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쌍용차와 경찰, 위험한 사회

쌍용차와 경찰, 위험한 사회 
2009-08-11
안종주 (대한보건협회 기획홍보이사)

평택 쌍용자동차공장 노동자 장기농성 사건이 벼랑 끝에서 극적 타결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와 분노, 자괴감 등을 한꺼번에 안겼다. 농성 노동자 진압과정에서 경찰에 맞아 쓰러져 실신한 노동자를 경찰 여럿이 둘러싼 뒤 방패로 내려찍었다. 군홧발로 밟으며 곤봉으로 마구 내려쳤다.
이런 장면을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본 시민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다. 안쓰러움에 때로는 눈물을 글썽였다. 때로는 분노에 가득 차 얼굴을 찌푸렸다. 뉴스를 보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이것이 진정 2009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란 말인가. 20여 년 전 민주화를 요구하며 벌인 학생시위를 강경 진압하던 5공 때와 80년 광주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국민의 인권이 이렇게 무시되리라고는 1년 여 전만 해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용산 참사에 이어 쌍용자동차 사건은 한국 사회가 정말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했다.
툭하면 경찰이 시위에 참여한 시민과 노동자를 마구 때리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멀리 타국으로 이민이라도 가서 더는 이런 장면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문득 떠올린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쌍용자동차 노동자 진압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정말 위험하다고 느끼게 만든 또 하나의 사건은 발암성 물질이 든 최루액을 경찰이 농성 노동자에게 뿌려댄 일이다. 최루액을 녹이는 데 사용된 ‘디클로로메탄’이라는 유독물질은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필자처럼 보건학, 그 가운데에서도 유해물질을 공부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물질이다.

발암성 물질이 든 최루액 뿌려
이 유해물질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2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독성물질이다. 1급 발암물질은 100종 가까이 되는데 흡연, 간접흡연, 알코올, 석면, 비소, 다이옥신, 벤조피렌, 포름알데히드, 사람유두종바이러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B형 간염바이러스 등 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세균 등이 비교적 잘 알려진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1급은 발암성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상으로 완벽하게 발암성이 입증된 것을 말한다. 2급 발암물질은 동물에서는 발암성이 확실하게 확인됐지만 인간에서는 발암성이 아직 완전하게 입증되지 않은, 하지만 발암가능성이 있는 발암추정물질을 말한다.
몇몇 의료인 단체와 인권단체 등이 경찰 최루액에 발암성 물질이 들어 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들이댔다. 경찰은 인체에 무해하다는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국민을 화나게 만들었다. 무해하다는 것이 그렇게 확실하다면 노동자가 아닌 경찰청장이나 경찰 고위간부에게 디클로로메탄이 가득 들어있는 용액을 매일 세수하듯이 얼굴에 뿌려댈 일이다.
지금이라도 경찰은 디클로로메탄을 사용하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조사해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다. 또한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발암물질을 사용토록 허용한 경찰 책임자를 가려내 일벌백계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외침은 허공에서 곧바로 사라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최근 경찰이 보여준 행태를 보면 메아리조차 없을 가능성이 높다.

공권력도 정당성 잃으면 폭력
1차 대전 때 독일군이 적군에게 염소가스 등 화학무기를 사용한 이야기는 들어보았다. 그러나 농성 노동자 진압이 적과의 전투는 아니다. 이번 진압에서는 첨단 대테러 진압무기가 여럿 등장했고 실제 사용됐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새로운 진압무기 성능 시험 대상이 된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대한민국 경찰이 국민을 상대로 마구잡이로 발암 가능성 물질을 뿌려댔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다. 이를 두고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할 수 없다.
공권력은 정당성을 지닐 때, 국민을 위해 사용될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다. 공권력이 정당성을 잃었을 때, 국민을 위해 사용되지 않을 때 우리는 이를 공권력을 빙자한 폭력이라고 부른다. 경찰이 집행하는 일이 반드시 공권력은 아니다. 이번 일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경찰이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선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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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보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