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어둠속 철길작업 죽음의 그림자 쌩쌩

어둠속 철길작업 죽음의 그림자 쌩쌩

[현장] 참변 잇따른 철도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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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동료 세명을 사고로 보냈으니 이 일에 정나미가 떨어져. 사람 충원 안하면 더 죽을거야.”

인력 크게 부족 휴일도 없이 야근 밥먹듯
정비사도 승무원도 “시민안전 자신없다”

29일 새벽 3시, 의왕역 근처 경부선 선로에서 낡은 철도 침목을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매서운 추위에도 작업을 하는 노동자 10여명의 움직임은 분주하기만 하다. 순간 날카로운 예고음이 들리고, 옆 선로로 기차가 쏜살같이 지나간다.

이 구역은 지난 16일 철도청 수원관리소 선임관리장 권진원(51)씨가 표지판을 치우다 열차에 치여 숨진 곳이다.

“내가 철도청에 취직했을 때는 선로를 정비하는 사람들이 14인 1조로 일했어. 그런데 지금은 6인 1조가 될까 말까 해. 그런데 일은 훨씬 많이 늘었지. 선로노동자들 중에 죽을 고비를 넘기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보면 돼.”

1남 4녀의 아버지였던 권씨는 1974년 철도청에 들어온 이후 계속 시설관리 업무를 맡아온 베테랑. 하지만 그는 인력 부족으로 사망 전 6일간 연속 야간 근무를 한 뒤 사고 당일에도 혼자 서행 표지판을 철거하러 현장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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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새벽 의왕역과 성균관대역 사이에서 철도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야간작업을 하는 동안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철도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구로역에서 문재승(44)씨가 사고 수습처리를 하다 열차에 치여 숨졌고, 7월에는 6일 간격으로 두 명의 노동자가 선로에서 작업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올해에만 모두 9명이 현장에서 세상을 떴다.

현장에서 만난 철도 노동자들은 누적돼온 인력 부족 등 열악한 노동조건이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96년 이후 전체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7700명의 노동자가 감축됐지만 사망자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로 보수 업무에 20여년 종사한 서아무개씨는 “선로 정비를 하는 노동자들은 봄, 가을 내내 선로에서 야근을 밥 먹듯 한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가장 위험한 이 업무를 외주화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전국 시설관리 분야 노동자의 수는 94년 이후 30%에 가까운 1900여명이 줄어, 현재 3000여명에 불과하다. 구로역에서 만난 10년차 승무원 이아무개(45)씨는 “1호선 등에서 계속된 사망사고는 승무원이 대폭 줄어든 이유도 있다”며 혼잡한 곡선 승강장에서 승무원 한 명이 30초 동안 탑승객들의 안전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차량 정비 10년차인 김아무개(45)씨는 “휴일도 없이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하고 집에 오다보니 아들이 학교에서 그린 그림에 아빠 눈을 빨갛게 색칠했더라”며 “피곤한 것도 문제지만, 정부가 앞으로 차량 검수 주기를 1일에서 2일에 한번으로 줄이려 하니 안전문제는 더 심각해질 판”이라고 비판했다.

철도노조의 전상룡 교육선전실장은 “철도청이 지난해 11월에 한국생산성본부에 의뢰한 경영진단 보고서에도 6483명의 추가인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며 “정부는 노동자들과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조속히 인력을 충원해 3조 2교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