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1-10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물류•택배 노동자는 언제쯤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까?

일터기사

물류•택배 노동자는 언제쯤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까?

이이령 회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기 침체 와중에도 오히려 성장하는 산업 중 대표적인 것이 전자상거래와 물류·택배업이다. 병원에서 특수건강진단 업무를 주로 하면서, 코로나19가 확산된 작년부터 야간 특수건강진단을 받으러 오는 물류·택배 노동자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이를 몸소 느끼고 있다. 그들을 진료하면서 교차한 여러 생각을 나눠보려 한다.

코로나19 시대, 물류·택배업 성장의 명과 암

특수건강진단을 할 때 의사는 노동자에게 현재 업무와 함께 과거 직업력을 묻는다. 최근 물류·택배업에 새로 진입해 야간작업에 배치되기 전 특수건강진단 대상자들의 과거 직업력은 다양한데, 그 중 코로나19 확산의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이 상당수다. 여행 관련 노동자(여행사·면세점·승무원 등) 외에도 여러 교사(학원·유치원·태권도사범 등), 프리랜서(배우·영상/촬영기사 등), 취업준비생, 각종 자영업자·소상공인들과 목사님까지 있었다. 생계 위기를 겪은 이들에게 한 달 생활비로도 부족한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부족한 대책보다 물류·택배업의 신규 고용이 버틸 수 있는 큰 힘을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물류·택배업계에서는 장시간·고강도 노동이 일상적이라 기존에도 이와 관련한 질병·사망 발생은 심각한 문제였다. 최근 새벽배송으로 인한 야간노동까지 많아진 이 업계에 다양한 사람들이 대거 진입하면서 과로사로 의심되는 뇌·심혈관계질환 및 각종 업무관련 질병과 산재가 다수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도 야기되고 있다.

물류·택배 노동자들의 건강과 야간노동 업무적합성 평가

그렇다면 장시간·고강도·야간노동이 일상인 물류·택배회사들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더 신경써야할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을 보면 의사로서 안타까워질 뿐이다. 법적 필수인 특수건강진단도 법적 적용 범위 때문에, 야간노동을 하는 소수에 대해서만 실시할 수 있다. 이마저도 주로 직고용직 노동자들에게만 하는데, 알려진 대로 물류·택배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용직이거나 하청업체, 특수고용노동자여서 대다수가 배제되고 만다.

그런데 물류·택배 노동자 중 소수만 받는 야간 특수건강진단마저도 의사로서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고려해 잘 하기란 쉽지 않다. 모순되게도, 의학적 관점 하에 노동자의 질병 예방을 강조하다보면,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유로운 노동의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될 수도 있다. 다행히 나에게 오는 물류·택배회사는 직고용 비중이 높은 편인 대기업이며(물론 계약직이 대부분이지만), 배치 전 건강진단결과에 따라 입사를 취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일시적으로 야간근무가 제한되는 노동자라도 주간근무를 하며 치료 후 상태가 호전되면 희망 시 업무적합성 재평가를 통해서 야간근무를 할 수 있는 조건이기에, 의학적 판단에 의한 사후관리 조치에 큰 제한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배치 전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불법적으로 채용여부를 결정하는 회사가 있는 현실에서, 특히 영세·하청소속 물류·택배 노동자인 경우, 의사로서 ‘당신의 건강이 심히 걱정되니 일단 주간에 근무하면서 약물 치료를 잘 한 뒤 3개월 뒤에 보자’는 결정을 하는 일은 입사가 취소되게 만들거나 입사하더라도 인사 상 낙인을 찍는 것 같아 의학적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주저하게 된다.

물류·택배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야간노동 뿐만이 아니다. 21세기의 탄광 막장이라고도 불리며 가장 힘든 노동으로 꼽히기도 하는 택배 상하차 업무 외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물류·택배 노동자들은 중량물 취급, 반복 작업 등으로 인한 근골격계 증상을 겪고 있다. 여름철엔 고온·다습 관련 질환, 신선물류센터가 늘어나는 때는 동상 등 저온 관련 질환도 진료 시 많이 호소한다. 이 질환들은 건강진단 등 법적인 대상도 아니며, 사실상 관리가 되지 않는 형편이다.

과연 그들은 언제쯤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까?

올해 초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발표되었어도 수년간 택배비 100원 올리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치열한 물류·택배회사들의 경쟁 속에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한편, 물류·택배회사들 간에는 자동화·스마트 물류센터를 구축하려는 경쟁도 치열하다. 물류센터 자동화와 배송의 자동화(자율주행차·드론)가 완벽히 구현된다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현재와 같은 장시간·고강도·야간노동의 문제는 거의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자를 극히 줄이는 자동화가 과연 가능한지 또는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도 많다.

어쨌든 단기간에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렵기에 당분간(?) 1주일이면 1~2명쯤은 꼭 마주치는 건강이 심히 우려되는 물류·택배 노동자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일하게 할 것인지, 여러 고민을 하며 머리를 싸매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머리를 더 싸매도 좋으니 모든 물류·택배업 노동자들이 적절한 건강검진·진단을 통해 건강한 상태로 노동했으면 하고, 궁극적으로는 장시간·고강도·야간노동이 없어지는 물류·택배업계가 되도록 모두의 노력과 관심이 지속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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