 1. 침실 하나에 8명 이하의 인원이 거주할 수 있는 구조일 것, 2. 화장실과 세면·목욕시설을 적절하게 갖출 것, 3. 채광과 환기를 위한 적절한 설비 등을 갖출 것, 4. 적절한 냉·난방 설비 또는 기구를 갖출 것, 5. 화재 예방 및 화재 발생 시 안전조치를 위한 설비 또는 장치를 갖출 것”, 제56조(기숙사의 설치 장소) “사용자는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습기가 많거나 침수의 위험이 있는 장소, 오물이나 폐기물로 인한 오염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등 근로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가 어려운 환경의 장소에 기숙사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
자본이 기숙사를 제공하는 의도는 변하지 않아 왔지만, 그럼에도 기본적 삶을 위한 조건을 보장하는 것은 사업주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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