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1-11 이러쿵 저러쿵] 죽으려 해도 죽지 않을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

일터기사

죽으려 해도 죽지 않을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

박세중 후원회원,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부장

 

반갑습니다, 한노보연 후원회원 박세중입니다. 한노보연은 강남역 삼성전자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건강히 일할 수 있도록 활동하는 단체라니, 저 역시 노동자로 살아왔지만, 정작 노동자의 건강권에 관해서는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간 제가 겪은 건강권 침해 사례는 기껏 거북목이나 손목터널증후군 정도였으니까요.(물론 가벼운 질환은 아닙니다만) 언론에서 질병이나 사망 사고를 접할 때만 분노할 뿐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못한 채로, ‘건강하게 일할 권리’라는 당연한 말은 당시의 저에게 좀 멀리만 느껴졌습니다.

저는 또한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부장이기도 합니다. 이제 겨우 반년 좀 넘게 건설노조에서 노동안전사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당연하다는 권리를 매일같이 구현하고자 고민하면서 느껴온 점을 대략이나마 써보고자 합니다.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산업재해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882명이고, 이 가운데 건설현장에서 죽은 사람은 458명입니다. 절반이 넘습니다. 비율로 보자면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수의 10%도 되지 않을 건설노동자가 다른 산업의 노동자보다 20배, 30배는 더 높은 확률로 무탈히 퇴근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사고가 아닌 질병까지 포함할 때는 한 해 2,000명의 건설노동자가 일하다 죽습니다. 정말이지, 부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올해 3월 살수차노동자가 살수(撒水) 작업을 하다가 차량이 전도되어 논에 빠지면서 죽었습니다. 4월 18일 대구에서 벽채폼을 크레인으로 해체하던 중에 크레인에 걸리지 않은 폼이 넘어져 90년생 노동자가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5월 광주에서 콘크리트 마감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2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그다음 날 주검으로 발견되기까지 그가 퇴근하지 못했음을 현장에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6월 가조립 상태의 철근을 크롤러크레인으로 인양하다가 철근이 붕괴되어 현장에서 작업하던 건설노동자가 깔려 죽었습니다. 7월 인천의 한 현장에서 쉬지 못하고 일하던 콘크리트 타설공이 폭염에 실신하여 죽었습니다. 8월 천안의 철근공이 고소작업대에서 작업하다가 고소작업대가 전복되면서 뇌진탕으로 숨졌습니다. 9월 광주에서 형틀목수가 작업발판이 설치되지 않은 채 거푸집 옹벽 타이작업을 하다가 미끄러져 바닥으로 추락해서 죽었습니다. 10월 타워크레인 인상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아래로 떨어져 그만 퇴근하지 못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308명의 건설노동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더 이상 건설노동자들이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기 위한 건설안전특별법이 난항을 겪으며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법이 제정되기까지는 아직 요원한 상황입니다. 취임 초 법을 제정해 건설노동자의 죽음을 막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차일피일 미루며 건설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해왔습니다. 지난 9월 29일 전국건설노동조합의 간부 상경투쟁을 예고하고서야, 그 하루 전인 9월 28일에 부랴부랴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건설안전특별법은 한마디로 안전을 중심에 두고 공사의 모든 과정을 진행해야 함을 명시한 법입니다. 건설공사의 발주와 설계 단계부터 시공이 아닌 안전을 우선으로 한 설계와 시공법을 채택하도록 합니다. 이에 따라 발주처/시행사는 안전한 시공법을 위해 필요한 적정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을 정해야 합니다. 건설현장에서 궁극적인 결정권을 가진 ‘발주자’를 통제하는 법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일어난 수많은 사고를 분석해보면, 사고의 근본적 원인은 발주자의 공사기간 단축이나 설계 변경, 혹은 부족하게 책정된 안전관리비용 등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시간이나 말도 안 되는 안전관리비용이 바로 사고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주 ─ 설계 ─ 감리 ─ 시공(원/하청) ─ 건설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건설공사의 모든 주체에 대한 권한과 의무, 책임을 명확히 규정한 것이 건설안전특별법의 특징입니다. 그렇기에 발주자가 설계/시공/감리자가 안전을 우선 고려하여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적정 공사기간와 공사비용을 제공해야 한다고 정한다. 그리고 그 적정함은 외부의 심의/검토를 받도록 정했습니다.

물론 하나의 법 제정만으로 안전한 건설현장이 쉬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법 제도의 보완도 꼭 필요합니다. 이를 테면, 건설현장에서 똑같이 일하지만 건설기계 27종에 속하지 않는 스카이(고소작업차), 카고크레인, 살수차 등의 건설현장 화물장비도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아야 합니다. 위험천만한 불법 소형 타워크레인은 현장의 노동자뿐 아니라 길을 오가는 일반 시민들을 덮치기도 합니다. 제작 결함 소형 타워크레인은 현장에서 퇴출되는 것이 모두의 안전을 위한 길입니다. 자외선과 고압 전류에 노출된 채, 허울뿐인 스마트스틱을 들고서 일하는 배전노동자의 건강권 또한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는 지극히 당연한 건설노동자들의 요구에 이제는 국회가 답을 해야 합니다.

건설노동자들은 5월부터 청와대와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건설안전특별법이 재발의된 6월부터는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 정기국회 내 반드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정기국회 회기가 마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건설노조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현장에서 안전이야말로 정말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그럼에도 노동자가 죽으려 기를 써도 죽지 않을 조건이 갖춰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어느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을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어내는 투쟁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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