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초점> 보팔참사 20년...무엇이 달라졌나

[연합뉴스]<초점> 보팔참사 20년...무엇이 달라졌나 
 

=그린피스, 美에 `환경적 인종주의' 비판
(뉴델리=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꼽히는 인도 보팔참사가 발생한지 3일로 20년이 됐다.

보팔참사는 지난 1984년 12월2일 밤부터 3일 새벽에 마드야 프라데시주(州) 보팔 소재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가스인 메틸 이소시안염 가스 40t이 누출돼 3천50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만명이 부상한 사고.

환경단체들은 그 후에도 2만명 이상이 가스노출 후유증으로 사망했고 50만명의 노출자 가운데 12만명이 호흡곤란과 위장장애 등 만성질환과 유전자 돌연변이 출현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도는 보팔의 비극에서 과연 무엇을 배웠으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인도의 작업장 환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같은 물음에 IANS 통신은 인도 작업장의 안전도가 여전히 `머나먼 꿈'에 불과하고 인도 전역에서는 특히 소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어가고 있다며 지극히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환경단체들이 보팔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생존자의 권리찾기 투쟁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노동단체와 시민.사회단체는 제2, 제3의 보팔참사가 언제 터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

보팔참사 이후 지금까지 인도에서는 최소한 42건의 대형 산업재해가 발생해 25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인도 노동조합센터의 W.R. 바라다라잔 사무국장은 "보팔같은 엄청난 산업재해를 겪고서도 산재사범 처벌법은 고사하고 작업장의 안전과 보건을 보장할 국가 정책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실망스런 일"이라고 개탄했다.

수만명의 생존자들이 당시 가스에 노출된 후유증으로 여전히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다른 곳에서는 지금도 수만명의 주민들이 중금속 폐기물이나 고철 더미에 묻힌 폭발물 사고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보팔참사 현장에는 무려 8천t의 위험천만한 산업 쓰레기가 여전히 치워지지 않은 채 주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유니언 카바이드사와 지난 99년 이 회사를 인수한 다우 케미컬에 대해 참사현장의 정화작업과 관련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환경단체들은 이와 관련, 다국적 기업들이 이같은 인도 정부의 무사안일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제적 환경기준을 준수하지 않고 인도 곳곳에서 유독성 폐기물을 마구 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린피스는 유니레버의 인도법인인 힌두스탄 레버(HLL)가 남인도의 타밀나두 관광지와 자연보호구역에 맹독성 수은 폐기물을 투기해 임산부와 어린이들이 수은중독에 노출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HLL이 수은이 함유된 파손된 체온계를 아무것도 모르는 지역의 재활용 업자에게 헐값에 팔아 넘겼다는 것인데 회사측은 결국 이같은 사실을 시인한 후 현지 체온계 제조공장을 폐쇄했다.

인도에서 산업재해의 위험성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때문이다.

바라다라잔 국장은 "정부가 작업장에 대한 현장조사 관행을 폐지한 이후 현지업체는 물론 다국적 기업들도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의 안정과 건강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에서는 이밖에도 지난 9월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산업단지인 가지아바드에서 이란에서 수입된 철강 부스러기 더미에 섞여 있던 로켓이 터져 10명이 사망하는 등 크고 작은 폭발사고가 수시로 주민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한편 그린피스는 미국이 보팔참사 희생자의 보상과 현장 정화작업 등에 대한 책임을 지금껏 회피하고 있는데 대해 `환경적 인종주의'라고 비판했다고 힌두스탄 타임스가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그린피스의 릭 힌드 법무국장은 "이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지역 공동체 들의 소송에 따른 환경보호청(EPA)의 명령으로 다우 케미컬이 정화작업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오염된 해외 군사기지 인근 지역의 정화 책임을 이미 인정하고 있다"고 상기시키고 "보팔 현장의 정화작업을 하지 않는 것은 다른 나라의 일이라는 이유로 직무를 유기하는 처사인 동시에 `환경적 인종차별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