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펌]서울로 돌아온 지난 6개월 나는 이라크를 앓았다

발악중..--;

===============================================================


서울로 돌아온 지난 6개월 나는 이라크를 앓았다 
거리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6월 초 이라크로 출국한 이동화 씨 
 
 기사인쇄  기사전송  남화선 기자
 
 
 
▲이동화


한번 다녀온 사람은 병에 걸린다고 했다. 그 곳, 전쟁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라크를 떠나 서울 행 비행기를 타고 내렸을 때, 그는 눈앞에 펼쳐진 비현실감에 다리가 휘청였다고 했다. 이 밝고 부시고, 어디도 폭파되지 않은 거리. 사람들은 아무도 총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돌아온 지 6개월만에 다시 짐을 쌌다. 현실감을 느끼며 살아야하지 않나. 그는 마치 몇십년 만에 돌아가는 고향을 말하듯 이라크를 말했다.

이제는 큰 포탄이 떨어지지도 않고, 사람들이 떼거리로 죽어나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라크에 들어왔던 엔지오와 기자들도 한꺼번에 다 빠져나갔다. 그들은 대부분 바드다드 시내에 몰려있었다. 큰 병원과 큰 학교 중심으로. 재원이 턱없이 부족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것은 몰려있었고, 대부분의 외곽사람들은 종전이 된 지금도 전쟁을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폭파된 학교에서 세 개의 방에 145명의 아이들이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공부가 파하면 밖으로 나가 구걸을 하고, 껌과 물을 팔고, 석유를 삥땅쳐 판다. 그 중 구걸을 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다. 아이들이라 함은 젖을 막 뗀 아기부터 18세 이하의 청소년까지 모두 다. 아이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른들이 1년 사이 삶의 기반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공포와 무력감에 무너지는 사이, 아이들이 집밖으로 나와 구걸과 구두닦이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한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은 적게는 여섯 명, 많게는 스무 명이다. 워낙 대가족인데다 여러 가구가 한 집에 모여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대개 아침을 굶는다. 그리고 아침 때가 지나면 기온은 60도를 오르내린다. 그래도 아이들은 공차기를 하러 길 위로 쏟아져 나온다. 이동화 씨는 2∼3분을 차지 못하고 그늘에 들어가 쓰러지고 만다. 그러면 아이들은 환한 얼굴로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헉헉대는 동화 씨를 내려다보며 팔을 잡아 끈다. 동화 씨는 그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다고 했다.

환각제로 눈이 풀린 아이가 뽑아 든 건 당장이라도 포획물에 꽂힐 것 같은 칼

본드를 손에 대기 시작한 아이들. 전쟁으로 약국이 털리면서 환각제도 아이들 사이를 돌고 있다고 했다. 거리에 나서면 눈이 풀린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아이들이 허리춤에서 뽑아내는 것은 햇빛에 반사돼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칼.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텔리조차 감정의 기복을 담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한국군이 들어오면 총을 들어 죽일 것 같다고."

부정기적인 게릴라 전은 여전히 숨막히게 계속되고 있다. 미군 한 명이 죽으면 이라크 인은 열 명 정도가 죽어나간다. 그 열이라는 숫자 안에는 눈물이 짙게 배어 있다. 씨족사회를 이루고 사는 그들의 열명을 채우는 건 전부 나의 가족, 그리고 친지들이다.

처음부터 이라크 인 전부가 미군을 미워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이라크에는 분명히 수니파를 중심으로 반사담 감정이 깊게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의 실체를 알기까지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걸프전이 끝나고 나서 사담이 재집권 했을 때는 최소한 몇 달 지나지 않아 마을마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설치된 스프링쿨러가 다시 돌았다. 스프링쿨러가 돌기 위해서는 많은 석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석달이 지나도록 석유 이권을 틀어쥐고 60도의 더위를 무참히 내려다보고만 있다. 그리고 밥을 굶는 이들도 돌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바그다드 중심 거리를 돌며 사탕을 뿌리고 아이들 학용품을 뿌렸다. 이라크 사람들을 거지로 취급하며.

그리고 재건시스템도 정비했다. 미군이 지명한 관료들을 모아다가. 그러나 그 연합행정파는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이라크 인들이 이들에게 협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이들은 종교조직을 중심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팔루자에서 대학살이 진행되었을 때 이들을 받쳐 준 것은 수니파건, 시아파 건 무슬림은 하나라는 강한 결속력이었다.

미국은 그들에게 왜 거지행세를 하지 않느냐며 윽박지른다

팔루자에 대항한 젊은 급진세력을 계속 지원할 수 있었던 건 그런 정신이었다. 무슬림에게는 누구를 막론하고 사원을 공격당하는 것은 큰 치욕이다. 또한 무슬림을 이루는 다섯가지 계율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기부'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 이들은 이라크전 이전부터 전세계의 그늘진 곳에 지속적으로 기부의 손길을 뻗쳐 왔다. 도움의 일상화. 미군은 그런 그들을 지금 거지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후세인 집권 때 민중들에게 반발을 샀던 관료를 중심으로 새로운 재건 시스템을 짰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자신의 공동체를 유지시켜준 종교 조직이 이들 삶 구석구석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기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학살의 기간 동안에도 종교예식은 멈추지 않았다. 라마단 기간. 4주 28일 동안 이들은 해가 뜬 동안에는 음식을 입에 대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차를 마시지도, 일을 하지도, 사랑을 나누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보낸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난 뒤면 소박하지만 다른 때보다 좀 더 풍성한 저녁식사 시간을 맞이한다. 그런 예식 안에서 저녁식사는 자연스럽게 만찬이 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이동화 씨도 이들과 똑같이 라마단 예식을 치뤘다.

이동화 씨는 라마단 기간 동안 해가 진 뒤 고요함에 잠긴 사람들을 사진에 담기 위해 사진기를 갖고 집 밖으로 나선 적이 있다. 그때, 테러범으로 오인받아 가슴에 총기가 겨눠진 적이 있다. 테러가 발생하면 미군은 라마단 기간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마을의 모든 집을 발로 뻥 차고 들어가 가장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해가 진 뒤 이런 행동을 당하는 것은 무슬림들에게 대단한 모욕이다.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오만함은 이라크의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에게는 미국의 문화가 있으니까. 미국은 지금 텔레비젼을 통해 포르노를 여과없이 내보내고 있다. 이라크는 여자들이 집밖을 나설 때 얼굴을 가리는 히잪을 쓴다. 신체는 물론 얼굴도 노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간통죄는 살인에 처해진다. 그런데 지금 그 여인들이 매춘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전쟁으로 남편과 가족을 잃은 여인들이 찾을 수 있는 다른 일자리는 없다.

미국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묵사발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자신들의 포르노 문화로 새로운 꽃을 피우려 한다.

히잪을 쓴 여자들이 거리의 여자로

다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저들은 코카콜라와 롤스로이스, 맥도날드를 위해 삶의 신비와, 행복, 우정을 빼앗아가고 수많은 보호받아야 할 것들을 만신창이로 짓밟는다. 가장 기본적인 일상의 평화를 마지막으로. 이동화 씨는 이라크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저 몸이 다급해진다고 했다. "이유를 묻는 것이 중요한가요?" 그 아이들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어떤 파급력을 낳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군이 다시 파병을 결정했을 때, 이동화 씨는 그곳에서 한동안 앓았다. 그리고 매일 보는 그들의 눈을 차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에게 다가와 "한국만 파병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며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서울로 떠날 때 모두 눈물로 이별을 받아들여 주었다.

"29년을 서울에서 살고 그곳에서 단 6개월을 살았지만, 이곳에 돌아온 순간 너무 낯설었어요. 그 낯섬은 내가 짐을 다시 싼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어요. 다시 돌아올 때는 내 속의 이 비현실감을 지울 때가 되지 않을까요. 미군이 이라크를 완전히 떠나는 날이 그날이 될른지..."

이동화 씨(30)는 6월 초 이라크로 떠났다. 그는 바그다드 외곽에서 주로 어린이 교육 일을 하며 최소 3년 이상을 머물 계획이다. 이동화 씨는 그 기간동안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애쓰고 있는 그곳의 일상을 미디어참세상을 통해 전할 예정이다. 
 
2004년06월16일 18:21:17
불량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