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뉴스]여수건설노조 산재 불승인 '울분섞인 눈물만…'

여수건설노조 산재 불승인 '울분섞인 눈물만…'


"밑에서 파이프 라인 한 번 쳐다보고 역학조사 했다니요?"

30일 오후 4시 30분쯤 근로복지공단 여수지사 보상부. 여수지역건설노조 이재빈 조합원이 울부짖으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 조합원은 여수산업단지 등에서 용접공이 작업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만드는 '비계공'으로 17년을 일한 끝에 폐암 3기 판정을 받자 지난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신청을 냈으나 1년이 가까워서야 뒤늦게 결과가 나왔다.

산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수지사는 한국산업안전공단 부설 직업병연구센터에 의뢰했지만 센터는 판단을 하지 못하고 '평가위원회'에 다시 맡겼다.

의사와 노동부 간부 등으로 구성된 평가위원회 위원은 모두 17명으로 이 가운데 4명이 빠진 채 13명이 표결했다. 위원 6명은 산재로 인정했지만 나머지 7명은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조합원과 함께 근로복지공단을 항의 방문한 여수지역건설노조 김행곤 노동안전국장은 "사람의 생명을 과반수로 결정하느냐"며 "근로복지공단 지사장이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지사장과 보상부장은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도와주고 싶지만 의학적으로 결정된 것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보상부 차장이 "소송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하자 김 국장은 "재심이나 소송에서 구제받을 확률이 낮은 것이 뻔한데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느냐"며 울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조합원은 "현장에서 기계에 들어가 발암 물질인 석면과 직접 접촉했다"며 "일하는 곳을 제대로 살펴도 안 보고 무슨 '역학조사'를 통한 산재 불승인이냐"고 당국의 허술한 역학조사를 지적했다.

김 국장 등 지역 노동계 간부들은 29일부터 근로복지공단에 찾아가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산재 불승인 소식이 전해지자 여수지역건설노조와 전남동부경남서부건설노조 조합원 등 2천여 명은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집회를 열어 이 조합원에 대한 산재 승인을 촉구했다.

이기봉 여수지역건설노조위원장은 "이번 산재 불승인은 비단 이 조합원뿐만 아니라 모든 건설노동자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민주노총 여수시협의회 박상일 의장은 "건설 노동자들이 몇 시간 일을 더하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는데도 이를 기꺼이 포기하고 작업 종료 전에 집회에 동참했다"며 "노동자적 연대의식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건설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하며 진입을 시도하는 등 강경한 방침을 정한 데 맞서 경찰은 10여 개 중대 천여 명을 동원해 저지하느라 온종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편, 민주노총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환경운동연합, 서울지하철노조 등은 30일 이 조합원과 관련한 공동 성명서를 내고 "석면 폐암의 산재 인정과 건설 노동자에 대한 석면 종합대책"을 요구했다.

전남CBS 고영호 기자 newsma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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