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편집실 이민정
(intro)
어느 취업사이트에서는 골프장 경기보조원을 “평생, 안정된, 높은 수입의 직장” 그리고 “전문직이라, 사명감으로 일하며, 최고의 보수를 받는 job”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일터>가 만난 골프경기장 보조원은 ‘자격정지’ 공고 한 장이면 언제라도 일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는 ‘직원 아닌’ 사람들이었고, 10년여를 일해오면서 모두 다 골프 공에 한번쯤은 맞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골프 한 게임을 위하여 천재지변도 이겨내야 하는 사람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유성C.C를 찾아간 날은 음산하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다. ‘이런 날씨에 골프 치는 사람은 없겠지’라는 예상을 뒤엎고 잘 닦인 진입로에는 고급승용차 서너 대가 화려하게 들어서 있었다.
38만평 멋진 골프장 한 구석, 허름한 건물에 위치한 유성C.C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골프장 경기보조원 10여 명은 한결같이 8년에서 10년까지 일해왔다. “비와도 골프를 치네요”라고 첫마디를 건네자 “비 오는 날 핀 들고 서 있다가 벼락 맞을까봐 얼마나 걱정인데유.”라고 넉살좋게 받아친다. 그러자 다른 경기보조원도 “겨울에 눈이 발목까지 쌓여도 부킹(손님의 골프경기 예약) 있으면 나가요. 그런 날은 공이 저기 떨어져도 들어간 구멍만 보이지 공을 찾으려면 눈밭을 한참 헤매야 된다니깐.”이라며 한마디 거든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의 수입은 손님이 직접 지불하는 ‘게임당 봉사료’뿐 아니라,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물론 공휴일과도 상관없이 게임이 있으면 무조건 나가야 한다.
“골프공에 안 맞아 본 사람이 없어요”
“옛날에 노조 없을 때는 공 맞아서 다리 부러져도 치료비도 못 받고 출근하면 자격취소였으니깐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졌지. 회사에서 상해보험 들어 놓은 게 치료비 100만원까지 밖에 안 나와요. 그래도 저번에 전동차 카트에서 떨어져서 척추 뼈가 부러진 언니는 산재처리라도 됐지만, 아직까지도 알아서 자기가 치료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그나마 전동카트가 도입되면서 15kg이나 하는 골프백을 들고 다니는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무거운 짐을 들고 매일 코스청소와 전동카트청소를 하느라 팔, 다리, 어깨 안 쑤시는 곳도 없다. 경기보조원으로 10여 년간 일하면서 골프공에 안 맞아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공에 맞는’ 이야기가 나오자 각자 자기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느라 갑자기 분위기는 더 시끌벅적해진다.
“공이 내 눈앞으로 몇 번이나 지나갔는지 몰라. 먼저 가는 손님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해도 욕먹고, 그 언니는 골프채 휘두를 때 맞아서 이빨이 다 나갔잖아.” “옆에서 경기하고 있는데 다른 홀에서 코스청소하고 있다가 공을 맞기도 하거든요. 그럼 쪼그리고 앉아서 일하다 공이 날아올 것 같으면 엉덩이만 이렇게 한쪽으로 피해요. 먼저 본 사람들이 ‘볼!’하고 크게 소리쳐요.” “보조원도 사람인데 공에 맞았는데 욕하고 ‘머리를 뿌개버린다’고 하던 손님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거 공개사과 한 번 받고나서 조금 나아졌지.”
고객이 해고한 것이고, 회사는 어쩔 수 없다니
이 날 만난 경기보조원들은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해 4개월째 회사와 싸우고 있었다. “사장이 말하길 ‘언니들(경기보조원)은 사장이 고용한 게 아니라 손님들이 고용한 거래. 일터를 제공하고 일자리까지 알선해줬는데 이제 와서 왜 이러냐고 그러대. 고객이 해고하고, 고객이 복직을 반대해서 자기는 어쩔 수가 없대.”라며 경기보조원들은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예전에는 회사에서 직접 지급하던 골프장 경기보조원 급여가 손님이 지급하는 봉사료로 바뀌면서 회사는 “직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오는 날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한참 수다를 떨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던 경기보조원 중 한 명이 지나가는 말로 내뱉는다. 20년간 유성C.C에서 일하던 경기보조원들은 이제 뜨거운 물로 샤워는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직원은 아닌’ 사람들로 남아 있다고. 물 좋고 공기 좋은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38만평짜리 유성C.C는 평균 10여년째 일해온 전문직 경기보조원들이 있고, 비가 오던 그 날도 운 좋은(?) 몇몇 경기보조원들은 비를 맞아가며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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