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기사 연재] 이재명 정부 9.15 노동안전 종합대책 진단 평가 ②
성평등한 노동안전보건 정책을 위하여
정여진 (한노보연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센터장)
이재명 정권은 집권 초기부터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산재사망 직접보고, 노동안전종합대책의 발표를 포함하여, 줄곧 산재척결에 대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조와 사회단체들이 바빠졌다.
거저 만들어진 기회는 아니다. 노동안전종합대책의 정책들도 ‘아는 사람들만 알던’ 현장 활동가들과 진보적 연구자들의 고단한 분투의 결과물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노동안전종합대책에는 많은 것들이 빠져 있다. 보건과, 예방과, 정신건강이 빠져 있다. 그리고 젠더가 빠져 있다. 일각에서는 보건과 예방과 정신건강은 ‘기다리면 되는’ 문제라 한다. 그러나, 젠더가 빠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글을 읽기 위해서는 단지 몇 명이 더 죽느냐, 더 다치느냐로 비교하는 양적인 사고는 권장되지 않는다. 현재의 노동안전보건정책이 성평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많이 죽고 다치고 아프기 때문이 아니다. 일과 관련된 불건강의 맥락이 다른데도 그 위험이 과소평가되고, 아예 위험으로 인식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여기서의 평등은 동일성이 아닌 차이에 기반한 평등이다. 차이는 역설적인 역할을 한다. 차이를 구실로 우열을 나누고 누군가를 배제하며, 그 결과 위계와 차별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정작 차이는 존중받지 못한다. 그 차이에는 먼저,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여성의 몸에 맞는 장비와 보호구가 일터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고, 생리적 성차가 간과된 채, 유해 물질의 노출기준이 정해졌다. 덧붙여 생물학에 더해진 사회적 환경의 차이로 인한 심리적인 차이도 있다.
다음은 오랜 성별분업 구도에서 오는 경험의 차이이다. 성별분업이 얼마만큼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이고, 얼마만큼 사회적인 산물인지는 논점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성별분업 구도에서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노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당연히 노출되는 위험/유해 요인들도 다를 수밖에 없다.
끝으로, 질병/사고 발생 원인의 사회적 층위에서의 기제의 차이이다. 여성의 경우 건강의 손상이 자본의 이윤 추구로부터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며, 성차별적 사회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성차별적 구조에는 남성의 신체와 정신을 표준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도, 불평등하게 가치 매겨진 성별분업도, 젠더폭력도 포함된다.
이재명 정부 노동안전종합대책의 문제점
이재명 정부를 탄생시키는 데 2030 여성들을 비롯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시민들의 역할이 컸다. 그럼에도 진보정치의 재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권은 노골적인 ‘젠더 지우기’를 지속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요원한 과제가 되어가고 있으며, ‘여성가족부’는 ‘성평등 가족부’가 되었으나, 누구도 여기서의 ‘성평등’을 ‘양성평등’을 넘어선 진일보한 개념으로서 인식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특정 성별을 우선시하지 않는다는 뉘앙스 혹은 ‘여성’지우기가 목적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최근에는 고용노동부 내의 여성고용정책과가 폐지되고 성평등 가족부로 이관된 바 있어, 여성/노동단체들이 반발한 바 있다.
젠더와 다양성의 관점에서는 문제점이 적지 않다. 일단 어디에도 여성과 성소수자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의도적인 지우기인 동시에 능력 미달이기도 하다. 산재예방 5개년 계획 초기부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없었지만 ‘산재취약계층’으로 여성이 언급되었고, 4차 예방계획에서는 여성 다수 고용 3대 업종 대상 건강관리 캠페인 등이 세부과제로 제시된 바 있으며, 5차 예방계획에서는 여성 노동자 특성에 맞는 보호장비, 작업환경 지원이 언급되는 등 문제 인식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물론, 젠더 지우기에 혈안이 된 정권이라면, 자신들의 역량을 성찰할 동기가 없을 것이라, 젠더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는지, 역량이 안된건지 애초에 구분할 필요도 없다.
한편, 일군의 심리학자들이 위험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위험의 특성들에 대해 밝혀 왔는데, 위험에 대한 ‘착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결과가 지연되어 나타나거나 원인이 친숙한 것인 경우, 사람들은 위험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일터에서의 ‘보건’, ‘정신건강’- 이 주제들은 위험 인식 측면에서 불리한데,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보건의 문제가 중요하며, 정신질환이 산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존재 역시 고려가 없다. 88만 명의 장애인들도 노동하고 있으며 4분의 3이 임금노동자이다. 이들은 노동안전에 있어 취약성을 갖고 있는데, 몸에 맞지 않은 장비나 보호구가 문제가 될 수 있음은 물론, 재난 시 대피나, 정보 접근성 문제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이주 노동자들이 겪는 일터의 안전문제를 한낱 언어적 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한 정보 접근의 문제로 축소해버렸다. 또한 고령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조치가 차별과 배제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인식했어야 하나 이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그리고, 정책이 제시된 모양새도 대통령이라는 ‘가부장’의 온정주의와 노-자 간 갈등의 봉합 위에 얹은 ‘협력’이라는 수사였다.
시작되어야 할 정책 대안의 흐름들
ILO는 2013년 성주류화를 위한 성인지적 가이드라인에서, 노동 및 고용형태, 사회적 역할 등에서의 젠더 분할과 생물학적 차이로 인해 작업장 위험·유해 요인에서의 성별 차이가 나타난다는 점을 인정해야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한 근무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산안보건법령은 사업주가 안전보건 관리 및 위험 예방을 함에 있어 성별차이를 고려하도록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EU-OSHA에서도 주로 여성이 수행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한 것으로 간주하는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산안정책과 관련 연구의 관심 대상에서 벗어남에 따라 여성의 일이 위험하지 않다는 근거없는 인식이 더욱 강화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에 독일의 산업안전보건법 제4조 제8항은 산업안전보건조치가 성별에 따른 직간접 효과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명시하였고, 오스트리아에서는 ‘근로감독관의 성인지 향상 프로젝트’를 통해 체크리스트와 지침서를 발간하고 근로감독관을 위한 교육을 하기도 하였다.
젠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문제의 인식만 초창기인만큼 대안의 영역은 공백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대안은 누가 대신 만들어주지 않지만, 국가에 요구해야 할 부분이 있고, 사회운동진영이 주도해서 모델을 만들어 제안해야 할 부분도 있다.
우선, 전자에 해당하는 것들 중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정책 및 법제도에 성평등과 다양성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컨대, 산업안전보건법에 노동자들의 차이(성별, 민족, 인종, 연령, 장애 등에 의한 생물학적/사회적 차이)를 고려한 사업주의 의무를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위험성평가 등의 위험/유해 요인에 사회적 폭력과 차별도 명시되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도 일터의 젠더폭력, 인종주의적 폭력, 혐오범죄의 결과도 중대재해일 수 있음이 명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조업 남성 노동자를 표준으로 전제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재검토하여 여성 집중 업종의 사례가 누락되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두번째는, 산업안전보건본부 내 성평등한 노동안전보건정책 집행을 위한 책임분과 설치를 요구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모든 노동안전보건 관련 통계를 성별화하고, 근로감독관을 비롯한 관계자 및 전문가 대상의 성평등 관점의 교육을 시행하며, 성평등한 근로감독행정을 위한 체크리스트 및 지침서를 제작하는 등의 작업들을 일관성 있게 집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번째는,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여성 할당제를 시행하는 것이다. 물론 당장은 인식의 부족과 대안적 내용의 부재 속에서 형식에 그칠 가능성은 있다.
다음으로, 우리가 먼저 만들어가야 하는 대안 중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젠더 관점의 위험성 평가를 꼽을 수 있다. 그것이 갖추어야 할 원칙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자.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성평등한 정책 수립의 필요성 https://omn.kr/2din9)
이를 현장에 제안하여 함께 연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국에서도 노총이 주도하여 젠더 관점의 위험성평가 체크리스트를 발간한 바 있다.
문제의식의 공유에서 법개정까지
몇몇 전문가에 의해 급조된 정책과 제도가 임기 내에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기초가 튼튼해야 하는 법이다. 무엇보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주체의 확산이 먼저이며, 이것이 이 글을 쓴 가장 큰 목적이다. 그리고, 대안의 흐름을 만들기 시작해야 한다. 연구보고서 속에서만 제안되어 있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이는 현실화된 형태로 가공되어 여러 정책 대안들이 난립하여 현장연구 등을 통하여, 현장의 검증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편, 여성과 성소수자의 노동건강권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구조는 법제도 이상의 것이며, 법개정 운동만 앞섰을 때의 한계들에 대해 익히 보아왔다. 따라서, 우리는 일터 현장의 위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성별화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각자의 현장 바꾸기는 성평등한 노동안전보건 정책의 기반이 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며, 더 많은 주체들과 현장들이 응답하고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러한 기반 하에서 우리의 주장은 법제도에 반영되어 작동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Andrei, V. (2019). BIASES AND INFLUENCING FACTORS IN RISK PERCEPTION. Journal of Community Positive Practices, XIX(1), 10–17.
Messing, K. (2022). 일그러진 몸 : 일하는 여성의 몸, 수치심, 연대에 관하여. 서울 : 나름북스.
구미영. (2020). 성인지적 산업안전보건정책 연구.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윤경. (2025). 2024년 하반기 장애인 경제활동실태조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https://edi.kead.or.kr
<오마이뉴스 기사 연재>
성평등한 노동안전보건 정책을 위하여
https://omn.kr/2g646
댓글
댓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정보통신 운영규정을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