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산재노동자 ‘희망 어깨동무’

산재노동자 ‘희망 어깨동무’


[서울신문 2005-05-24 08:57] 

  23일 오전 서울 구로동 ‘산업재해노동자 자활공동체’ 일터에서 손가락이 잘리는 등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들이 봉투에 우편물을 넣어 우송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신문]23일 오전 서울 구로동에 자리한 ‘산업재해노동자 자활공동체’
사무실.10여명이 모여 서류봉투에 신문을 넣어 풀로 붙이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리 잰
손놀림이 아니다. 한 마디밖에 남지 않은 손가락, 잘렸다 봉합한 손목. 여느 사람들과
신체조건이 다르다. 하지만 오랜만에 얻은 일감. 얼굴에서 희망이 읽힌다.
산업재해로 불구가 돼 직장에 복귀하지 못한 근로자들이 모여 ‘희망의 일터’를
만들었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취업장벽에 수도 없이 부딪혀야 했던 산재 근로자들.
스스로 일할 기회를 만들었다는 자부심 속에 힘찬 재기를 다짐하고 있다.

●정부지원 없이 재기발판 다져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는 지난 14일 이 자활공동체를 출범시켰다. 산재 근로자들이 정부
등의 지원 없이 자기 힘으로 사업체를 만들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1996년부터
내부적으로 자활사업을 진행해 온 산재노협은 소외된 산재 근로자들에게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 지난 1월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현재 상근자
6명과 시간제 근로자 10여명이 일하고 있다.

자활공동체 근무자는 대부분 손가락이나 손목이 절단된 사람들이다. 지금은 봉투를
인쇄해 신문이나 회보 등을 넣고 이를 우편으로 발송하는 일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노동단체 25곳에서 일감을 받았지만 아직 업무량이 많지 않다. 하루
근무시간이 고작 4∼6시간 정도. 월급도 최저임금 수준밖에 안된다. 그나마 아직 수익이
없어 그동안 모은 기부금에서 700만원 가까운 직원들의 월급을 충당하고 있다.

●취업시장에서 냉대…일터 복귀 지원 절실

하지만 직원들은 다시 일할 수 있게 된 게 그저 고맙다. 상근자로 일하고 있는
이경호(22)씨는 2002년 10월 프레스기를 청소하다 잠금쇠가 헐거워져 금형이 떨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손목이 잘렸다. 봉합은 했지만 팔꿈치 밑으로는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이씨는 지난 4월 치료가 끝난 뒤 인터넷 리크루팅 업체를 통해 여기저기 30여통의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졌다.

“한번은 고졸이란 자격조건에 맞춰 이력서를 넣었는데 그 회사 인사 담당자가 ‘원래
대졸자 모집인데 잘못 보고 지원한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차라리 손목 때문에 뽑을
수 없다고 솔직하게 얘기를 할 것이지 말도 안되는 이유를 갖다붙이는 게 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산재 노동자들이 이런 경험들을 하지요.”

그는 “공동체 출범이 재활이 보장되지 않은 산재 근로자들에게 앞으로의 길을 제시하는
모범사례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2003년 6월 프레스기를 다루다 왼쪽 손가락 3개가 완전히 잘린 정달윤(46)씨도 “다니던
직장에서 사무실 근무라도 하고 싶어 ‘캐드’(CAD·컴퓨터이용 설계)를 배우며 준비하고
있지만, 막상 치료가 끝나가니까 정상적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두렵다.”면서
“이렇게라도 조금씩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산재노협 김재천 회장은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매년 평균 9만여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하지만, 일터로 복귀하는 경우는 절반도 안되는 40% 수준”이라면서
“노동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고,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취업지원
서비스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