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구라
1. 13일 이빨뽑고 현자민투위 중집회의 옆에 바로 앉아, 회의 진행을 쭉 보고 들음. 회의소집이 여의치 않았었다는 이야기를 무색하게 많은 동지(80% 이상)들이 참석함. 회의자료가 제목만 있어서 의아해 하였는데, 안건의 반복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음. 느낌은 1) 집행부를 배출할 경우, 활동의 중복과 종합적인 역량배치를 위한 현장조직의 현실에 조응한 조직운영 및 역량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2) 주요역량들의 정기적인 활동보고와 조직적인 활동집중이 더욱 강화하여야 독자적인 현장조직의 실천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죠. 아참, 집행부는 장미3만송이(?)를 현장노동자에게 13일 아침과 저녁 퇴근할 때, 나눠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진보정치를 위해 애(?)을 쓰느라 증말 고생하였습니다.
2. 중집회의 참관이후 개인일로 7-8명과 함께 또 '돔베돈가'에 갔었습니다. 지침이 아니라 이빨에서 나는 피 때문에 유기용제를 멀리하였습니다. 돔베돈가에서 일하는 후배와 같이 민투위 간사가 사는 집으로 가서, 2명은 술을 하고 저는 물을 먹으면서 사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다 '* 나라'로 갔습니다.
3. 아침에 일어나 민투위 사무실로 가서 노안실장에게 전화로 대의원교육관련 부탁을 받고, 재광동지캉 야총동지에게 전화로 결합관련 이야기를 하고, 부산으로 부산으로 가는 중에 차창 너머로 보이는 야산의 풍경이 저를 잡았습니다. 상록수 사이에 세를 확장하는 '신록'의 기운은 참 보기도 좋았지만,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아 한마디로 ‘굳’이었습니다.
4. 시간약속이란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는데요. 다른게 아니라 배시간이 아슬아슬해서 전철역에서부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냅다 뛰어 가까스로 승선하구 나선,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면서 “증말 여유있게 살아야지” 해드랬습니다. 별일없이 장승포항에 도착, 태호동지의 자가용(미리 드럽다고 선수치는 차)타고, 현민투 사무실로 직행.
5. 현민투 사무실에 도착하니 회원들이 몇몇 모여 청소하느라 부산스러웠습니다. 사실 현민투 동지 뿐아니라 현장조직활동하는 모든 동지들이 현장활동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 든든합디다. 물론 걱정도 그만큼 아니 더 있어야 겠지만요. 4-50여명 온다던 기억에 비하면 적은 20여명이 참석했지만, 다른 현장조직의 활동가들도 참여해서 의미있는 자리였다 싶습니다. 아이구는 2시간 가까이 얼굴이 벌개지면서 침튀기며 설레발을 쫘악 깔음. 이날이 첫 자리이고 실천학교 입교식이라 아이구 구라에 이어 후속 ‘힘’을 23시경까지 다짐. 다져진 알곡은 6차례 이어질 자리에 빠짐없이 참여하자, 제조직이 함께하는 자리여서 좋았고 더 진전시켜나갔으면 좋지 않겠는가, 아이구 구라가 뭐! 참! 좋았데는 둥 등등이었죠. 대조노조 집행부 선거에 10월경에 있을 거라는 걸 다 아시죠.
6. 태호동지 숙소(옥포소재, 2인1실, 잡상인 및 커피배달 단속 등)에 가서 쪼매 늦게까정 현장상황, 제조직관련 현황, 현민투관련 이야기 등을 안주삼아 캔맥주 쬐금으로 지침을 자꾸 자꾸 어김. 거제가 섬이라는 특성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매매춘’ 문화가 극을 이루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디다. 참, 태호동지 결혼 스트레스 관련 이바구도 빼뜨리지 않았죠.
7. 담날은 현민투 단합을 위한 회원 가족동반 모임에 가서, ‘황달관련 지침 왕창 박살’ 결의로 무리한 유기용제를 위장투입함. 무슨 폐분교였는데, 정년퇴직한 현민투 회원이 그림방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림에 대해 ‘그림’이구나 하는 수준의 저로서는 그냥 그런 정도였는데, 현민투 회원들은 자기식구여서 그런지 아님 실제로 그런지 ‘참, 좋다’를 연발하더라구요. 다양한 놀이와 떼축구 그리고 족구 등을 하면서 육신을 다구쳐습니다. 아직도 다리가 약간 묵직합니다. 아, 2인3각 이어달리기도 했는데 무척 빨리(제가 생각하기에) 뛰어 제가 소속 팀이 승리를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참여한 축구경기도 4:2로 승리했죠. 글구나서 지세포 자장면 집에 가서 역시 떼로 먹기를 하고, 태호네 가서 씻고나서 민섭동지네 가서 개표방송보면서 저농도의 곡주로 목축이기 실시.
8. 간만에 민섭동지 식구들이 차려준 아침밥 든든하게 먹고 08시 배타고 부산으로. 무리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목간통으로 가서 때도 밀었는데, 국수가락 뚝뚝. 지붕고치기는 이발소를 못찾아 아쉽지만 서울로 이월. 부산연구소와서 현자사업팀 2차 회의자료 만들고 숙견동지랑 민의련 종남동지랑 소곤소곤도 하다가, 말만 무성했던 부산 물밀면을 꼽빼기로 포만감을 그윽.
9. 현자팀 2차 회의를 상기동지, 정원동지, 인아동지랑 한 후, 지금 저녁으로 부산비빔물면을 기다리는 중. 집행위 이후 부산회의참여하고 집으로 간닷.
천사불여일행
1. 13일 이빨뽑고 현자민투위 중집회의 옆에 바로 앉아, 회의 진행을 쭉 보고 들음. 회의소집이 여의치 않았었다는 이야기를 무색하게 많은 동지(80% 이상)들이 참석함. 회의자료가 제목만 있어서 의아해 하였는데, 안건의 반복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음. 느낌은 1) 집행부를 배출할 경우, 활동의 중복과 종합적인 역량배치를 위한 현장조직의 현실에 조응한 조직운영 및 역량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2) 주요역량들의 정기적인 활동보고와 조직적인 활동집중이 더욱 강화하여야 독자적인 현장조직의 실천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죠. 아참, 집행부는 장미3만송이(?)를 현장노동자에게 13일 아침과 저녁 퇴근할 때, 나눠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진보정치를 위해 애(?)을 쓰느라 증말 고생하였습니다.
2. 중집회의 참관이후 개인일로 7-8명과 함께 또 '돔베돈가'에 갔었습니다. 지침이 아니라 이빨에서 나는 피 때문에 유기용제를 멀리하였습니다. 돔베돈가에서 일하는 후배와 같이 민투위 간사가 사는 집으로 가서, 2명은 술을 하고 저는 물을 먹으면서 사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하다 '* 나라'로 갔습니다.
3. 아침에 일어나 민투위 사무실로 가서 노안실장에게 전화로 대의원교육관련 부탁을 받고, 재광동지캉 야총동지에게 전화로 결합관련 이야기를 하고, 부산으로 부산으로 가는 중에 차창 너머로 보이는 야산의 풍경이 저를 잡았습니다. 상록수 사이에 세를 확장하는 '신록'의 기운은 참 보기도 좋았지만,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아 한마디로 ‘굳’이었습니다.
4. 시간약속이란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는데요. 다른게 아니라 배시간이 아슬아슬해서 전철역에서부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냅다 뛰어 가까스로 승선하구 나선,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면서 “증말 여유있게 살아야지” 해드랬습니다. 별일없이 장승포항에 도착, 태호동지의 자가용(미리 드럽다고 선수치는 차)타고, 현민투 사무실로 직행.
5. 현민투 사무실에 도착하니 회원들이 몇몇 모여 청소하느라 부산스러웠습니다. 사실 현민투 동지 뿐아니라 현장조직활동하는 모든 동지들이 현장활동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 든든합디다. 물론 걱정도 그만큼 아니 더 있어야 겠지만요. 4-50여명 온다던 기억에 비하면 적은 20여명이 참석했지만, 다른 현장조직의 활동가들도 참여해서 의미있는 자리였다 싶습니다. 아이구는 2시간 가까이 얼굴이 벌개지면서 침튀기며 설레발을 쫘악 깔음. 이날이 첫 자리이고 실천학교 입교식이라 아이구 구라에 이어 후속 ‘힘’을 23시경까지 다짐. 다져진 알곡은 6차례 이어질 자리에 빠짐없이 참여하자, 제조직이 함께하는 자리여서 좋았고 더 진전시켜나갔으면 좋지 않겠는가, 아이구 구라가 뭐! 참! 좋았데는 둥 등등이었죠. 대조노조 집행부 선거에 10월경에 있을 거라는 걸 다 아시죠.
6. 태호동지 숙소(옥포소재, 2인1실, 잡상인 및 커피배달 단속 등)에 가서 쪼매 늦게까정 현장상황, 제조직관련 현황, 현민투관련 이야기 등을 안주삼아 캔맥주 쬐금으로 지침을 자꾸 자꾸 어김. 거제가 섬이라는 특성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매매춘’ 문화가 극을 이루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디다. 참, 태호동지 결혼 스트레스 관련 이바구도 빼뜨리지 않았죠.
7. 담날은 현민투 단합을 위한 회원 가족동반 모임에 가서, ‘황달관련 지침 왕창 박살’ 결의로 무리한 유기용제를 위장투입함. 무슨 폐분교였는데, 정년퇴직한 현민투 회원이 그림방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림에 대해 ‘그림’이구나 하는 수준의 저로서는 그냥 그런 정도였는데, 현민투 회원들은 자기식구여서 그런지 아님 실제로 그런지 ‘참, 좋다’를 연발하더라구요. 다양한 놀이와 떼축구 그리고 족구 등을 하면서 육신을 다구쳐습니다. 아직도 다리가 약간 묵직합니다. 아, 2인3각 이어달리기도 했는데 무척 빨리(제가 생각하기에) 뛰어 제가 소속 팀이 승리를 하였습니다. 물론 제가 참여한 축구경기도 4:2로 승리했죠. 글구나서 지세포 자장면 집에 가서 역시 떼로 먹기를 하고, 태호네 가서 씻고나서 민섭동지네 가서 개표방송보면서 저농도의 곡주로 목축이기 실시.
8. 간만에 민섭동지 식구들이 차려준 아침밥 든든하게 먹고 08시 배타고 부산으로. 무리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목간통으로 가서 때도 밀었는데, 국수가락 뚝뚝. 지붕고치기는 이발소를 못찾아 아쉽지만 서울로 이월. 부산연구소와서 현자사업팀 2차 회의자료 만들고 숙견동지랑 민의련 종남동지랑 소곤소곤도 하다가, 말만 무성했던 부산 물밀면을 꼽빼기로 포만감을 그윽.
9. 현자팀 2차 회의를 상기동지, 정원동지, 인아동지랑 한 후, 지금 저녁으로 부산비빔물면을 기다리는 중. 집행위 이후 부산회의참여하고 집으로 간닷.
천사불여일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