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부유층 빌라 경비원 이례적 산재인정

부유층 빌라 경비원 이례적 산재인정

고급차-출입자 관리등 소홀땐 거센 항의..
스트레스속 24시간 격일근무 사망에 영향

부유층만 사는 빌라에서 늘 긴장해야 하는 업무, 졸기만 해도 항의하는 입주자들에게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사망한 경비원이 경비원으로서는 드물게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았다.

80평형 19세대가 입주한 서울 모 빌라에서 2000년 1월부터 3명의 다른 경비원과 함께 24시간 격일제로 일해온 S모(당시 60세)씨의 업무강도는 일반 경비원의 경우와는 차원이 달랐다. S씨는 대부분 비서나 운전기사를 따로 둔 부유층과 유명인사들 뿐인 거주자들의 승용차 출입 현황과 외부인 출입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했다.

고급 승용차들이 혹시 도난당하거나 파손될까 긴장 속에 감시해야 했고, 잠시 졸기라도 하면 입주자들의 비서나 운전기사들이 관리소장에게 심하게 항의해, 곧바로 질책을 받곤 했다. 수면은 고사하고 근무시간중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었고, 주ㆍ야간을 합쳐 하루 5차례의 순찰, 하루 2차례의 빌라 주변 청소, 연2회의 풀베기 작업까지 모두 S씨 몫이었다.

동료 경비원 중 한 명이 휴가라도 가면 36시간 연속근무를 했다. 더구나 부유한
입주자들의 빌라 내부와는 달리 S씨가 일하는 경비실은 햇볕에 완전히 노출되는데도 냉방장치가 없어 여름에는 무더위와 싸워야 했다.

이렇게 1년 6개월이 흐른 2001년 7월 결국 S씨는 퇴근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말았다. 유족들은 "업무로 인한 사망"이라며 보상을 요구했다가 근로복지공단이 거부하자 유족보상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청구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일반적인 경비업무는 한가한 편이기 때문에 산재 인정을 하지 않아온 판례에 따라 원고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특별11부(정인진 부장판사)는 5일 원심을 깨고 "부유층 빌라에서 유난히 힘든 경비업무를 하며 얻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사망에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한국일보 12.6]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