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 유노무사 상담일기]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를 마치며

일터기사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를 마치며

유상철(노무사, 노무법인 필)

15년 간의 일터 기고를 마무리합니다
2009년 술자리에서 훈구형(한노보연 전 상임활동가)이 “너도 노무사 일만 하지 말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봐야 하지 않겠니?”라는 타박 섞인 제안으로 시작한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의 마지막 원고다. 2009년 4월부터 2023년 8월까지 14년 4개월이 흘렀다. 연구소와 함께 다른 매체에 기고를 이어갈 예정이지만 정기적인 일터 기고는 이번 호가 끝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장거리 운전을 할 때, ‘이번 달 원고는 뭘 써야하나?’ 습관처럼 생각하고 고심했던 세월이 15년이다. 아마도 기고를 마무리하면 한동안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뿌듯함과 시원함이 교차한다.
처음 「일터」 꼭지는 ‘노동상담일기, 여(與)’로 시작했다. 그리고 ‘유노무사 상담일기’로 바뀌면서 ‘더불어 여(與)’라는 부제를 붙였다. 대학 시절 단과대 내 만든 시사토론 동아리 명칭이 ‘더불어 여(與)’였다. ‘더불다, 같이하다, 참여하다, 베풀다’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여(與)’. 당시 꿈꿨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이름을 지었던 것 같다. 그랬던 동아리는 1년이 흘러 내가 군입대를 하며 명맥이 끊어졌다. 그렇게 나만의 추억속으로 사라졌던 ‘더불어 여(與)’가 「일터」 꼭지의 부제로 부활하였고, 15년 간 명맥을 유지하였으니 개인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솔직히 매월 기고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원고가 쓰기 싫거나 바쁜 경우에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넘겨볼 생각도 했었지만 합본호로 출간되었을 때를 제외하고 원고를 싣지 못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술을 마시는 친구가 만날 때마다 “「일터」에서 다른건 잘 안 읽어도 네 글은 꼭 본다”며 「일터」를 통해 나의 고민과 생사를 확인하고 있다는 말을 해 더 매진하기도 했다. 원고를 보내지 않으면 친구한테 한 소리 들을 것 같기도 하고 게을러지는 것 같아 싫었다. 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매월 정기적인 기고일을 지키는 것이 서로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고 꾸준히 이어왔다. 원고 주제를 잡지 못할 경우 연구소 담당자가 그달의 일터 기획 방향을 알려주며 주제를 함께 논의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호작용이 있었기에 지난 15년이 유지될 수 있었다.

상처를 치유해주고 치유받아온 시간
노무사 상담의 대부분은 일터에서 해고되거나 아프거나 죽거나 노동조합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등 유쾌한 일은 거의 없고 힘들고 마음 아픈 일들이 많다. ‘호텔 델루나’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사람들이 노무사, 노무법인에 대해 물으면 ‘호텔 델루나’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상처받은 영혼들이 머물다가는 호텔과 같은 곳이 우리 사무실이라고. 물론 상처받지 않도록 함께 하는 사람이 노무사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노무사 일을 하다보면 나 역시 상처를 받고 위로받고 싶은 때가 있다. 특히 자살 사건을 맡은 경우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의 영혼을 치유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힘든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가 「일터」에 원고를 쓰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연구소의 활동은 영혼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일터의 안전보건 활동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사후적인 수습보다는 사전적인 대응을 위한 활동에까지 확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노무사 일만 하지 않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이 뭔지 찾아보고 그 일을 하고자 했던 과정이 지난 15년 동안 매월 일터에 기고를 할 수 있었던 힘인 것 같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은,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기준 확립, 책임 소재의 명확화, 산업재해 예방,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유지·증진하는데 있다. 그 중 ‘쾌적한 작업환경’을 강조한다. ‘쾌적하다’는 의미는 기분 좋고 상쾌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했던 사건, 사고와 온갖 상담들 중 아직껏 ‘나의 일터가 쾌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다. 앞으로도 연구소에서 「일터」에담는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쾌적한 작업환경이 조성되어 있다’고 당차게 말할 수 있는 일터가 생겨나길 바란다. 쾌적한 일터가 많아진다면 「일터」가 쏟아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현장에서 실현된 것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지난 15년 동안 일터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추억하며, 노무사 일만 하지 않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이 뭔지 계속 찾아가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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