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0월] 아침 넷, 저녁 셋이 싫으면 아침 셋, 저녁 넷?!

일터기사

[칼럼]

아침 넷, 저녁 셋이 싫으면 아침 셋, 저녁 넷?!
민중의료연합 노동조합보건의료정책센터/
한림대 의대 사회의학교실 교수 최용준

9월 3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에서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차상위계층 등 빈곤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대책”을 살펴보는 심사가 그렇게 묘할 수 없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문제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전보다 적극적인지라 한편으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필자가 관심을 갖는 건강보험 분야만 하더라도 내년부터 진료비 상한제가 도입된다니, 생색내기용이 아니라 진짜 도움이 될 만큼 상한(上限)이 정해진다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심사가 편치 않은 것은, 정부가 진료비 상한제에 쓰일 돈을 어디서 마련하려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진 지난 2000년부터 정부가 이따금씩 해온 얘기들을 보면 그 의심은 가중된다. 감기 등 가볍고 흔한 병을 치료하는 데 썼던 돈을 절약해서 중한 병을 치료하는 데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즉 감기 같은 가볍고 흔한 병에는 상대적으로 진료비에 덜 들어가니 아예 환자 본인이 비용 대부분을 지불하고, 거기에서 절약되는 돈으로 치료비가 큰 중한 병의 진료비로 쓰자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합리적인 주장 같다. 적은 진료비는 부담할 수 있으니 중한 병에 걸려 살림살이가 파탄 나는 것을 막는 것이 낫겠지. 하지만, 머릿속을 떠나지는 않는 생각은 감기 같은 가벼운 병으로 보험재정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가 하는 것이다. 진짜 그럴까? 감기라면 며칠 쉬면 저절로 낫는다고 하지만, 그렇게 아플 때 병원 가서 약 쓰지 않고 아프면 쉴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다들 아파도 쉴 수 없기 때문에 약국을, 병원을 찾는 것 아닐까? 아니,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액(!) 진료비마저 부담스러워 감기 정도는 이미 병으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그래서 진료비 상한제가 꼭 필요한 정책인데도 언젠가 뒤따라 나올 것만 같은 소액진료비 본인부담제도 때문에 마음이 개운치 않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보험재정 지출 규모는 달라지지 않는데 오히려 대다수 사람들의 본인부담금만 커질까 봐 걱정이다. 게다가 그 상한선도 보험이 적용되는 부분에 한해서 설정될 것이라니, 보험적용 범위가 절반에 불과한 현실에서 그마저 생색내기에 그칠까 봐 걱정이 앞선다. 두려운 것은 따로 있다. 건강보험이 이러다 사람들에게 환멸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의료시장 개방,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 말 많고 탈 많은 제도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건강보험을 아예 망쳐버려 그나마 남아 있는 희망의 싹마저 짓밟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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