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 기사 연재] 이재명 정부 9.15 노동안전 종합대책 진단 평가 ③ ‘철학과 전략’ 없이 획기적 산재감축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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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9.15 노동안전 종합대책 진단 평가 ③ ‘철학과 전략’ 없이 획기적 산재감축은 불가능하다

최진일 (연구소 당장멈춰팀)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공개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문제를 화두로 던지며 기업과 행정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SPC 등 중대재해 현장을 방문하며 재차 의지를 표명했다. 이후 강력한 처벌과 징벌적 제재를 중심으로 각 부처에 대책을 주문한 결과 지난 9월 15일 노동안전종합대책이 발표되었다. 노동부 장관이 직을 걸고 OECD 평균 수준의 산재사망률을 목표로 내건 것까지 보면 이 정부의 산재감축에 대한 의지만큼은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발표한 종합대책은 천명한 의지만큼의 깊은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

현상에 대한 분석만 있고 정책에 대한 성찰은 없다

강력한 의지 외에도 정부 종합대책의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줄지 않는 사망사고의 원인으로 소규모사업장의 한계, 다단계하청구조, 노동자참여부족, 미약한 제재 등을 거론하고 있다. 단순히 통계상으로 어느 업종에서 어떤 사고가 많다는 단순한 접근을 넘어선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산재예방대책이 왜 이런 문제들을 넘어서지 못했는지는 성찰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대책들도 기존의 방법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수준에 머무르며 새로운 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대책은 지원과 감독의 물량을 늘리는 것이 거의 전부이고, 다단계하청구조도 단속과 기존의 관리제도를 강화하는 것 외에 특별한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 참여제도의 문제나 제재 강화 역시 기존의 정책들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수준으로 새로운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운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기존 정책의 방향이 맞다면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종합대책은 기존의 정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해왔는지,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남겼는지 평가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3년여 전부터 안전관리의 새로운 전략으로 노동부 스스로 강조해 온 ‘자기규율예방체계로의 전환’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도 없다. 얼핏 보면 이제 자기규율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감독관 확충, 지자체 감독권한 부여, 민간기관에 감독역할 부여 등을 통해 전통적인 지시규제적 안전관리체계로 회귀하겠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엄청나게 많은 내용이 들어있는 종합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의 산재예방을 위한 비전과 전략이 무엇인지 쉽사리 해석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전과 전략을 위해서는 향후 5년, 10년을 관통할 수 있는 새로운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철학과 국가 전체를 총괄하는 면밀한 평가가 필요하다.

사업주에게는 포괄적인 책임을, 노동자에게는 보편적인 권리를

흔히들 중대재해처벌법을 경영책임자의 안전확보의무를 명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의미로만 주목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의 또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의미는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지시규제적으로 나열한 안전조치, 보건조치를 넘어 사업주의 안전확보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과거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674개 조항을 위반했는지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의 안전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등 포괄적인 의무 이행 여부가 핵심이다. 이는 단순히 처벌수위를 높이거나 의무조항을 늘리는 것을 넘어서는 법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단초였다. 그러나, 경영계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히면서 시행령으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취지는 퇴색되었고, 사업장에서의 중대재해예방은 또다시 형식화되어가고 있다.

사업주의 포괄적 안전확보의무는 쉽게 말하면 ‘합리적으로 실행가능한 범위 내에서’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의 유해위험에 대해서는 절대적이고 구체적인 의무가 규정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유해위험은 산업, 작업장, 위험요소, 관리시스템 등에 따라서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674개의 조항으로 이 모든 유해위험에 대해 적절한 관리방안을 제시할 수 없으며, 조항의 숫자를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개발되는 신기술과 신공법, 굴뚝산업과 전통적인 고용구조를 넘어 새롭게 성장하는 다양한 산업과 고용구조가 만드는 새로운 위험들은 ‘구체적으로 명시된 안전조치만 취하면 되고,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위반사항이 없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관리할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본래 취지를 되살리는 법 체계의 정비와 함께 규제행정의 방식과 역량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한편,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와 발맞추어 노동자의 안전한 권리 역시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서두에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로서의 알 권리, 보호받을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중지)할 권리 등을 명시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산안법 52조의 문구를 둘러싼 오랜 논쟁이나 이번 종합대책에 이를 보완하겠다며 포함된 ‘시정요구권 검토’ 등의 계획을 보면 서글프기까지 한다. 언제까지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는 지시규제적 조항들이 기대어 하나씩 하나씩 명시되는 방식으로 보장되어야 하는가? 규칙에 명시되지 않은 안전조치는 안해도 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법조항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권리는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도 보장되어야한다는 의미 외에도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어 한다는’ 의미에서도 노동자의 안전하고 건강할 권리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지금의 산안법 체계는 사업주의 의무를 규정하고 사업의 종류, 규모, 금액 등에 따라 일부의 의무를 면제해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편적인 권리가 명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주의 의무에만 기대어 권리를 행사하다보니 노동자대표가 없는 사업장, 산보위 의무대상이 아닌 사업장, 소규모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권리를 실현할 수단이 없고, 이는 실질적으로는 권리의 박탈로 이어진다.

마찬가지 로직에 의해 국적, 신분, 고용형태에 따른 수많은 차별들도 이들의 안전한 권리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산보위 구성 의무를 100명에서 50명으로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노동자의 참여할 권리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래야 100명이든 50명이든 5명이든 각각의 노동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전략수립을 위한 국가 차원의 위험성평가

정부의 종합대책에서 애써 일관된 전략을 찾자면 감독물량의 확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관을 충원하고 지자체에도 감독권한을 주고, 민간기관에도 감독 역할을 부여해서 획기적으로 감독물량을 확대하겠다는 것이 이번 계획의 핵심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전체 사업장수를 생각하면 감독물량이 2.4만에서 7만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감독역량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디에 투입할 것인지 면밀한 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지자체에 맡기는 영역이 30인 미만 제조업사업장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지자체가 그걸 할 수 있다고?’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오히려 지금 당장은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는 감독행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지원정책들이 어떻게 집행되고 있고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안전보건공단을 비롯해 산하의 근로자건강센터와 연구기관들의 역할에는 어떠한 변화가 필요한지, 근로복지공단이 담당하는 보상업무와 지청이 담당하는 예방업무의 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등을 파악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국가의 산업안전보건역량은 감독관의 숫자만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높은 산재율의 첫 번째 원인으로 소규모사업장의 한계를 꼽았다. 그리고 소규모사업장에 대한 대책으로 지원 규모의 확대를 내세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문제는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찾아볼 수 없다.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단순히 50인 미만 사업장의 앙상한 통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소규모사업장들 중 어떤 사업과 어떤 영역에서 어떤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는지 살펴야 한다. 집중적인 감독이 필요한 문제와 과감한 지원이 필요한 문제를 구분해내야 한다.

나아가 도급금지 위험업무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 소규모사업장의 위험을 양산하는 산업의 구조 자체를 개편하는 전략까지도 세워나가야 한다. 지원의 방식에 있어서도 평가와 변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위험관리는 현장과 시장에 맡기고 행정은 비용만 지원하는 간접적인 방식이 얼마나 실효적인지, 한편으로는 국가적인 비용 대비 얼마나 효율적인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감독, 지원, 연구, 보상 등 산업안전보건의 전 영역에서 이러한 전략이 수립되기 위해서는 우선 총체적인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마저도 부실한) 산재통계에만 기반해서 어느어느 산업이 문제고, 이러저러한 사고가 많다는 피상적인 수준의 분석이 아니라 각각의 산업이 어떤 위험들을 내제하고 있는지, 각각의 노동자 주체들이 특성에 따라 어떠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현상에 대한 분석은 가깝게는 해당 산업의 구조와 안전관리방식과 연동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면 감독과 지원행정이 해당 위험에 대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른다

정부는 산재 취약노동자들 중 첫 번째로 이주노동자를 언급했다.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가 일하다 죽는지 아는 사람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다. 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안전보건의 다른 영역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게 고용을 제한하고, ‘외국인 안전리더’을 육성해서 외국어로 안전작업 노하우를 전수하게 하면 이주노동자들의 위험이 줄어들까? 모르겠다. 다만,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경로로 유입되고 어떤 산업과 어떤 일터로 공급되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얽혀있는 수많은 행정기관 (법무부, 노동부, 지자체, 때로는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의 역할도 평가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정착하는 각각의 단계에서 각각의 행정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지 논의 해야 한다. 각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특별한 제한이나 규제가 필요한지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갖추어 나가야 한다.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의 위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교육을 받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자 사업주가 합리적인 수준에서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다. 사고를 일으킨 사업주에게 고용권을 제한할 수 있는데 왜 이주노동자에게 위험한 사업장에서 벗어나 안전한 일터로 이동할 권리는 주지 못하는가? 사업주의 포괄적 의무, 노동자의 보편적 권리에 기초해 위험을 바라보고 총체적인 평가를 통해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오마이뉴스 기사 연재>

https://omn.kr/2g9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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