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작년 産災 손실액 85만명 연봉과 맞먹어

작년 産災 손실액 85만명 연봉과 맞먹어
 

노동부ㆍ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ㆍ매일경제 공동기획
 
 
◆ '재해율 0.7%'안전불감증 걸린 한국 ◆

 
지난 2월의 한 일요일, 경기 판교의 한 공사장에서 지반이 붕괴돼 3명이 죽고 8명이 다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때문에 얼어붙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서 흙막이벽이 붕괴된 사고였다. 사고는 안전불감증에서 비롯됐다. 당시 공사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사고 2~3일 전부터 지반이 약해지면서 붕괴 위험이 감지됐다. 사고 당일 지반 상태와 해빙기 공사장 안전수칙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점검했더라면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신종 플루 감염자가 200명을 넘어섰다고 난리를 치면서 하루 7명이나 죽는 산업재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안전불감증이 만연돼 있다는 얘기다.

산업재해로 인한 직ㆍ간접적인 경제적 손실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산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17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연봉 2000만원을 받는 근로자 85만명 이상을 신규로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전체 근로자에서 재해자 비중을 뜻하는 재해율은 1970년대 4.85%를 기록한 이래 꾸준히 감소해 1995년 1% 미만으로 낮아져 1998년 0.68%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해 0.71%로 10년째 큰 변화가 없었다. 산업현장에서 안전보건 의식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는 얘기다.

지속적인 예방 활동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는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안전불감증은 산업현장을 넘어 사회 곳곳에 퍼지고 있다. 안전보건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기업의 산재 예방 노력이 약해지고 있음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수익성 제고와 비용 절감이 최대 과제가 되면서 가시적인 성과가 안 나오는 산업안전보건 관리 투자가 소홀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노민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최근 안전보건문제가 기업경영, 국가경영 우선 순위에서 소홀히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며 "안전보건 활동만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순 없지만 안전보건 기반 없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현옥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장은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 가능한 경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재해를 획기적으로 줄여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올해 산업재해를 입는 근로자를 1만명 줄인다는 계획을 세우고 중소사업장에 예산 1955억원을 투입해 강도 높은 예방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 10만200개가 집중관리 대상으로 지정돼 교육, 기술,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산재 대부분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데다 추락ㆍ협착(끼임)ㆍ전도(넘어짐) 등 재래형 재해가 절반을 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최근에는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질환 등 직업병이 늘어나고 있어 근로자 건강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직무스트레스,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직업병, 석면 등 일터와 생활 속에서 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안전보건 서울선언 1주년' 기념식이 조촐하게 열렸다. '서울선언'은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린 제18회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채택된 세계 최초의 안전보건 국제헌장이다.

노민기 이사장은 "서울선언이 국내 산업안전보건 수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교두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업보건 분야 최대 국제행사인 제29회 국제산업보건대회도 2015년 서울에서 열린다. 서울이 세계 산업안전보건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노 이사장은 "국제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국내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사고예방을 위해 쓰는 돈은 손실이 아니라 사람과 제품에 투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2년 국내 최초로 산업안전 캠페인을 펼쳤던 매일경제신문사는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공단과 함께 기존 무재해 운동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산업안전보건 선진화 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일터에서의 안전보건문제는 이제 개인과 회사 차원을 떠나 우리 사회와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10여 년간 정체 상태에 있는 재해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범국민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재만 기자]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