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보연 선언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20주년 선언문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본주의가 위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기후와 생태 위기, 극심한 불평등과 민주주의 위기, 다음 세대는 물론 당장 내일의 삶의 전망이 불투명한 재생산 위기. 이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 역시 만신창이가 되고 있습니다. 총체적인 위기에 부딪힌 이 체제를 바꿔내려면 일하는 사람의 단결과 투쟁이 매우 중요하지만, 지난 20년의 위기 속에서 분절된 우리들에게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계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생명, 평등’이라는 가치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직종과 업종, 고용 형태와 지역, 국적과 성별 등 다양한 차이를 가지고 일하는 우리들은,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또 차이를 껴안고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생명, 평등’을 침해하는 체제를 바꾸기 위해 연합할 수 있습니다. 이윤 때문에 사람들이 병들고 다치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모든 사람이 회원이 되어 함께 활동하자는 ‘열린조직’으로 나아가는 이유입니다.

20년이 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각자의 사업장과 지역,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생산 노동과 재생산 노동, 임금노동과 무급 노동의 구분을 넘나들며,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생명을 지켜나가는 전국적 운동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생명을 기치로, 불평등과 분절을 넘어설 계기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넓은 지역과 현장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과정’에 주목하며, 일하는 사람이 이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 노동자 건강의 기본 조건이고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현장 노동자의 경험과 지식을 대항지식으로 구성해나가는 싸움을 계속할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존엄과 생명, 평등을 위협하는 이 사회 체제를 넘어, 다른 사회운동들과 함께 대안적인 삶과 노동을 구성해 나가겠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젠더화된 노동과 사회에 문제제기하는 노동자 건강권 운동을 전면화할 것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매개로 기후와 생태 위기에 도전하는 운동을 펼칠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해 왔던 노동시간과 노동현장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싸움을 일하는 사람 모두의 평등을 실현하는 투쟁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을 쟁취하고, 노동자 스스로 작업장을 통제하여 진정한 노동의 주인으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 쉼 없이 투쟁할 것”이라던 20년 전 창립 선언문의 정신이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이어 온 20년의 달리기를, 여러분과 함께 하는 달리기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창립선언문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 현장에서는 질병과 재해와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자본의 탐욕만을 채우기 위하여 살인적인 수준으로 강화된 노동 강도와 현장 통제가 노동자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와 효율을 명분으로 한 구조조정의 실체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노동 착취에 불과하며, 노동자에게 남은 것은 고된 노동과 망가진 몸뚱아리, 불안정한 삶뿐이다.

이러한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노동현장에 대한 노동자 스스로의 통제권을 쟁취하기 위한 쉼없는 투쟁과 실천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러나 자본의 탐욕은 광폭하고도 간교하여 두 발로는 투쟁하는 노동자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면서, 두 손으로는 노동 분할과 노사 협조의 덫을 놓아 현장의 투쟁력을 봉쇄하려 한다. 그 어떤 저항과 투쟁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 노동운동은 하루빨리 노사협조주의와 대리주의를 벗어나 노동계급의 단결과 흔들림없는 투쟁을 조직해야 할 때다. 노동보건운동은 이에 기여하기 위하여 부문 운동으로서의 한계와 전문주의에 대한 의존을 단호히 떨쳐버려야 한다.

이에 우리는 현장성, 계급성, 전문성을 기치로 한 노동보건운동의 주체로 나설 것을 천명한다. 우리의 현장성은 일상적인 실천과 투쟁을 통하여 현장 노동자를 조직하고 주체를 발굴하는 것이다. 우리의 계급성은 자본의 분열책동과 회유책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게급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문성은 전문주의와 부문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 시기 노동운동의 전략적 기치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업장과 지역의 경계를 넘고 자본이 그어놓은 분열의 덫을 부수어 계급적 노동보건운동의 연대를 담보할 전국적 센터를 건설해 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쟁취하고 노동자 스스로 작업장을 통제하여 진정한 노동의 주인으로 설 수 있는 그날까지 쉼없이 투쟁할 것이다.

2003년 10월 24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