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편의 영화 이야기 *
어제 상영된 영화 세편은 <건설현장에서 생긴 일> <소금> <노동자다 아니다>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생긴 일>
현장을 돌아다니는 건설노조 동지들과 함께 카메라가 움직이는 영화입니다. 때로는 건설노조 조직가들의 시선과 동일시되기도 합니다. 나중에 보실 동지들을 위해 자세한 내용 얘기는 안하겠습니다만, 두 장면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명성 들머리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한 뒤 며칠이 지나 조합원들이 농성장에 칠 천막을 들고 온 날의 이야기입니다. 한편에서는 천막을 가져온 동지들이 천막을 치고, 성당 사람이 나와서 그걸 치치 말라고 하고, 그 곁에서 농성을 하던 동지들이 쓰게 웃으며 서있던 모습.
그때 천막을 치던 한 동지가 외칩니다. 싸우는 것도 항의하는 것도 아니라, 차라리 절규입니다. 그럼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그 한마디 속에 담겨있는 의미가 하도 징해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혹한 속에 길바닥 새우잠을 자면서 농성을 하는 동지들에게, 우리는 천막밖에 쳐 줄 수 없다, 천막이라도 쳐야만 하는 이 마음을 어쩌란 말이냐, 당장은 천막밖에 더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운 이 마음을 어쩌란 말이냐...
가슴에 새겨진 또 한 장면은 이렇습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어느 건설 현장 맞은편에 방송차를 세워 마이크를 잡습니다. 한참을 선동하고 나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마이크를 끄려는데, 저기 철골 앙상한 건물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야아~하고 두팔을 활짝 벌려 휘휘 젓습니다.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저기 멀리 꼭대기에서 보내는 동지의 인사. 뭐라고 말해도 들리지 않을테니 그저 야아~하고 두팔을 크게 저어서 하늘로 날리는 동지애. 그걸 보고 마이크를 잡았던 동지는 반가움과 기쁨의 탄성을 지릅니다.
이 영화를 건설 동지들과 함께 보다보니까, 객석에 앉은 동지들의 얼굴이 화면에 나올때마다 곳곳에서 조그맣게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소금>
영화 초반, 오랜동안 임신을 기다리던 수색 수송의 김남희씨가 나옵니다. 입환 작업의 고된 노동을 하면서, 마침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업무 조정을 요구하나 묵살됩니다. 한번, 두번, 세번... 번번히 자신의 권리가 짓밟히는 일을 겪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철야근무를 계속 하면서, 결국은, 아이를 잃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그간의 요구에 대한 보복성 부당 인사발령을 받아 먼 곳으로 전출됩니다.
그러나 김남희씨 말고도 이 영화 속에서 만나는 철도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몇방울의 눈물과 가끔씩 목이 메어 말을 그치는 일 말고는)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됩니다. 단지 고통속에 내동댕이쳐지거나 고통에 짓눌려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맞서왔기 때문일 겁니다.
김남희씨는 이렇게 힘들 걸 모르고 수송에 들어온 거냐고 관리자가 물었을 때, 여성이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를 키워야한다는 걸 모르고 수송에 뽑은 거냐고 반문합니다. 이 문제가 엄연히 나의 권리이며 너의 책임이라는 것을, 입이 아니라 몸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출근에만 2시간이 걸리는 먼 곳으로의 부당 인사발령에 맞서서 투쟁합니다. 다시 아이를 갖고 싶다고 말합니다.
영화 속에는 그 밖의 여러 사례들, 철도 여성 노동자로 살아가며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대한 권리는 커녕 그로 인한 차별과 억압을 받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이 영화는 차별과 억압을 '견뎌온'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태* 동지가 이 영화의 감독인 박정숙 동지의 남편입니다. 다음 달 출산을 앞둔 몸으로 상영회에 나오셨더군요. (이번에도 역시 숫기가 없는 저는 인사를 건네지 못했슴다... ㅠ.ㅠ)
<노동자다 아니다>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입니다.
카메라 앞에서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탄압받고... 그 짧은 시간동안 이 세상을 일순간에 깨달았다고. 그리고 법도, 정부도, 그 어느 권력도 노동자 편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노라고.
그리고, 한번 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었던 장면들이 있습니다. 커다란 레미콘차 위에 올라가 손을 흔드는 환희의 모습, 줄줄이 차를 몰고 서울로 모이던 파업 대오의 기나긴 행렬, 끝이 보이지 않는 동지들의 집회 대오... 또 한편으로는, 말로만 들었던 경찰의 도끼 만행 장면, 극악한 자본의 탄압과 방해, 기나긴 농성 투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동지들의 이야기와 농성을 끝내고 해산하기로 결정한 마지막 회의 장면처럼 치떨리고 가슴 아픈 장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떨구며 지역으로 흩어진 동지들이 다시 각 지역에서 투쟁을 일구어내고, 다시 커다란 꽃을 피워올릴 거라는 희망으로, 하늘 높이 색색의 풍선을 띄워올립니다. 노동자다 아니다 따지지를 말아라, 투쟁의 시동을 멈추지 마라, 노동자의 길을 가련다....
"노동자다 아니다" 노래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