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1-11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진로 선택, 무엇을 우선 고려해야 하나

일터기사

진로 선택, 무엇을 우선 고려해야 하나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청소년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웹툰작가나 공무원, 선생님, 대기업 회사원 등 각종 직업을 말한다. 장래 희망이라기보단 희망 직업이다. ‘장래 희망’이란 단어는 앞으로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구상이라기보단,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행해지는 진로교육의 영향 때문인 걸까?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매년 진로 교육 현황을 조사해 발표한다. 2020년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의료·보건 관련직, 생명과학분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아직 진로를 택하기 전의 청소년들에게 진로교육을 통해, 개인의 취향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직업 선택 시, 개인의 신체적 특질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단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지금의 진로교육에선 ‘일하다 병에 걸려 아프거나 심각하면 죽을 수도 있다’라는 얘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최근 청년들의 업무상 질병에 관한 사례를 자주 접하면서, 진로를 택할 때 안전보건상 조치의 중요성을 반드시 교육해야 한단 생각이 절실하다.

사례 1. 어느 20대 초반의 청년은 바리스타를 꿈꾸며, 카페에서 하루에 8시간씩 1년 6개월가량 근무했다. 청년은 오른손잡이였는데, 커피를 내리거나 펄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주로 우측 손목을 사용했다. 그러다 우측 손목부위 통증이 심해졌고, 치료를 병행하며 대신 좌측 손목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좌측 손목의 통증 역시 심해졌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우측 손목부위에 여러 차례 진료받았던 기록이 있었다.

사례 2. 또 다른 20대 초반의 청년은 10대 시절부터 제빵사로 진로를 희망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제과제빵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곳으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제빵사가 돼, 7년가량 근무했다. 그러던 중 2~3년 전부터 비염이 심해졌다. 어려서부터 비염으로 자주 치료를 받았던 터라, 단순한 비염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곡물 분진에 의한 직업성 비염이었다.

사례 3. 마지막 사례 속 청년 역시 10대 때부터 자동차 정비사가 되길 꿈꿨다. 이 청년도 진로와 관련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8년간 자동차 정비사로 일했다. 그러다 최근 허리부위 통증이 심해져 치료를 받으며, 추간판탈출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는 10대 중반부터 허리부위 치료를 받았던 이력이 있었는데 상하부 및 엔진작업, 타이어 교체 등 중량물을 취급하거나 불안정한 자세로 근무한 게 원인이었다.

3가지 사례 모두 업무수행 내역과 상병부위, 직업력 등을 통해 신청 상병과 업무 관련성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비교적 명확한 사건이었다. 또한 각각 업무상 질병으로 발병된 신체부위에 어려서부터 오랜 기간 치료받았던 내역이 확인돼, 기존 질환의 급격한 악화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세 청년 모두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 신청을 했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됐다. 이들은 다른 노동자에 비해 손목부위, 허리부위, 비염 등 취약한 개인적 특질을 지녔고, 따라서 가능한 취약한 부위에 부담이 가중되는 직업을 피하는 게 필요했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도 명시된 부분이다.

사례 속 청년들이 과거 직업을 선택할 때, 개인의 건강정도 및 체질 등 신체적 특질을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바리스타인 청년은 손목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직업을 고려했을지도 모른다. 제빵사인 청년은 가능한 곡물 분진에 노출될 가능성이 없는 직업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고, 정비사인 청년은 중량물을 취급하는 작업이 잦은 직업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들이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신청을 할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의 신체적 특질이 진로 선택의 장애물로 작동하는 세상이 옳다는 게 아니다. 다만 진로를 선택할 때, ‘안전보건의 조건’ 역시 고려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의 신체적 특질을 파악하고, 해당 조건 역시 주요한 기준으로 삼아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진로교육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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