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불규칙한 노동과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는 반도체특별법 도입을 중단하라
2월 3일 더불어민주당의 반도체특별법 정책토론회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국민의힘이 발의한 반도체특별법은 연구개발직 노동자에 대해 주 최대 52시간 상한제 적용을 예외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대해 노사 양측의 의견이 크게 달라 양측 의견을 들어본다는 것이 배경이다. 토론회 개최에 앞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민주당이 반도체법을 수용할 경우 노동자의 큰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했다.
노사 양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이재명 대표는 총노동시간을 그대로 두고 당사자의 동의를 받으면 시행해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발언은 일정기간 동안의 평균 노동시간은 52시간으로 하되, 불규칙한 노동을 통해 주당 69시간까지 가능하도록 하자던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를 떠오르게 한다.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한 노동자와 국민의 저항을 고려할 때 이재명 대표의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다. 왜 재계의 요구대로 노동자 휴식권, 건강권을 박탈할 길을 터주려 하는가? 근로기준법이 정한 1주 노동시간은 주40시간이지만 주52시간으로 이미 유연화되어 있고, 여타 노동시간 관련제도가 있음에도 왜 반도체 업계에서만 노동시간 예외를 또 요구하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는가?
반도체 연구개발 엔지니어들에게 더 많은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국민의 힘과 재계의 주장은 부당하다. 개인의 동의를 받는다고 하지만 삼성전자처럼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회사에게 개인의 자발적인 동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연구개발 노동자들이 지적하듯 경영진의 전략 실패를 노동시간으로 풀겠다는 것은 안일한 발상일 뿐이고, 결국 장시간노동으로 반도체 분야의 엔지니어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회사를 떠날 것이다. 전국삼성전자노조의 삼성전자 연구개발직 904명 대상 설문에서 응답자의 90%가 주52시간제 적용 제외를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재명 대표의 제안대로 총노동시간을 그대로 하되, 불규칙하게 일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69시간 논란으로 이미 국민적 평가가 끝난 사안인데다 이를 반도체분야 연구개발직에 도입할 경우 다른 직군으로 확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결국 불규칙한 노동이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개발직은 지금도 선택적 근로제, 재량근로제 등을 활용하고 있어 집중해서 더 일할 시간이 필요하면 기존의 제도를 활용하는 것으로도 큰 문제가 없다. 2월 3일 토론회 현장에서도 노동계는 SK하이닉스에서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활용해서 좋은 성과를 냈음을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 산업의 발전과 노동시간을 연결하려는 억지주장을 중단해야 한다. 반도체 업계도 연구개발직 노동자를 공짜로 부려먹을 생각보다 필요하면 우수한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투쟁해 이룩한 결과이자 현재진행형인 싸움이다. 재계의 요구를 들어 노동시간 유연화를 더 열고 불규칙, 장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 건강을 악화시키고 노동자 삶을 불안하게 만들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정치권, 그리고 재계는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상을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우리가 지금까지 퇴진 광장에서 함께 목소리 높이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 선언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25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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