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란 말인가? 대체 어쩌란 말인가?
- 또 한명의 철도노동자를 레일 위의 재물로 보낸 우리에게 더 무엇을 원하는가? -
또 한명의 철도노동자가 레일 위의 재물로 바쳐졌다. 새벽녘 어스름한 선로 위에서 다가오는 열차에 외마디 비명도 없이 그렇게 떠나갔다.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오는 죽음의 철도현장을 어쩌란 말인가?.
외치고 또 외치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고, 온몸으로 저항하고 또 저항해도 변함 없이 철도노동자를 재물로 삼아야 하는 철도의 현실을 어쩌란 말인가?
'잘 다녀오세요'라는 가족의 인사를 받으며 출근하고 지금까지 퇴근길에 오르지 못한 철도노동자가 해방 이후 2003년까지 2,322명이 이르며, 매년 평균 30여명에 이르는 것이 철도의 현실이다.
어렵고 힘들다는 경찰공무원 보다, 소방공무원 보다 몇 배 높은 직무사망사고율을 애써 눈 감아버리는 정부와 철도청 덕분에 죽음의 현장은 변함이 없다.
어쩌면 고 권진원 조합원의 사고는 예상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수년전부터 철도노동자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적자해소를 핑계로 수익성만을 지상명령으로 수행해온 정부와 철도청은 열차 이용시민과 철도노동자의 안전에는 더 이상의 관심도 없었다.
철도시설물의 유지·관리업무에 대한 대규모의 외주화·비정규직화는 이미 철도현장을 혼란의 지경으로 몰아 넣은 지 오래다. 외주업체에 의해 수행되는 침목 교환 사업, 그러나 그들에게는 열차운행에 대한 책임이 없다. 60세 계약직 노동자를 6일 연속 철야작업에 투입하는 비인간적 영세업체들에게 침목 교환 작업 이후 열차운행을 위한 서행표지판 철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탁상행정이었다.
외주·비정규직 확대가 낳은 철도현장의 혼란은 고 권진원 조합원에게 그들이 남긴 미숙함을 조치하고 열차를 안전하게 운행해야 하는 철도노동자의 숙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력부족으로 허덕이는 철도현장을 외주·비정규직 확대라는 정부와 철도청의 무책임과 혼란이 대신하고 있다.
철도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철도노동자의 공공철도 요구가 지나친 것인가?,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철도노동자의 절규가, 인간다운 노동을 하고 싶다는 철도노동자의 요구가 지나친 것인가?
2004년 한해 8명의 고인을 보내는 철도노동자의 가슴에 또 한번 근조 리본이 붙어있다. 철도노동자의 가슴에 외주·비정규직 저지, 현장인력 충원의 투쟁리본이 걸려 있다.
지난 수년간 단 한 자도 바뀌지 않은 철도노동자의 가슴에 맺힌 염원을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2004년 11월 16일
전국철도노동조합 중앙쟁의대책위원회
- 또 한명의 철도노동자를 레일 위의 재물로 보낸 우리에게 더 무엇을 원하는가? -
또 한명의 철도노동자가 레일 위의 재물로 바쳐졌다. 새벽녘 어스름한 선로 위에서 다가오는 열차에 외마디 비명도 없이 그렇게 떠나갔다.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오는 죽음의 철도현장을 어쩌란 말인가?.
외치고 또 외치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고, 온몸으로 저항하고 또 저항해도 변함 없이 철도노동자를 재물로 삼아야 하는 철도의 현실을 어쩌란 말인가?
'잘 다녀오세요'라는 가족의 인사를 받으며 출근하고 지금까지 퇴근길에 오르지 못한 철도노동자가 해방 이후 2003년까지 2,322명이 이르며, 매년 평균 30여명에 이르는 것이 철도의 현실이다.
어렵고 힘들다는 경찰공무원 보다, 소방공무원 보다 몇 배 높은 직무사망사고율을 애써 눈 감아버리는 정부와 철도청 덕분에 죽음의 현장은 변함이 없다.
어쩌면 고 권진원 조합원의 사고는 예상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수년전부터 철도노동자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적자해소를 핑계로 수익성만을 지상명령으로 수행해온 정부와 철도청은 열차 이용시민과 철도노동자의 안전에는 더 이상의 관심도 없었다.
철도시설물의 유지·관리업무에 대한 대규모의 외주화·비정규직화는 이미 철도현장을 혼란의 지경으로 몰아 넣은 지 오래다. 외주업체에 의해 수행되는 침목 교환 사업, 그러나 그들에게는 열차운행에 대한 책임이 없다. 60세 계약직 노동자를 6일 연속 철야작업에 투입하는 비인간적 영세업체들에게 침목 교환 작업 이후 열차운행을 위한 서행표지판 철거를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탁상행정이었다.
외주·비정규직 확대가 낳은 철도현장의 혼란은 고 권진원 조합원에게 그들이 남긴 미숙함을 조치하고 열차를 안전하게 운행해야 하는 철도노동자의 숙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력부족으로 허덕이는 철도현장을 외주·비정규직 확대라는 정부와 철도청의 무책임과 혼란이 대신하고 있다.
철도를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한 철도노동자의 공공철도 요구가 지나친 것인가?,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철도노동자의 절규가, 인간다운 노동을 하고 싶다는 철도노동자의 요구가 지나친 것인가?
2004년 한해 8명의 고인을 보내는 철도노동자의 가슴에 또 한번 근조 리본이 붙어있다. 철도노동자의 가슴에 외주·비정규직 저지, 현장인력 충원의 투쟁리본이 걸려 있다.
지난 수년간 단 한 자도 바뀌지 않은 철도노동자의 가슴에 맺힌 염원을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2004년 11월 16일
전국철도노동조합 중앙쟁의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