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22-2 이러쿵저러쿵] ‘엄마’ VS ‘청소년인권’, 내 안의 불화에 대하여

일터기사

[일터 2022-2 이러쿵저러쿵]

‘엄마’ VS ‘청소년인권’, 내 안의 불화에 대하여

림보 회원

어린이가 세 살이 되던 해부터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초부터 노동에 대한 여러 강의를 쫓아다니며 듣다가 ‘청소년 노동인권’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다. 청소년노동인권’이라는 쉽지 않은 말과의 만남이 인권교육과 청소년 노동인권 옹호활동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먹고 1년의 육아휴직에 들어간 게 2013년 5월 말이었다. 저녁 시간에 여러 모임이 있었다. 세미나와 토론, 소모임 또는 회의,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시간에 곱씹던 흥분과 행복감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흥미진진한 토론의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으로 지금까지도 소위 ‘활동’의 기회들을 이어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3개월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던 어린이는 7살이 되던 해 초여름, 갑자기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고 선포했다. 물론 7살이 되기 전에도 매일매일 어린이집을 순탄하게 갔던 것은 아니었다. 영유아 시기에는 가기 싫은 내색을 해도 둘러업고 뛰어가면 됐지만, ‘고집’이 생긴 후부터는 버티기 일쑤였다. 다행히 중단선언은 3개월 정도 만에 끝났고, 그 기간에 남편이 대상포진에 걸려 치료와 요양을 했다. 덕분에 어린이는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되었다. 신기한 것은 어린이집 중단선언을 한 후부터 어린이 몸에 나타난 증상이었다. 두피에 염증이 심하게 올라왔다. 워낙 에너지 넘치는 어린이라 노는 데 지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로서는 걱정될 지경이었다. 일곱 해를 매일 출퇴근하던 사람이 휴식하게 되면 겪는 다양한 신체화 증상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을 매일 다니는 일도 어린이에게는 ‘사회생활’이라고 숱하게 교육 다니면서 말해왔던 나였지만, 정작 휴식을 맞은 어린이가 피부염을 앓는 걸 보니 ‘진짜네!’ 하며 제대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임금노동을 시작한다고 흔히 생각하는 열여덟, 열아홉의 청소년들을 ‘사회초년생’이라고 부르는 건 옳지 못한 일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어린이집과 초중등학교를 거치면서 또는 그 시기의 다른 경험 속에서 그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사회생활을 인정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육아와 활동을 병행하면서 나에게는 집 역시, 일터이자 활동의 현장이었다. 내게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은 나에게‘만’ 할당되었고, 아내, 며느리와 딸로서 다른 가족과 맺는 관계에 성실히 임해야 가족의 화목함이 보상처럼 떨어졌다. 며느리로서의 일을 중단하고, 아내로서의 일을 어느 정도 줄이고 나서는 화목한 가족은 끝이 나버렸던 것 같다. 그 화목함이 끝난 바람에 조금씩 집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기도 했다. 게다가 인권교육이 주된 활동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소위 활동을 통한 소득도 없어지기 시작하자, ‘가장’ 노릇을 하면서 대접도 받지 못한다며 남편은 억울해했다. 결혼한 지 십몇 년이 지났지만, 내가 제대로 된(?) 소득 없이 지낸 시간은 사실 고작 3년 정도다. 그동안 내 수고는 왜 지우는 거냐고 물어보지는 않을 예정이다.

올해 어린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이미 키는 나보다 크다. 어린이에게 우리는 가족이니까,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네가 먹은 것, 갖고 놀았던 것은 네가 잘 치우라고 하면 ‘엄마도 일한다고 책이랑 노트북이랑 마루에 있는 책상에 다 늘어놓고 다니면서 왜 나한테만 치우라고 하느냐’고 항변을 한다. 할 말이 없다. 나는 너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밥도 했다고 했다. 사실 이런 말을 정말로 어린이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려 가며,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왔고, 어린이에게 그런 부담을 알게 하기 싫었다. 그러나 해버렸다. 그것도 여러 번. 물론 어린이는 자기는 아직 어리고, 자기 친구 중에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되받아친다. 역시 할 말이 없다.

한때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 믿었다. 그 믿음이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깨닫는 건 늘 어린이의 항변 덕분이다. 물론 나 역시 아주 가까운 관계인 이 어린이와의 일상이 늘 좋지 않다. 숱하게 억울하고 슬프다. 가끔은 내가 무책임한 양육자이면서 어린이를 믿는다며 어린이 뒤로 숨는 건 아닌가 불안에 떤다.

그런데도 애를 써본다. 내가 그동안 뱉어온 말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완전하게 동등한 관계는 애당초에 불가능하지만, 그래서 매 순간 잘못을 인정하고 태도와 관점을 수정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요즘에도 내내 이 어린이가 언제쯤 내 노력과 진심을 알아줄지 궁금해한다. 내가 너무 지치기 전에 알아주면 좋겠다 싶다가도, 그날이 오기는 할까 절망하기도 하는 오락가락하는 마음이다. 같이 산지 3년 된 강아지와 매일 산책을 나가는 건, 내가 그를 가족으로 맞이했기 때문이다. 우리 개 소담이 나에게 주었던 위로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일이다. 어린이나 개나, 나와 가족이 되겠다고 자기들의 의사를 말하지 못했고, 그들을 가족으로 맞이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나’였으니까.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도 해보기로 한다.

글쓴이 림보 : ‘세상이 함부로 대하는 존재’들을 편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모성이라는 말을 포장하려는 모든 시도를 싫어하느라 늘 심기 불편한 채, 글을 쓴다. 몇 년 전에는 인권교육과 일하는 청소년 인권 옹호 활동을 주로 했다. 함께 쓴 책으로 <십대 밑바닥 노동>, <회사가 사라졌다>가 있다.

17일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