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1-11 알아보자, LAW동건강] 산업재해보상, 지난한 과정을 돌아보며

일터기사

산업재해보상, 지난한 과정을 돌아보며

이성민 회원, 노무사

 

3년 전 오늘, 농장에서 근무하던 A가 쓰러졌다. A는 20년 넘게 농장에서 근무했으며, 농장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을 도맡아 수행했다. 장시간 노동이 일상적이었으며, 육체노동도 상당했다. 휴일도 없이 일하던 A는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 준비를 하던 중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로 실려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응급수술이 잘 이루어졌고, 생명은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A의 신체 왼쪽은 모두 마비되었고, 반복적인 섬망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A의 배우자인 B는 지인으로부터 산업재해 신청을 권유받았다. B는 곧바로 근로복지공단(이하 ‘공단’)에 요양급여 신청서를 접수했다. 결론적으로 A의 상병은 산재로 인정되었다. 3년간 요양비와 휴업급여를 받았고, 현재 장해급여를 신청한 상태다. 모든 일이 잘 풀린 걸까? 얼마 전 나는 B와 지난 3년을 돌아보았다. B는 산재보험을 고맙지만 ‘복장 터지는 경험’으로 표현했다.

 

1) ‘신청인 문답서’ 작성방법은 알려드리지 않습니다

A의 산재 서류를 제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단에서 ‘신청인 문답서’ 라는 서류가 도착했다. 10장 남짓한 서류에는 A의 업무 내용과 사고 발생 직전 12주간의 업무시간 기록 등 복잡한 질문이 가득했다. 서류를 받아본 B는 당황했다. A는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회사는 사고 직후 A의 사직을 이야기할 정도로 책임을 회피하며 비협조적이었다. 문답서 작성을 위해 어떤 자료를 봐야 할지, 무엇을 적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B는 공단 담당자에게 연락해 막막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별다른 도움은 되지 않았다. 빠른 시일 내에 문답서를 작성해 보내라는 것, 나아가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재해조사를 실시할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B는 문답서로 인해 산재가 인정되지 않을까봐 걱정했다. 결국 지인이 소개해준 노무사의 도움을 받고서야 문답서 작성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B는 노무사에게 산재신청을 혼자서 하는 사람도 있냐고 물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생전 처음 산재를 접한 B에게 공단은 그리 친절한 기관이 아니었다.

 

2) 병원을 찾는 것은 모두 재해자의 몫입니다

2019년 6월 A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었다. 이 무렵 A는 대학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끝낸 뒤 재활요양병원에서 입원치료를 이어가고 있었다. A는 병원을 통해 3개월마다 진료계획 연장 서류를 제출했다. 1년 여가 지나자 공단은 재해자의 치료는 입원이 불필요하다며 통원치료 할 것을 통보했다. 당시 A는 혼자서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보조기에 의존해 몇 걸음 걷는 게 전부였으며, 후유증으로 차량 탑승 시 심한 멀미 증상이 나타났다. 통원치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를 주장하며 심사청구까지 해봤지만, 공단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치료받던 병원은 입원 환자의 재활치료만 가능하다고 알려왔기에, 통원치료를 위해서 자택 주변의 병원을 다시 탐색해야 했다. 공단은 다른 병원을 이용할 경우 ‘전원 신청’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A가 전원할 병원은 산재지정병원이어야 했다. 공단은 비지정병원 치료에 대해서는 요양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둘째, 산재지정병원 중 재활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A의 거주지 인근 산재지정 재활병원들은 이미 치료 스케줄이 포화상태였기에 몇 개월이나 대기해야 했다. 셋째, A가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병원이어야 했다. A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대중교통은 물론 택시 이용도 어려워, 자택에서 최대한 가까운 병원을 찾아야 했다.

B는 최선을 다해 병원을 탐색했다. 그러나 조건에 맞는 병원은 찾을 수 없었다. 공단에 A가 치료받을 수 있다는 병원이 없음을 여러 차례 말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공단은 어떠한 대안도 알려주지 않았다. 병원을 찾는 동안 A는 치료를 포기해야 했다. B는 수십 개의 병원에 직접 연락했고 끝내 택시로 1시간 거리의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갈 수 있었다. 중단된 재활 치료가 우선이었기에, 먼 거리를 오가며 발생할 고통은 A가 산재보험급여를 받기 위해 감내할 숙제였다.

 

3) 우리는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2021년 6월 공단은 A의 요양 종결을 결정하기 위한 평가회의 개최를 알리며 지사로 방문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어떠한 질문도 없이 평가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위원들은 A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지, 팔이 움직이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이후 담당자는 요양 기간이 2개월간 연장될 것이며, 이후 A의 요양은 종결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두 달의 시간이 지나고, 또 다시 요양 종료일이 도래했다. A는 여전히 좌측 팔다리가 마비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당장 다음 달부터 휴업급여와 요양급여가 더 이상 지급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A와 B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답답한 마음에 공단 담당자에게 연락해 진료 계획 연장이 가능한지 물었지만 담당자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지난번에 종결된다고 말했는데 왜 그러세요. 그리고 그때 두 달이나 연장해드렸잖아요” 요양기간이 종료되면 더 이상 산재보험급여가 지급되지 않느냐는 추가적인 물음에 “네”라는 한마디 외에 어떠한 설명도 부연하지 않았다.

A와 B는 노무사와 연락하고 나서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치유’와 ‘장해’ 의미를 이해했고, 왜 A의 요양이 종료되었는지, 장해급여 신청 등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렵고 복잡한 내용은 아니었다. B는 “공단 담당자가 이 내용을 조금만 설명해줬어도 이렇게 마음고생은 안 했을 텐데…” 라며 말을 흐렸다.

 

4) 주치의는 재해자가 직접 설득하세요

우여곡절 끝에 A와 B는 장해급여 신청을 준비했다. 먼저 마지막으로 치료받았던 병원을 찾아 담당 의사에게 장해진단서와 소견서를 요청했다. 의사는 장해진단서 작성을 거부했다. 의사의 답변은 황당했다. “그게 어떤 서류죠? 난 그거 쓸 줄 몰라요.” 산재지정병원 의사가 장해진단서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하니 어쩌겠는가? 다시 공단에 문의하여 상황을 설명하고 방법을 호소했다.

이번에도 공단의 답변은 간단했다. 물론 장해진단서를 써줄 수 없다는 병원의 사정에 대해선 아무런 해결책도 말해주지 않았다. ①다른 병원에서 장해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하겠다는 요청에 대해 공단 담당자는 장해진단서는 마지막으로 요양한 의료기관에서 작성이 원칙이라는 점만 설명했다. ②해당 의사가 장해진단서를 써줄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어진 질문에 대해선 반드시 해당 의사에게 받아야 한다는 형식적인 답변만을 반복했다. 결국 A와 B는 장해진단서와 소견서 양식을 직접 챙겨 담당 의사를 설득해야했다. 심지어 다른 사건의 재해자가 제출했던 장해진단서 및 소견서의 내용과 공단의 ‘장해진단 매뉴얼’ 자료집을 준비하기도 했다. A와 B는 진단서 작성 내내 찌푸린 얼굴의 주치의 앞에서 끝없이 작아져야 했다.

 

5) 적어도 불안하지 않게

지난 3년간 A와 B의 마음은 항상 불편했다. 산재보험급여를 받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경험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재보상 대부분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으니 산재보험을 ‘복장 터지는 경험’ 이라고 표현한 그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이처럼 답답한 사연을 겪은 재해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산재보험이 근로자 보호를 위한 더 나은 제도일 순 없을까?

문답서를 작성하기 위해 어떤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는지, 재해자 거주지 인근의 산재지정병원은 어떻게 찾아볼 수 있는지, 요양이 종결된 이유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제도가 남아있는지 안내하는 것, 역할을 다하지 못한 산재보험 의료기관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를 하길 기대하는 게 과도한 바람일까? 친절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불완전한 점을 살펴 재해자들이 산재신청과 보상과정에서 불안해하지 않게, 적어도 재해자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상식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2일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