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일보] 피로 싣고 달리는 시내버스, 운전은 '서커스'

피로 싣고 달리는 시내버스, 운전은 '서커스'
계약직 기사들, 월 20일 이상 살인적 운행에 졸음등 초죽음
 
 2009년 07월 07일 (화)  안종현 기자 
 
 
지난해 수원의 S 운수회사에 버스기사로 취직한 김상현(가명·50)씨는 운전석에 앉아 매일 잠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피로회복제에 의지하며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다.

"쉬고 싶어도 차마 쉴 수 없어요. 괜히 작업 반장에게 그런말 했다가 인사 점수가 깎이면 그날로 잘리거든요" 계약직인 김 씨는 몇달 남지 않은 정규직 전환때까지는 '울며 겨자먹기'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때문에 김 씨는 새벽 4~5시에 출근해 운행을 마치는 자정 때까지 하루 18시간 이상의 고된 근무를 한달 평균 20일 이상 군말없이 하고 있는 형편이다. 기사들의 수면시간이 부족하니 자연스레 인명을 위협하는 안전사고의 위험도 높아지고 있다.

김 씨는 "한달에 15일 이상을 근무하게 되면 3일을 연속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수 밖에 없는데 그럴때면 너무 피곤해 운전 중 깜빡 조는 경우도 많다. 졸지 않으려고 약도 먹고 세수도 해보지만 잠을 쫒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버스 운수업체의 무리한 운행 요구에 계약직 기사들의 건강권이 침해받고 있다. 특히 이들 계약직 기사들은 과도한 노동 시간에 쫒기고 충분한 수면도 취하지 못한 채 운행에 나서면서 시민들이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러한 버스운행은 인명피해와 직결되는 만큼 계약직 기사들의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S 운수에 따르면 지난달 계약직 기사 188명중 89명은 기본 근무일수(16일) 보다 많은 17일 이상을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중 28명은 20일 이상을 일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단 S 운수업체만의 문제는아니다. 수원의 A 운수업체에서 올해 2월부터 근무한 A(45)씨는 "계약직들의 운행 일정은 작업 반장이 대부분 정하는데 무리하게 일정이 짜여도 대부분 그냥 할 수 밖에 없다"며 "괜히 거부했다가 상급자 눈밖에 나서 좋을게 뭐가 있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실정에도 업체측을 단속할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문제가 심각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20인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 1주 40시간의 근로시간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운수, 물류, 접객 등의 직종은 근로자와의 협의를 통해 근무시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를 이용하던 승객 박유진씨(곡반정동, 37세)는 "운전자가 충분한 휴식을 갖지 않고 운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생명을 담보로 서커스 운행을 하고 있다니 기가 막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S 운수회사 관계자는 "기사들의 과도한 근무 시간이 운행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워낙 일손이 부족해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만 초과 근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노동부 수원지청 관계자는 "기사들의 근무 시간에 대해 운수회사들을 제재할 법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지도를 요구할 경우 일을 더 하고자 하는 직원들까지 선의의 피해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