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위원/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손미아
(intro)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넓고 넓은 낮은 야산을 따라 집을 지으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산과 들이 굽이굽이 펼쳐진 마을 사이를 버스로 위험하게 내달리는 것 보다 지방 곳곳에 횡단 및 종단 철도를 놓는다면, 지역 주민들 간에 교류가 보다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직장 때문에 경춘선을 달리면서, 그리고 작업현장을 돌아보기 위해 남도 끝 목포와 여수까지 달리면서, 굽이굽이 펼쳐진 야산과 들줄기들을 따라 굽이굽이 철도가 놓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기분 좋은 상상! 실제 노르웨이와 스웨덴을 잇는 국가 간 철도는 산꼭대기 최정상의 줄기를 따라서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최근 빈발하는 대형 철도 사고를 생각하면 매우 위험한 상상이 될 것이다.
대형 철도 사고의 발생 원인
최근 대형 철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고, 이 대형 철도사고는 이제 철도 노동자들에게 뿐 아니라 철도를 이용하고 있는 승객들을 향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대형 사고들 즉, 2003년 2월 15일 새벽 호남선 선로보수 작업 중 노동자 7명이 열차에 치어 숨진 사고, 5월 30일 대전에서 발생한 호남선 새마을호 탈선 사고, 지난 8월 8일에 발생한 경산역 열차 추돌사고 들은 하나같이 경제위기 이후의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으로부터 기인하는 필연적인 결과들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해당 기관사나 노동자 또는 하급 관리자에게만 그 책임을 전가하여 왔다. 일련의 대형 철도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시종일관 해당 기관사의 구속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언론은 마치 정부의 이런 대책을 대변해주듯 ‘기관사의 과실’에 모든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다. 우리는 정부와 철도청이 사고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는 그 순간에, 침묵 속에서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또 다른 대형사고가 어디에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이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지 못할 뿐 아니라, 철도의 안전을 사수하려는 철도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억압일 뿐이다.
우리나라 대형 철도사고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철도 설립 이래로 방치되어 온 안전시설의 부재이다. 이 안전시설의 부재는 지금까지는 주로 침목 보수나 선로 보수를 하는 선로반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15일 호남선 선로 보수 작업 중 발생한 시설노동자 7명의 사망사고는 명백하게 안전시설의 부재로 인한 대형 사망사고였다. 또한 1999-2001년 사이의 선로반의 사망사례를 살펴보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안전감시가 없이 작업을 한 결과였다(철도노동조합, 2002). 지난 1999년과 2001년 사이에 선로반에서 발생한 사고 사례 6건을 보면, 5건이 모두 새벽 0시에서 6시 사이에 발생했고, 6건 모두 안전감시 체계가 없는 선로 작업 중에 열차에 추돌하여 사망했다(위의 글, 2002).
그런데 이제는 대형 열차추돌 사고로 이어지면서 승객들에게 그 죽음의 위험이 확장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8월 8일 경산역 열차 추돌사고의 경우를 살펴보면, 현장에서는 신호기 교체 작업 중이었고, 이에 대한 안전조치가 미흡하였다. ‘신호기 교체 등의 이유로 기존 신호기의 사용을 정지할 경우, 이 구간의 신호기를 소등하고 신호기 등함에 ×표시를 하거나 신호기를 옆으로 돌려놓아야 함(철도노동조합성명서, 8월 14일)’ 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5월 30일 발생한 대전역 새마을호 탈선사고도 철거 작업 중이던 인근 육교에서 갑자기 날아 들어온 대형 철제빔에 열차가 추돌된 사고였다. 그러므로 위 사고들은 모두 보수 작업 현장에 대한 적절한 안전 감시 인원과 안전 감시 체계가 없어서 발생한 사고들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감시체계의 와해가, 바로 98년 경제 위기 이후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인력감축과 안전관리시설의 축소로부터 유발되었다는 점이다.
철도 노동자의 사망재해 발생 양상
한편, 실제 철도작업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철도 노동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24시간 교대제, 교번제등을 통해서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려 왔으며, 극단적인 피로축적으로 인한 과로사의 증대와 사망사고를 겪고 있다.
1991년에서 2001년까지의 297건의 철도 노동자 사망재해 자료와 1998년에서 2001년까지 82례의 철도노동자 사망사례를 보면, 인원감소와 사망률의 증가는 반비례하고 있다. 1994년 이후 2001년까지 인원은 12%가 감소했으나(1994년 31,424명-> 2001년 27,617명), 구조조정 이후 사망만인율은 이전보다 20.3%가 증가했다(1998-2001의 사망만인률은 10.06, 1994년-1997의 사망만인율은 8.36). 1991년-2001년까지 10년 동안 원인별 분포를 보면 전체 297사망사례 중, 과로사가 128명으로 43.1%를 차지하며 사고사는 116명으로 39.1%를, 교통사고는 48명으로 16.2%를 차지한다. 사고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선로작업사고가 52명(17.5%), 구내 입환 사고가 26명(8.8%), 선로 순회사고는 16명(8%)을 차지하고 있다. 1998-2001년 사이의 사망사고의 직무별 분포를 보면 전체 사망사례 82건 중, 운수와 보선 직무가 28명(34.1%), 25명(30.5%)으로 전체의 64.6%를 차지하고 있다. 1998년-2001년 사이의 직무별 사망만인율은 보선직무가 만명 당 15.51 명 사망, 운수 직무가 14.51명 사망으로 가장 높다. 사망원인별 분포를 보면, 1998-2001년 사이의 사망사례 82건 중, 과로사 33명(심혈관 25.6%, 간장 9.8%, 뇌혈관질환 4.6%), 열차 추돌사고 23명(28%), 추락 3명(3.7%), 기타 (중량물 낙하, 전기감전, 열차탈선) 등으로, 사고사의 주요 원인은 열차 추돌 사고였다(철도노동조합, 2002).
구조조정과 노동강도의 강화가 안전사고와 사망재해를 유발하는 주범!
철도 사망재해의 증대는 노동강도 강화의 결과이다. 장시간의 노동시간과 인력감축이 결국 철도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고, 이러한 상황이 철도노동자의 사망재해 증가와 대형 안전사고를 유발하고 있다. 특히 ’24시간 주야 맞교대’와 ‘교번제’는 장시간 노동시간의 주범이라고 볼 수 있는데, 24시간 주야 맞교대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노동력을 다 써버리는 상황에까지 현장에 머물러 있도록 강요한다. 이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모든 사고와 행동이 마비되기 시작한다. 인간의 노동력은 매일매일 재생산이 되어야 하는데, 이틀에 한 번씩 한꺼번에 재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24시간 근무하는 당일은 철도 노동자에게 노동력의 재생산 기회마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승무원과 기관사의 교번제는 운행 중인 열차에서 근무하는 시간 외에 역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근무시간으로도 제대로 인정되고 있지 않다. 노동을 1일 24시간 전체에 걸쳐서 강요하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속성인데, 철도처럼 24시간에 걸쳐서 중단 없이 계속되는 노동과정이나 교번제는, 자본에게 가장 효율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24시간 주야 맞교대와 교번제는 철도 노동자들을 극도의 피로감에 싸이게 하는 주범이며 노동재해와 대형 사고의 주원인인 것이다.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관련 노동자 몇 명과 하급 관리직을 구속함으로써 사태를 마무리지으려는 정부와 철도청의 대응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이미 한계 상황에 처한 안전시설의 노후, 인력감축에 따른 집중력이 상실된 작업 현장, 이 모든 것들이 구속자 몇 명의 책임으로 개선될 수는 없을 것이다. 피를 말리는 주야 맞교대제, 교번제를 당장 인간다운 노동으로 바꾸어야 하며, 철로를 감시하고 안전을 담보할 인력을 다시 충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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