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산재 협조 답해야 장례 치른다”

“산재 협조 답해야 장례 치른다” 
숨진채 발견된 이주노동자 운구차 막아선 노조...구두합의 후 대치상태 해소 
 
 이시우 기자 hbjunsa@idomin.com

 
베트남 출신 한 이주노동자 시신을 두고 노조가 화장장으로 향하려는 운구차를 막아서는 흔치 않은 광경이 8일 의령군의 한 장례식장 앞에서 벌어졌다.
 
전국금속노조 경남지부와 한국주강 지회 관계자 10여 명은 8일 오전 9시30분부터 의령군 선진장례식장 앞에서 ‘사측이 적극적으로 산업재해보상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며 지난 3일 숨진 호앙반랍(25)씨 시신 운구차량을 8시간 가까이 막았다.

숨진 호앙씨는 지난 3일 의령군 한국주강 2공장에 있는 숙소에서 잠자고 있었고, 이날 아침 함께 방을 쓰던 회사 동료 2명이 그를 깨웠지만 이미 숨져 있었다. 이에 동료들은 이 사실을 회사 관계자에게 알렸다.

사건을 접수한 의령경찰서는 검안결과에 대해 “타살흔적은 없었고, 직접적인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호앙씨는 지난해 12월 13일 국내에서 2년간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으로 와서 함안군 군북면 소재 한국주강(주)에서 일해왔다.

김종철 전국금속노조 한국주강 지회장은 “호앙씨는 지난 9월 104시간, 지난달에는 66.5시간에 이르는 연장근로를 하는 등 사측이 무리하게 휴일 및 연장근로를 시켜 과로사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하지만 사측은 호앙씨가 산업재해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노조 요구에 전혀 확답 없이 미온적인 자세로 일관해 이렇게 운구행렬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라며 운구차량을 막은 이유를 밝혔다.

호앙씨 산재처리에 관여해온 마산·창원·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관계자는 “자체조사 결과 숨지기 직전인 지난 1일에는 오전 8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2시30분까지 철야근무를, 2일에는 오후 5시까지 일하며 적지 않은 피로가 쌓였을 것”이라면서 “사측이 이주노동자들을 지나치게 혹사한 데 따른 돌연사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측은 도의적으로도 호앙씨 산재판정에 협조해야하는데 그러지 않는다”라며 사측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한국주강 사측 관계자는 “유족들 권리를 위임받아온 베트남 대사관 직원, 그리고 노조와 논의해 최대한 빨리 장례식이 끝나도록 협의중이며, 우선 장례처리를 마친 뒤 산재처리는 나중에 판단할 문제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호앙씨 부모들로부터 장례 권한 일체를 위임받아 이날 오전 11시에 장례식장으로 온 주한 베트남 대사관 측은 갑작스런 광경이 벌어지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베트남 대사관 트란쾅두이 노무관은 “부모님으로부터 장례처리 권리 일체를 위임받아 베트남 정부를 대신해 이 곳에 왔는데, 노조 관계자들이 다짜고짜 운구차를 막고 있다”라면서 “본국에 있는 부모님들은 하루라도 빨리 유골이라도 넘겨받길 원하는데 저 사람들(노조 관계자들)이 무슨 권리로 운구차를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라며 당혹스러워했다.

국내에 있는 유일한 유가족인 호앙씨 사촌동생인 호앙반탕(21)씨는 “형이 갑작스레 죽어 너무 가슴 아프다”라면서 “무슨 일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유골이 형 부모님에게 건네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에는 경찰이 출동해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오후 4시께야 서로간 구두약속을 하며 대치상태에서 벗어났다.

한국주강 노사, 베트남 대사관 등 3자는 오후 4시께 구두로 △회사측은 베트남 대사관이 호안씨에 대한 산재요양신청을 할 때 호앙씨와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는데 최대한 협조한다 △베트남 대사관이 자료제출시 노조가 반드시 확인한 뒤 제출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호앙반랍씨 시신은 약 7시간 30분만에 진해 장천화장장으로 옮겨져 화장됐다.

한편 화장된 호앙씨 유골은 베트남 대사관을 통해 부모에게 전달될 예정이며, 베트남 대사관은 이른 시일내 호앙씨에 대한 산업재해요양신청서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할 방침이다.
 
 
2006년 11월 09일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