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업무 관련성 논란

삼성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업무 관련성 논란 
노동단체 "베일 속 작업환경 진상규명해야"...삼성 "작업환경 탓 아니다"
 
 이정구 (yasa3250) 
 
"겉모습은 '깨끗'...작업장은 '악취'"
 
▲ 지난 3일 천안의 한 교회에서는 '첨단산업의 빛과 그림자'라는 주제로 워크숍이 열렸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반도체산업현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했거나 현재 투병중인 환자들의 사례가 집중 소개됐다. 

지난 3일(수) 오후 4시 충남 천안시 하늘교회에서는 '삼성반도체 노동자 직업병 발생에 따른 충남지역 대책위를 위한 워크숍'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를 표방하는 단체 '반올림'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삼성반도체 충남 온양공장에서는 2명의 근로자가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투병중이고, 1명의 근로자가 직장암으로 사망했다.

충남 온양공장과 경기도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던 근로자 중 백혈병이나 암 등으로 사망하거나 투병중인 환자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20명으로 파악됐다.

이밖에도 유산이나 불임, 생리불순, 빈혈, 탈모, 혈액이상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증언이 계속 늘고 있다고 '반올림'은 주장했다.

백혈병 치료중인 김옥이(37)씨는 사례발표 시간에 나와 자신이 근무했던 환경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무장을 하고 작업장에 들어갔다. 영화에서나 보던 우주복처럼 생긴 방진복을 입고 작업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복장은 작업자를 위한 장비가 아니라 제품보호를 위한 장비였다."

"내가 밤낮으로 다루는 용액이 무엇인지, 무슨 성분인지조차도 몰랐다. 화학약품에 찌든 장갑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빨아서 썼다. 매일 그 독한 약품냄새를 맡으며 근무해 왔다.그러는 사이 내 몸이 병들어 간 것 같았다.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유산, 불임, 생리불순 현상이 나타났지만 그런 것은 병도 아니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작업장에 의자까지 모두 치워 하루 종일 선 채로 일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그 일터에서 병을 얻은 것이 너무나도 억울하다."

1991년 19살의 나이로 삼성 온양공장에 입사했던 김옥이씨는 6년간 커팅, 몰딩, 마킹, 벡렙, 오세이 등의 일을 하다 1996년 퇴사한 이후 전업주부로 생활해 왔다. 그러다 2005년 급성 전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해 현재 치료중이다.

'반올림' 관계자는 이외에도 1997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해 설비엔지니어로 근무하다 2004년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던 중 2005년 7월에 32세의 나이로 사망한 고 황민웅씨 등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린 다른 사례도 발표했다.

'반올림'은 백혈병 이외에 암과 또 다른 질병에 대한 제보도 잇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것 투명하게 공개해야"
 
▲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가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근로자들의 사례와 제보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이정구  이종란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급성백혈병은 면역력이 약한 소아나 노년층에서 주로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급성백혈병에 걸린 반도체 근로자들은 비슷한 근로환경에서 생활했던 20~30대의 건강한 청년층이다. 지금까지 개인질환으로 생각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인과관계를 찾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또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고, 반도체산업을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또 건강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을 것으로 우려되는 모든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올림'측은 지난 5월에 국내 13개 반도체 제조업체의 일제 조사 결과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노동부로 보냈지만 노동부에서는 개인정보,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통보해 왔다고 한다.

이 노무사는 "6월에는 화학물질 리스트를 공개하기로 약속했다가 갑자기 공개 약속을 철회했다"며 "최소한 근로자들은 자신이 취급하는 물질이 무엇인지 알 권리가 있고, 그 물질로부터 건강을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데도 무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작업장 사용물질 실태 파악 부족"
 
▲ 단국대 의대 산업의학교실 노상철 교수는 클린산업 자체가 화학물질이 가장 집약된 산업이라고 말했다. 
ⓒ 이정구  노상철 교수

단국대 의대 산업의학교실 노상철 교수는 "클린산업이라는 것이 보기와 달리 화학물질이 가장 집약된 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작업장의 건강문제에 대한 인식과 관리가 미비하고, 사용물질과 작업환경에 대한 평가가 부족해 작업자들의 건강문제 접근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특히 "작업장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까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연구결과 작업장의 사용물질 실태 파악이 부족하다. 또 작업환경 조사를 나가면 평상시와 달리 작업환경이 바뀌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차단되고, 밀봉되고, 철옹성 같은 현장을 어떻게 뚫어야 할까 고민이 필요하다"며 "퇴직자 중심으로 내부사정을 이야기해 줄 제보자들을 많이 확보해 인과관계를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세계 최고의 작업환경 갖춰"

이에 대해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 관계자는 "삼성의 근무환경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해환경이나 유해성이 의심되는 그 어떤 물질도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삼성반도체 온양과 기흥 사업장에만 3만5000명의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다. 이 많은 인원들 중 얼마든지 개인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사업장의 작업환경과 연관 짓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수년 전에 퇴사한 직원이 삼성에 근무했다는 이유를 들어 자신의 병을 삼성의 근무환경 탓으로 돌리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 논리"라며 반박했다. 그는 또 "다른 직원들은 모두 문제가 없는데, 왜 몇 명의 말만 듣고 삼성을 매도하려 하는가. 지금까지 수없이 거쳐 간 근로자들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