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월/만나고싶었습니다]”필이 딱 꽂혔던 거죠. 이것이 주인되는 투쟁이구나!”

일터기사

[만나고 싶었습니다]

“필이 딱 꽂혔던 거죠. 이것이 주인되는 투쟁이구나!”
-금속노조 충남지부 베스콘지회 정책산안부장 남규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편집실 박지선

부끄러움에서 ‘우리도 할 수 있겠구나’로!

6월 28일 충남지부 근골격계 집단 요양 돌입 이후 계속되는 부분파업과 간부 철야농성 돌입, 그리고 숱한 지역투쟁에의 연대까지. 실로 2003년 상반기 가장 가열차고도 지침없는 투쟁을 전개해 온 사업장 중 하나는 충남지부, 그 중에서도 베스콘지회일 것이다. 단협사항 위반, 산보위 거부 등 사측의 교묘한 획책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60일차를 훌쩍 넘도록 농성 중인 베스콘지회의 천막을 찾아, 정책산안부장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해 온 투쟁으로 느끼기에는 누구보다도 거칠고 딴딴한 사람일 듯 했지만, 그의 첫 대답은 의외로 너무나 유순하고 겸손했다.
“2003년도 2월달에 VDO한라에서 있었던 산안담당자 수련회에 처음 가게 됐구요, 거기서 근골격계 관련한 내용들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많이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왜 그랬냐면, 그 전에 겨울부터 근골격계 관련한 포스터가 붙기는 했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고, 무슨 무엇을 뜻하는지도 몰랐거든요. 갑자기 그 전부터 통증을 호소하던 조합원이 생각나더라구요. 그러면서, ‘어유, 이거 분명히 조합이 나섰어야 될 부분인데, 우리가 몰라서 방치하고 있었구나’ 라고 느꼈고, 진짜 얼굴도 못 들 정도로 화끈거리면서… 그래서 교육받는 동안 내내 부끄러웠죠. 또 그러면서 필이 딱 꽂혔던 거죠. 우리도 할 수 있겠구나…”

어짜피 무너지면 다 무너지는 거니까…

그는 2000년 베스콘에 입사하기 전에는 그의 표현대로 ‘먹고사는 일만’ 했다. 하지만 입사 이후, 노조를 결성하고 이를 사수하기 위한 100일 파업투쟁을 벌여나가면서 그는 세상과 노동의 다른 한 쪽을 보게 되었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토론과 싸움을 계속해 나가면서 그는 어렴풋하게나마 일하는 이들이 가진, 숨겨진 반쪽의 진실을 깨달았다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장활동가로의 삶을, 게다가 철야농성까지 진행하고 있는 지금을 버티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가족에게 많이 미안하죠. 옷 갈아입으러 집에 잠깐 들어갔다 오고 그러면 자고 있는 모습만 보거든요. 새벽에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그러면 참 많이 미안하고 그렇죠. 말로는 거창하게 막 얘기하잖아요? 우리 어짜피 노동자인데, 좀 더 나은 미래를 얹어주기 위해서, 자식교육을 위해서… 뭐 그러는데, 사실 잘 안될 때가 많아요. 그래서 가슴 한쪽이 아릴 때가 많죠. 그래도 이해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어짜피 무너지면은 다 무너지는 거니까… 무너지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는 얘기 가끔 하고. 힘을 얻을 때가 많죠.”

안 아플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콘지회는 벌써 반 년이 다 되도록 근골격계 투쟁을 준비하고, 싸워오고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 가장 큰 힘은 역시 현장에서 같이 노동하며 투쟁한 이들이다. 노조 간부든, 현장 요양자든, 실천단이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투쟁을 해야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진짜 이만큼 아팠고, 일을 너무 열심히 한 게 그 이유였다’는 것을 알아가고, 고쳐나가는 과정이 소중하다고 한다.
“조합 일 하면서 힘든 부분은 물론 있죠. 하지만, 요양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오늘 같이 막 아프다고 투정만 부리고 막 화만 내다가도, 다른 사업장 요양자 분들한테 얘기할 때는 선배된 입장에서 얘기해주고… 그럴 때 보람도 느껴요. 이제 치료가 얼마가 된 거고, 이제 안 아파졌다, 예방이 되고, 회사의 태도가 어떻게 변했다 이런 얘기 해주거든요. 결국은 같이 공감하고 있다는 거예요. 근골격계 투쟁의 희망은… 안 아플 수 있다는 거요. 안 아플 수 있었고, 안 아플 수 있는 길도 있고요. 그런데 그거를 몰랐다는 게 지금까지 고통받았던 과정이고, 이제 알았으니까 안 아플 수 있다는 거거든요. 그게 주인되는 투쟁이고, 그게 희망이라고 봐요. 고생하는 동지들, 앞서서 투쟁을 전개했던 동지들께는 미안한 부분도 있어요. 그 이상을 확보해야 되는데, 그 미리 만들어진 투쟁에서조차 갈팡질팡하고 계산하고 있고… 그런 모습들이 너무 미안하죠. 노동강도 완화와 물량감축, 그리고 인력충원에 관련된 게, 지금은 딱 부러지게 ‘이겁니다’ 하면서 말씀드릴만한 상은 없어요. 하지만 그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투쟁할 겁니다. 그렇게 하고싶어요.”

참 비가 많이도 오는 이번 여름, 그는 인터뷰를 끝내고 또 다른 곳으로 빗속을 뚫고 휘적휘적 뛰어갔다. 자본과 사측의 압박이 폭우처럼 쏟아질지언정,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한 그 모습에서 진득하고 풋풋한 노동자의 여유를 느낀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도 자신 있게 ‘주인되는 투쟁’을 이야기할 수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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