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일터, 화장실 :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우리의 기록> 사진전과 토크행사를 다녀오다
정여진 회원
첫 번째 기억, 의대 시험 풍경이 갑자기 떠오른다. 장장 2시간에 걸친 기말고사였다. 조교가 화장실 다녀올 사람들은 한 사람씩 보내줄 테니 조용히 손들라고 했다. 시험이 다 끝나갈 무렵 조교는 말했다. “원래 생리적으로는 여자가 남자보다 소변을 더 못 참는 거 아닌가? 그런데 손드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남자냐…” 나는 생리대가 새지 않을까 꽤나 신경 쓰였지만 가능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던 터였다. 조교가 남자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수많은 눈이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불편감 때문이었으리라.
두 번째 기억, SNS의 내 담벼락에 와서 툭하면 맨스플레인을 늘어놓고 가던 대학 동기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은 어떤 글을 올렸는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인류는 역사 이래 남성중심적 사회였다. 아무데서나 볼일을 볼 수 있던 남성들에 대해, 풀숲이나 바위 뒤를 찾아 헤매야 했던 여성들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후략)’. 이런 류의 사람들조차도 ‘이미 알고 있는’ 여성의 화장실 문제가 제대로 공론화된 적은 없다는 데서도, 씁쓸함을 느꼈다.
왜 ‘여성’노동자의 화장실 문제였을까?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노동자들의 시간 주권뿐 아니라 신체 주권을 통제하고 있다는 데서는 여/남이 다를 리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무수한 일감을 두고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생리적 요구까지도 눈치를 보며 참아낸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의 경우, 남성과는 달리 이중의 억압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까지도 여성은 자신의 신체에 대해 말할 권리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 수많은 공공장소의 여성 화장실은 양적, 질적으로 여성의 필요를 다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비정규직 등-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화장실에 대한 접근성이 더 떨어지기도 한다.
이와 다르지 않은 문제 의식을 기반으로 한노보연 여성노동 건강권 팀에서는 민주노총의 제안을 받아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를 올해 초까지 시행했고, 이에 대한 후속 사업으로서 현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자기 일터에서 겪고 있는 화장실 문제를 담은 사진을 모아 전시하였다. 10월 22일에는 부속 행사로 대담도 열렸다.
하필 전시회가 낮에 열리는 터라 전시회를 보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토크 행사조차 진료가 있는 날과 겹치는 바람에, 준비하는 데 고생한 분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었다. 그러나 ‘당연히 올거죠?’라고 묻는 듯한 모 동지의 확신에 찬(?) 눈빛을 차마 뿌리칠 수 없어, 한 시간 반 거리를 허둥지둥 달려갔다.
토크는 ‘여성, 일터, 화장실을 이야기하다’라는 제목으로 방문관리 노동자, 금속노조 부위원장, 그리고 여성학자 간의 3인 대담으로 약 90분가량 이어졌다. 화장실을 가는 것이 불편해 먹고 마시는 것을 꺼리는 일이 발생할정도로, 화장실은 가장 필수적이고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어느 일터이든 그곳의 화장실만 봐도 그곳이 해당 일터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기억에 남는 화제들은 여럿 있었지만, 우선 ‘여성’ 노동자의 시각으로 보면 일터에 대한 확장적인 사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많은 방문 노동자들에게 일터는 ‘남의 집=타인의 사적인 공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든 아니든 간에 ‘고객의 집’에서 화장실을 이용했다고 클레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는 점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다음으로 정신을 확 깨게 만들었던 것은 고용형태, 인종, 젠더로 철저히 위계화 되어있던 화장실 사용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이었다. 어느 시골 이주 노동자들의 화장실은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시설도 열악하고 여/남 구분도 되어 있지 않더라는 얘기며, 또 다른 일터에서 비정규직은 매시간 화장실을 보내주지 않는 것에 대해 항의했더니, 관리자가 “꼬우면 너도 정규직해라!”라고 했다는 얘기까지! 하나 덧붙이자면, 어느 남성 노동자가 화장실을 가기 위한 ‘시위’의 목적으로 일터에서 공개 노상 방뇨를 했다는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 일면 통쾌하기도 했지만 여성 노동자에게는 매우 어려운 저항 방식이라는 데서 마음이 복잡했다. 이런 내용들과 대조적으로 토크 행사의 분위기는 몹시 화기애애했기 때문에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훌쩍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오늘의 전시회 및 토크 행사는 생물학적인 ‘여성(女性)’의 문제를 넘어 남을 ‘여’자, 소리 ‘성’자, ‘여성(餘聲)’의 문제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었던 소중한 축제의 장과 같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을 드러내는 작업, 그럼으로써 더 불편한 쪽이 일으키는 균열. 비정규직, 장애인과 이주민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위시한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여성(餘聲)노동자의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의식 확장은 전체 노동자의 신체 주권 확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판매직, 간호사등의 방광염, 신우신염이 대중에게 흔히 산재로 인식되고 승인되는 것을 넘어, 여러 다른 ‘몸’들에 대한 존중이 기본적인 상식이 되는 일터를 꿈꾼다. 우리는 너무도 의문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공과 사를 구분하지만, 사람 몸에도 공/사 구분이 있을리는 만무하다. 자본이 아닌, (복수의) 사람 중심의 관점을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