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쟁사업장상황-정립회관

정립회관에서 그들의 현실을 발견하다
 [차별철폐 대행진 현장-장애]

노동과세계  제306호 
강상철 


숨막히는 공간…시혜와 동정은 또 다른 차별일뿐

차별의 벽을 허물 듯한 기세로 80여 행진 참가자가 정립회관에서부터 '차별철폐 발도장'을 꾹꾹 찍어나가고 있다. 걷는 것, 오로지 걷는 것이다. 소외되고 억압받고 차별 받아 온 사람들. 이제 그들 중 한 무리가 아차산역에서 항거하고 있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뿐인 도시 문명에 원초적 발걸음으로 맞서고 있다.
휠체어가 아스팔트 위를 구른다. 바퀴는 차별을 눈덩이처럼 굴려온 장본인. 장애인들은 바퀴를 굴리면서 가슴으로는 비장애인들과 함께 뚜벅뚜벅 걷고 있다. 이들은 어쩌면 단숨에 차별의 벽을 뛰어넘을 만큼 뛰고 또 달리고 싶을 것이다. 허공을 메워 가는 이들의 외침, 그 파동은 평등하다. 그들은 외친다. "이젠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신답역을 지나 시설관리공단에 이르자 휠체어가 주저앉았다. 쉼 없는 '걸음'에 타이어 공기가 다 빠져버린 것이다. 장애인들의 열망과 함께 공기도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갔나 보다. 불현 듯 행진 시발점인 정립회관 현장이 스쳐 겹쳐 떠오른다.
시간이 멈춰버린 정립회관. 한국 최초의 장애인시설이다. 소나무가 우거진 조그만 정원을 지나 회관건물이 나타난다. 그 앞쪽으로는 '정립전자'라는 회사가 서 있다. 장애인들이 일을 하는 곳인 모양이다. 정립회관에 들어서면서 폐쇄병동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길게 보이는 한산한 복도. 복도의 방들은 사람냄새가 풍기지 않는 고립된 공간 같다. 간혹 휠체어가 오가지만 장애인들은 음울해 보인다. 비틀거리는 지체장애인들의 걸음걸이가 숨차다. 별로 길지 않은 복도가 그렇게도 길게 보인다.
벽면의 페인트는 더덕더덕 일어나 에이즈환자 피부처럼 보인다. 그 누더기는 휠체어가 올라가는 복도를 따라 2층으로 계속된다. 기댈 엄두가 안 나, 는 도저히 사람 사는 벽이 아니다. 구석구석 걸린 거미줄, 지진이 일어난 땅처럼 군데군데 갈라진 콘크리트 벽에는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있다. 3층으로 올라가도 마찬가지, 폐가가 풍기는 오싹한 느낌이다.
복도에는 간간이 의자와 소파가 놓여 있지만 왠지 부자연스럽다. 앉아서 쉬고픈 생각이 싹 가시는 정나미가 떨어지는 자리다. 복도 한 구석엔 고장난 휠체어 하나가 널부러져 있다. 쌓인 먼지로 봐선 꽤 오랜 된 것 같다. 3층 노들야학교실은 문이 잠긴 채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복도에는 집기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어느 것 하나 제 자리에 있는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 장애인은 450만을 헤아린다. 여러 가지 차별에 극단으로 치달리면서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한 장애인들이 지하철 철로에 몸을 던지고 있다. 하다 못해 시설만이라도 제대로 운영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오늘 한국의 장애복지시설의 현주소를 정립회관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4층에서는 '보호작업장'이라는 곳에서 장애인 10명이 장애인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이쑤시개를 통에 넣고 그것을 상자에 담는 협업작업. 이들의 노동은 이쑤시개 하나 집어들기도 힘들만큼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다들 열심히 일에 몰두한다. 생계유지와 노동, 장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시혜와 동정은 또 다른 차별이다. 그래서 이들의 얼굴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고통의 씨앗이 아닌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강상철 prdeer @ nodong.org

 
 
2004-09-20 11: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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