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 조리실 노동환경 및 건강 영향실태 조사연구
선전위원회
1. 연구의 배경 및 방법
단체급식조리실의 높은 노동강도와 근골격계질환 발병률은 사회적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최근 학교 단체급식실에서 오래 근무한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 사실이 알려지고 산재 신청으로 이어지며 단체급식 노동의 위험성이 다시 한 번 알려지게 되었다. 동종 업무를 하는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조리노동자들 역시 오랫동안 높은 노동강도, 크고 작은 사고와 질병을 겪어왔다. 열악한 처우와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2019년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는 파업에 돌입해 서울대학교와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시도가 있었으나, 추가 인원 채용 등 처우 개선과 환경 개선은 더디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위험한 환경에서 업무 중이다. 서울대 생협 노동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급식실에서 충분한 휴식조차 없이 고된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오랫동안 지속한 부담작업으로 인해, 불건강 상태로 일하는 게 만연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실태조사는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높이는 구조적·환경적 원인을 파악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자료를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실시했다.
2. 설문조사 결과
서울대 생협 단체급식실 노동자들은 ‘50대’, ‘여성’이라는 두드러진 특징을 보인다. 8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0대가 65.9%였고, 여성은 전체의 76.2%를 차지했다. 근무시간을 확인한 결과, 노동자들은 매주 다른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전원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41.5%가 주마다 다른 시간에 근무한다. 실제로 식당마다 4개나 5개의 시간대, 많게는 9개 시간대까지 운영하면서, 근무시간 내내 비슷한 인력을 배치하지 않고 점심시간 위주로만 다수 노동자를 배치하고 있다. 매주 다른 시간에 출근하지만, 출근 시간을 알게 되는 것은 정작 하루 전(36.6%)이나 며칠 전(14.6%)이였다. 서울대 생협 단체급식실은 식수 인원이 몰리는 점심시간에 노동자들을 집중 배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식수 인원이 많지 않은 아침과 저녁 시간에도 노동자들이 할 일은 많기 때문에, 식당이 문을 여는 전체 시간 동안 적정 인원을 고루 배치해 노동강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
어떤 유해환경에 어느 정도 노출되는지 물었을 때, 거의 항상 계속 서 있는 자세를 취한다는 답은 91.5%로, 앉을 틈 없는 단체급식 노동의 특성을 보여주었다. 소음에 거의 항상 노출된다는 응답은 43.9%, 자주 노출된다는 응답은 39.1%로 근무시간 내내 소음에 시달린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거의 항상 미끄러운 바닥에서 일한다는 답변은 46.3%로 높게 나왔고, 자주 노출된다는 응답도 30.5%로 높게 나왔다. 불편한 작업 자세에 거의 항상 노출된다는 응답은 48.8%, 자주 노출된다는 응답은 35.4%로 나왔다.
신체부위별 근골격계 증상 호소율/유병률을 NIOSH 기준에 따라서 살펴보면, NIOSH 기준에 해당하는 증상호소자는 81%, 관리대상자는 78.6%, 질환의심자는 40.5%였다. 빈번하게 어깨를 사용해 재료를 썰고, 배식 시 어깨를 과도하게 사용하며, 무거운 밥솥을 옮기면서 허리와 상체에 부담을 가하는 작업 특성이 근골격계질환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주관적인 노동강도 평가 지표인 보그지수 평균값은 14.18이었다. 업무가 빠르게 걷는 수준이거나 100m 달리기 수준이라는 응답이 78.6%로 높게 나왔는데, 빠른 속도로 과중한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지금과 비교해 어느 정도의 노동강도가 적절한지 물었을 때 61.05%여야 한다고 답해 노동강도 완화가 필요함이 확인되었다.
설문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위험한 환경에서 높은 노동강도로 일하며 다치고 아프지만, 사고나 질병 발생 시 산업재해 신청을 한다는 응답은 매우 낮은 편이었다. 사고로 병원 치료를 한 적 있다는 응답은 26.9%가 나왔지만, 그중 본인이 비용을 부담했다는 참여자는 75%가 나와 산재보상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 현실이 드러났다. 특히 근골격계질환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다는 응답이 74.4%였고, 이중 치료비는 본인이 부담했다는 응답은 98.4%로 나와, 질병이 발생했을 때 병원 치료로는 이어지지만 산재 보상 신청으로 이어지지 않고 업무상 재해가 노동자들에게는 개인이 처리할 일로 여겨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노동자들이 업무시간 내내 서서 일하는 급식조리실에서, 노동자의 피로도를 높이는 소음과 미끄러운 바닥 등의 요인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중량물 무게를 줄여 근골격계 부담작업을 완화할 방안 역시 필요하다.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문제로 꼽은 인력 충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3. 면접조사 결과
면접조사에서는 3년에서 22년까지 서울대 생협 단체급식실 경력을 보유한 노동자 총 8명을 만났다. 면접을 통해 노동자들이 인식하는 서울대 생협 단체급식실의 노동강도, 노동환경, 노동조건에 대해 질문했다. 또한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묻고 답을 들으면서, 앞으로 마련해야 할 대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면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정해진 시간에 조리를 하고 설거지까지 마쳐야 하는 쉴 틈이 없는 노동조건이었다. 업무시간 내내 서서 일해야 하는 점 외에도, 특히 노동자들이 피로를 크게 느끼게 하는 요인은 인력 부족 문제였다. 노동자들은 생협에 계약직으로 채용되어 2년간 근무했으나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한 이들이 최근 퇴사하면서 인력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상시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탓에 신규 노동자가 들어와도 충분히 교육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적응이 어렵고, 그러다보니 금세 그만두게 되어 인력부족 문제의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중량물 취급과 부담작업 자세는 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질환을 유발하고, 일상적으로 병원에 다니며 일하는 상황을 유발하는 요인이었다. 노동자들은 물리치료를 자주 받을 뿐만 아니라, 하지정맥류가 발병해 틈틈이 ‘피를 빼주러’ 병원에 다닌다고 말했다.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미끄럽고 울퉁불퉁해서 넘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바닥에서 일하고, 노동자에게 맞춰있지 않은 조리대 등으로 언제든 각종 사고를 겪을 수 있는 환경 문제가 확인되었다.
면접조사 결과, 노동자들에게 사고나 질병은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확인되었다. 업무 중 다치고 아프면 산재보상을 받아 치료하고 회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낮은 편이었다. 노동자 건강권, 근골격계질환 예방, 업무상 재해, 산업재해 신청법 등 안전과 건강 관련 교육 역시 실시된 적이 없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면접조사에서 노동강도와 노동환경 외에 기본적인 노동조건을 확인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고된 노동을 하지만 임금 수준은 매우 낮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한 ‘짧은’ 휴식 및 식사시간과 ‘충분하지 않은’ 휴게 공간은, 노동자 피로도를 완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높은 노동강도와 더불어 노동자 피로도를 심화하는 요인이었다.
면접조사를 진행하면서 노동자들이 건강하지 못하게 일하는 가장 큰 원인은 인력 부족으로 확인되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인 인력 충원을 위해 노사가 함께 고민하고 방안을 만들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4. 현장조사 결과
현장조사는 2021년 5월 25일과 6월 8일에 학생회관 식당, 공학관 식당, 자하연 식당, 동원관 식당에서 진행했다. 현장조사 결과 전처리, 설거지, 조리 및 취사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노동자가 여러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일부 식당의 경우 설거지와 배식을 하는 노동자와 조리업무를 하는 노동자로 나뉘기도 했지만, 완벽히 나뉘지는 않았다.
빠른 업무 속도 역시 서울대 단체급식실의 특징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쉴 틈 없이 빠르게 일을 해야 했다. 배식 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 내에 업무를 반드시 완수해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전처리, 조리, 청소, 배식, 세척 등 여러 업무를 동시다발적으로 되풀이하고, 높은 노동강도를 견뎌내고 있었다.
전처리 작업, 청소, 설거지, 배식 업무를 하는 동안 반복적으로 취하는 불편한 자세, 장시간 서 있는 자세, 중량물 취급으로 인한 근골격계 부담이 확인되었다. 이와 더불어 휴식 및 식사시간의 부족, 휴게실과 화장실의 이용상 어려움은 신체적·정신적 부담과 손상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확인되었다.
급식조리실 환경 역시 유해하고 위험했다. 노동자들은 물기가 상시 존재하는 바닥에서 미끄러질 위험이 크고, 지하에 위치하거나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초미세먼지와 조리흄 등 유해물질 노출 위험도 컸다. 세척이나 청소 중 사용하는 청소용제나 세제 등 유해화학물질도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그런데도 해당 물질의 사용 시, 보호구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높은 노동강도로 인한 근골격계 부담, 빠른 속도로 하는 업무 때문에 생기는 사고 위험 방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력 충원이 시급하다. 인력이 충분하다면 업무를 분담함으로써, 근골격계 부담을 낮추고 휴식 및 식사시간 또한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노동강도를 낮춰, 노동자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 또한 노동환경 유해 정도를 파악하고, 중량물 취급 부담을 낮추는 방향으로 환경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5. 결론 및 제언
실태조사 결과,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파악되었다. 단체급식실에서는 정해진 배식 시간이 있어 그 일정에 맞춰 빠른 속도로 업무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노동자들이 과중한 노동을 견뎌내야 하고 급하게 일하다가 사고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지금처럼 여러 개의 근무 시간대를 두고 인원을 나눠 배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 근무시간 동안 충분한 인원이 일하게 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업무 특성상 휴식시간을 여러 번 둘 수는 없더라도 업무 속도는 적정하게 바꿀 수 있게 해야 한다. 업무 속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인력 충원은 중요하다.
노동자들에게 근골격계 부담을 가져오는 중량물 무게를 줄여야 한다. 또한 노후한 급식실 노동환경 역시 현대화해, 환기 문제를 개선하고 미끄럽고 낡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바닥 역시 개선할 필요가 있다. 10년이나 20년 이상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근골격계질환 실태를 별도로 조사하고, 노동 현장 직업성 암 발병 위험은 없는지 역시 심층 조사할 필요가 있다.
업무 중 노동자가 다치거나 아플 때 바로 치료받고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업무 중 발생한 재해는 개인의 책임이 아님을 알리고 노동자들이 재해 발생 시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아프고 다치면서 일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며, 건강하게 일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의 권리이다. 이제 노동조합이 조합원과 함께 안전보건활동을 시작해 현장을 바꿀 때다. 안전보건교육 시간을 유급으로 확보하고, 노동조합에서는 노동안전보건 활동 담당자를 선임하며, 조합원들은 현장 참여조사나 일상적 점검 등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조합원이 스스로 참여할 때 안전한 현장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