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애들 앞에선 웃지만 울고 있는 보육교사

애들 앞에선 웃지만 울고 있는 보육교사
잠시 쉴 휴게 공간도 없이 하루종일 아이들과 씨름
저임금 장시간 노동…교사 66%가 스트레스 호소
“국가 예산지원 더 넓혀 2교대제 등 개선 대책 필요”
 
 
  이완 기자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 이아무개(31)씨는 점심 시간에 음식을 쏟은 아이를 보며 짜증이 일었다. ‘아이들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이미 “왜 쏟았어”라고 소리친 뒤였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원장이 오전에 추가로 맡긴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다.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이 질적·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보육교사들의 노동기본권은 신장되지 않아 이들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 보육교사들의 스트레스는 곧바로 아이들에게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노동건강연대가 261명의 보육교사들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수준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73명(66%)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등 대부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스트레스는 원장이나 학부모 등에게서 받는 ‘관계 갈등’이나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으로 분석됐다.


■ 교사 휴게실이 없는 어린이집

구립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5년 경력의 윤아무개(30) 교사는 “아이들을 계속 돌봐야 하니 휴식시간이 전혀 없다. 일반 직장인들에겐 쉬는 시간인 점심 시간이 우리에게는 아이들 배식과 식습관 관리까지 해야 하는 가장 바쁜 시간”이라고 말했다. 보육교사들은 아이들 곁을 지키기 위해 짧은 시간 안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이들이 잠시 쉴 만한 교사 연구실이나 휴게실 등도 어린이집에는 거의 없다.

보육시설의 90%를 넘는 민간 시설은 더 열악하다. 민간 시설에서 일하고 있는 8년 경력의 한아무개(31) 교사는 “언제라도 원장이 나가라고 하면 그만둬야 하기 때문에 노동 여건을 개선해 달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다”고 했다. 2008년 말 현재 국·공립 시설은 1826곳으로 전체 보육시설 가운데 5.5%뿐이었다.

최근엔 보육교사들이 보건복지가족부의 평가 인증이나 서울시의 ‘서울형 어린이집 인증’을 대비하는 데 시달리는 등 업무도 늘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이미화 박사는 “보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는데, 인증 등을 통해 환경을 개선한다며 설득과 교육은 없이 교사들에게 모두 부담을 씌우는 방식은 문제”라고 말했다. 2006년 실태조사 결과 보육교사들은 평균 10시간가량 일하며 국·공립은 월평균 140여만원, 민간 시설은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노동 여건은 인증 항목엔 들어 있지 않다.





■ 보육교사에게 좋은 직장이 곧 아이에게도 좋은 집



문제는 돌봄 노동의 특성상 보육교사의 스트레스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200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서 미국 학자들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교사의 급여와 보육의 질 간에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유아교육 제공자들이 적게 버는 시장경제에서는 (교사의) 질적 수준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돼 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모든 보육교사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이 보육교사의 이런 형편을 잘 알지 못한다. 6년 경력의 이아무개(29) 교사는 “젊은 엄마들은 우리를 개인 보모쯤으로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공립 시설에 있는 운영위원회에서도 교사들의 노동 여건은 논의되지 않는 형편이다.

서울의 한 구립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조복자 원장은 “국가가 고민해야 할 영역이 보육인데도, 한정된 지원을 받는 시설장의 교육 철학에게만 맡겨 근로기준법 등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심선혜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보육분과장은 “보육교사들이 가장 바쁜 점심 시간엔 함께 일하고 오전과 오후는 나눠 근무하는 2교대제 도입 등을 정부가 서둘러 검토해야 한다”며 “이는 보육의 질을 높이고 실업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