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이 저출생의 최우선 대책이다 –정부의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규탄하며–
지난 19일 윤석열 정부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내놓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에는 어떠한 반전이나 절실한 문제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인구의 감소만이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다. 여성이 한 인간 존재로서 행복하고 안전하게 살아가야 할 권리를 묵살하며 윤석열 정부가 나아가고 있는 매일의 행보 자체가 국가의 비상사태다.
현재 한국의 저출생 현상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증거이다. 한국 20대 여성의 높은 자살율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제한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들이 뒷받침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다. 교제살인과 젠더폭력이 매일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들은 매순간마다 생존과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공포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 개인의 책임이 되어 경력단절로 이어지고, 뿌리 깊은 성별 노동분업은 여성 노동을 저임금·장시간·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여성들은 노동에 지친 몸으로 가정에 돌아와 가사노동, 양육, 가족돌봄까지 도맡아 수행하는 이중·삼중고의 부담을 떠안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가 내놓은 ‘단기 육아휴직·돌봄휴가’ 등의 대책이란 사회가 돌봄책임을 나누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단지 여성노동자가 일할 시간을 쪼개어 독박 돌봄에 더욱 매진하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여성이 지고 있는 노동과 돌봄이라는 이중 부담을 심화시킬 뿐더러, 여성노동자를 언제라도 돌봄을 위해 노동현장을 떠날 수 있는 부수적인 존재로 여겨지게 하여 성별 노동분업의 장벽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노동자에게 시간 주권이 없는 현실에서, 심지어 이 대책마저도 실제로 적용 가능한 여성노동자는 매우 소수에 불과하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 의해 현실적으로 일상이 ‘반전’될 수 있는 여성들은 과연 존재할 것인가?
내 자녀의 양육을 위해 다른 여성을 착취하라는, 정부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전면 도입’ 대책은 더욱이 용납할 수 없다. 최저임금조차 보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채 이주여성을 착취하며 돌봄의 가치를 저평가하고 ‘시장화’하는 것이 ‘국가가 책임지는 돌봄’의 방식인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른 여성을 착취하면서, 내 자녀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양육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가? 정부의 노골적인 전략은 단지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는 돌봄노동자 전반에 대한 노동의 저평가와 저임금의 합리화 논리로 이어질 것이 명백하다. 실제 제도 안팎에서 대부분의 돌봄을 여성이 수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착취의 다음 단계 역시 결국 여성들이 감당하게 될 것이며, 이는 이미 진행형이다. 대부분 여성들이 종사하고 있는 돌봄노동을 비롯하여 편의점·음식점 등의 직종부터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주장하고, 이에 반대하는 시위 중이던 여성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정부로서, 하청·파견·용역을 노골적으로 부추기고 노동자를 ‘언제라도 갈아치우면 그만인 소모품’인 양 취급하는 정부로서, 과연 이 대책이 진지한 문제의식에 의거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가? 과연 이 정책에 ‘여성’의 존재는 있는가?
한편 불과 50여 년 전 국가 주도로 ‘낙태버스’를 운영하며 여성의 몸을 이용해 국가의 인구 수를 조절하고자 할 때와 마찬가지로, ‘난임시술비를 49세까지 25회에 걸쳐 지원’한다는 현 정부의 대책은 여성을 오직 인구정책의 도구로만 여기고 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난임시술은 고용량의 호르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건강상의 위험과 매회 수술에 비견되는 시술의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위험성을 무릅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정부의 깊이 있는 문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성의 임신·출산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생애주기에서 무수한 삶의 요건들과 중첩되어 있는 중대한 결정이다. 어렵게 진입한 노동시장에서 축출되어 경력단절에 이를 것이라는 두려움이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만으로도 노동시장에서 넘기 힘든 진입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여성들이 임신·출산을 선택할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난임시술’을 지원하기에 앞서, 이러한 원인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또한 난임시술로 인해 산모의 평균 연령과 다태아 임신이 증가하고, 이에 비례하여 모체와 신생아의 건강상의 위험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의료현실에서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산부인과·소아과의 의료인프라는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이처럼 근본 원인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의료인프라 보장조차 없이 확대되는 ‘난임시술비 지원’ 정책은 실효성 없는 빈 껍데기일 뿐 아니라, 오직 여성의 몸에 직접적인 위험부담을 오롯이 전가하며 또 하나의 의료산업을 배불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저출생의 진짜 원인은 이미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이토록 위태롭고 험난한 각자도생의 삶을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이 저출생의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도 이에 가장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만 유독, 고통을 보지 못하는 척 눈을 가리고, 절규를 듣지 못하는 척 귀를 닫은 채, 같은 말과 정책만 십 수 년 째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 내놓은 ‘대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무슨 낯으로 감히 새삼스러운 출생율의 반등을 꾀하는가?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내용 중 ‘국가의 존망이 걸렸다는 엄중한 인식’만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윤석열 정부의 행보라면 새로 태어날 출생아 수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위협받을 것이다. 정부가 마치 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여성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과 귀를 막은 채 단지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할수록 이 위기는 심화될 것이다. 출생률의 반등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저출생의 심화가 사회적 위기로 대두될 만큼 살아갈 희망이 없는 사회에 대해서, 우선 깊은 책임과 반성부터 보여야 한다. 이 사회가 다음 세대까지 재생산되어 유지되어야 마땅하다는 이유를 설득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재생산을 떠안고 있는 여성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진정한 성평등을 지향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사회를 개편해야 한다. 여성들 스스로 안전하고 평화롭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것, 저출생에 대한 모든 대책은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2024년 7월 3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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