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1-11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안녕하세요. 성함…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일터기사

“안녕하세요. 성함…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오현정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병원이나 사업장에서 검진대상자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인사와 함께 간단하게 이름을 묻는다.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진료실/상담실에 당신이 들어온 걸 알고 있다고 보내는 작은 신호임과 동시에 간단한 본인확인 절차다. 하지만 가끔 “안녕하세요. 성함…”까지 나왔다가 황급하게 성함 대신 이름으로 바꿔 말할 때가 있다. 바로 외국인 노동자를 만날 때다. 외국인 노동자도 사람마다 한국어 실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유려하게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전에 성함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을 때 한 번에 본인 이름을 대답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았기에 현재 나에게 굳어진 문장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이다. 앞 문장과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겨우 이름을 말해주는 분도 있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몇 마디를 나누면서 한국어로 대화하는 게 나을지 인터넷에 번역기를 검색하는 게 나을지 고민한다. 그나마 조금 말할 수 있는 외국어가 영어인데 내가 검진으로 만나는 외국인 노동자 중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빈도는 그리 높지 않다. 태국어, 네팔어, 버마어, 몽골어, 베트남어 등 번역기 결과를 보았을 때 제대로 번역됐는지 내가 알 수 없는 언어가 대부분이다.

어떤 날은 검진을 받는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일 때도 있다. 이런 날은 과연 내가 오늘 제대로 된 문진이나 상담을 했을지 의문이 든다. 물론 일반건강검진, 특수건강검진 문진표 모두 여러 언어로 번역한 버전이 있고, 대부분 수검자는 문진표를 읽고 해당 항목(증상 유무 등)에 표시를 해온다. 하지만 종이에 적혀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종이만 확인하고 끝난다면 상대방이 무슨 언어를 쓰든 상관없겠지만, 나는 항상 무언가를 물어보고 설명해야 하므로 대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질문은 쉬운 편이다. 보통 증상이 있는지 없는지와 같은 ‘예/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걸 많이 묻기 때문에 단어만 번역기로 바꾸면 비교적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부분은 질문 단계에서 다 괜찮다고 답한다. 하지만 이제 어떤 증상이 있어서 추가로 질문해야 하거나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면 조금 어려워진다. 최대한 설명은 간단하게 만들어서 핵심 단어만 보여주고, 바디 랭귀지를 사용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하지만 과연 제대로 전달됐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더불어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한국인이라면 추가로 덧붙였을 설명은 생략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검진 결과를 판정할 때는 문진 외에도 피검사, 소변검사, 청력검사 등 여러 가지를 확인하기 때문에 건강에 정말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문진에서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다음에 진료나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몇몇 문제는 피검사, 소변검사 등에는 나오지 않고 문진이나 문진 결과에 따라 시행하는 신체검사가 더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한국어로 대화했다면 무조건 했을 질문이나 신체검사를 의사소통 문제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하지 않았을 경우가 과연 없었을까.

이렇게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생기는 문제를 고민하다가 옆길로 살짝 새면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한국어를 쓰는 사람과는 대화 내용에서 질적 차이가 없는가’와 ‘만약 한국어 사용자 사이에서 문진, 설명이 차이가 난다면 나는 과연 누구한테 이야기할 때 잘하는가’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언어 문제만큼 개인마다 편차가 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며, 후자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나이, 성별로 집단을 나눠서 비교했을 때 여러 집단 중 내가 가장 편하게, 효과적으로, 자연스럽게 건강 문제를 질문하고 답하는 상대는 젊은 여성이라 생각한다. 단적으로 젊은 여성에게는 월경 이야기를 하기도 편하고, 내가 겪은 직간접적인 경험으로 이해나 공감도 쉽고 자연스럽다. 반면에 50대 전후 여성에게 갱년기 문제는 질문하기는 편하지만,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한 이해나 공감은 상대적으로 어렵다. 그 외에도 중노년에 주로 생기는 근골격계 문제, 남성이 자주 겪는 건강 문제 또한 내 경험의 부재로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내 경험과 멀어질수록 생기는 대화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흐름에서 한국어로 대화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로 돌아오면 내가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적은 게 못내 아쉽다. 여러 언어 사용자와 이야기를 나눠봤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있거나 같은 방법으로도 조금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함께 들어와 외국인 노동자 옆에서 질문에 대신 답하는 것보다는 인터넷 번역기를 이용해서 당사자와 일대일로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훨씬 낫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자주 만나는 것에 비해 대화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고, 아직은 어떻게 하면 의사소통 문제로 생기는 차이를 좁힐 수 있을지 잘 알지 못 한다. 말로 설명을 못 하는 경우 간간이 그림을 검색해서 보여주지만 설명하고 싶은 적절한 사진을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시간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이 방법은 분명히 한계가 있다. 대화가 어려웠던 날이면 더욱 내가 제대로 알아듣고, 잘 설명하고, 상대방이 충분히 이해하기를 혹여나 놓치는 건강 문제가 없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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