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공유정옥
1. 두 기관사의 죽음
지난 8월, 도시철도의 기관사로 일해 온 서른다섯의 젊은이 두 명이 세상을 떠났다. 8월 17일 저녁에는 근무를 마치고 열차에서 내려 선로를 걷던 S씨가 열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98년에 우울증과 불안증세가 발병하여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면서 일해 온 지 5년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보름도 되지 않은 8월 30일 아침에는 2001년부터 정신질환의 치료를 위해 휴직해오다가 올 해 10월 업무 복귀를 앞두고 있던 I씨가 고향 여수의 돌산대교에서 몸을 던져 삶을 마감했다. I씨는 투병기간 중 세 차례나 증상이 좋아져서 업무에 복귀하려다가 그 복귀의 두려움에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번번이 포기한 일이 있었다.
도시철도에는 두 분 이외에도 승무·역무·기술·차량 등 각 직종에 적응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수면장애 등의 질환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은 두 기관사의 죽음을 “정신질환자 수년간 전동차운전 <충격>“이라는 식으로 다루었지만, 이는 젊고 건강하던 그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끝내 죽음이라는 파국으로 몰아붙인 원인을 외면하는 처사이다. 고인들의 죽음은 결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며 명백히 도시철도의 병적인 노동조건에 기인한 것이다.
2. 승무노동자의 정신건강 유해요인
2003년 상반기 도시철도 노동자들에 대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정신건강 상태가 양호한 “건강군”은 2.3%에 불과한 반면 스트레스로 인하여 각종 질병의 위험이 있는 “고위험 스트레스군”은 무려 38.9%에 달하였다. 특히 승무직종(기관사)에서는 고위험 스트레스군이 40%를 넘어 전체 평균을 웃돌았으며, 여러 직능들 중 직무 긴장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스트레스의 일차적 원인은 열차 운행시 시간에 쫓기는 한편 사고에 대한 긴장감 속에서 오로지 형광등 불빛만 바라보며 혼자서 어두운 터널 속을 달려야 하는 지하철 기관사 업무의 고유한 노동조건에 있을 것이다.
“지뢰밭에 혼자 들어가는 기분 아세요?” – 사고에 대한 부담감
지하철에서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도시철도 승무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13.5%는 거의 매일 출입문 사고를 당하며, 전동차 고장도 90% 이상이 적어도 한번씩은 경험한 적이 있을 정도로 빈번하다. 기관사 145명 중 19명은(16.4%)은 사상사고를 겪었으며, 그 중 11명은 2회 이상의 중복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철저히 훈련을 받아도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초긴장 상태에 빠진다. 게다가 도시철도는 1인 승무 체제이므로 사고를 함께 수습할 동료가 없다. 기관사 혼자서 사고 수습하랴 사령실에 보고하랴 안내방송 하랴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인명사고가 나면 열차에 치어 조각난 시신을 일일이 수습하는 일까지 맡아야 한다. 또한 아무리 작은 사고라 해도 이후 사고경위에 대해 까다로운 조사를 받고 그 결과가 개인의 근무실적 평가에 반영된다.
“1분만 늦어도 안 됩니다” – 시간과의 전쟁
지하철의 역간 이동시간은 평균 2분. 기관사에게는 무사히 출입문을 닫고 다음 역으로 가서 안전하게 정차를 시켜야하는 임무가 2분마다 한번씩 반복되며, 문을 다시한번 열고 닫는 그 몇초의 시간조차 기관사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승무노동자의 27.5%는 열차 운행때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받으며 특히 출퇴근 시간이 되면 87.5%가 이런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압박감은 단지 업무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잠시라도 운행이 지연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기관사 개인에게 전가되고 개별 노동자의 근무실적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교번제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
기관사들은 어떤 날엔 새벽부터 낮까지, 어떤 날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어떤 날엔 저녁부터 새벽까지 근무한다. 따라서 매일매일의 출퇴근 시간이 다르고, 동료 기관사들 사이에서도 근무시간이 각각 다르다.
불규칙한 근무시간으로 생리적 신체리듬이 파괴된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수면 건강은 심각하게 저하되었다. 승무 노동자 145명 중 105명이 불면증상, 96명이 낮시간에 졸음이 쏟아지는 증상, 95명은 만성적인 수면 부족 증상을 보였으며, 8.3%는 잠을 자기 위해 습관적으로 약이나 술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평소 가족과의 식사나 오붓한 여가 시간은 커녕 휴일이면 밀린 잠을 자느라 바쁘고, 그나마 여유 인력이 전혀 없어 휴가 한번 내기도 쉽지 않다(90.7%의 기관사들이 병가나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함). 몇년씩 이런 생활이 지속되면서 이들의 정신적·사회적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끝없이 지하터널을 맴도는 악몽을 꿉니다”
도시철도공사가 담당하는 서울의 5-8호선은 지상구간이 없고 지하 3-4층 이하의 깊이로 운행되고 있다. 열차의 맨 앞에서 운전을 담당하는 기관사는 좁은 운전실의 불편한 의자에 앉아 희미한 형광등만이 쉴새없이 스쳐지나는 어둡고 긴 터널 속을 홀로 달려야 한다.
승무노동자들은 흔히 열차를 몰고 가다가 낭떠러지로 추락하거나, 가도가도 역이 나오지 않고 어두운 터널만 계속되거나, 갑자기 운전실 앞으로 사람이 달려드는 악몽에 시달린다. 인명 사고라도 겪게되면 더욱 심각해진다. 사고가 나면 단 사흘의 휴가가 주어지는데, 온종일 술을 마시며 지내는 것 말고는 끔찍한 기억과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 그리고 사흘 뒤면 공포감에 가슴을 죄면서도 다시 혼자 열차를 몰고 사고장소를 지나다녀야 한다.
3. 유해성의 극대화 – 인력 부족과 현장 통제
앞에서 살펴본 지하철 기관사 업무의 정신건강 유해요인들은 여기에 도시철도공사의 치밀한 구조조정 전략에 따른 만성적 인력 부족, 그리고 고도의 현장 통제가 더해짐으로써 치명적인 수준으로 유해성이 극대화되어왔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 – 노동강도와 스트레스의 극대화
최소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열차를 운행하여 효율성을 높이려는 도시철도공사의 경영방침은 열차당 기관사 한 사람만을 배치하는 1인 승무 체제로 구조화 되어있다. 게다가 1인 승무인데도 불구하고 여유 인력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차 편성은 최대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열차를 운행할 사람이 모자라 휴일에도 근무를 강제당하는 “휴일 충당”이 관례화되어 있을 정도이다. 1인 승무는 열차 운행과 안전사고에 대한 부담을 기관사 한 명에게 집중시키기 때문에 노동자의 긴장을 극대화시키고, 만성적 인력 부족은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를 박탈한다. 효율과 수익성의 극대화를 위해 도시철도 승무 노동자들은 고도의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숨통을 조이는 현장통제
기관사들에게 있어 크고 작은 사고나 민원의 경험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도시철도의 경우는 그 모든 것이 곧바로 개인의 근무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신적 부담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현재의 운행 여건에서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다.
만의 하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관사들이 신속하고 원칙에 따라 대처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처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동차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원칙대로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기관사들은 20%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원칙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인원부족(70%)과 장비·시설미비(16%)였으며, 교육의 부족 때문이라는 의견은 14%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공사측의 안전대책은 인력을 충원하거나 운행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기관사에 대한 교육·훈련의 강도를 높이는 것에 집중되어있다. 이러한 교육·훈련은 단순히 안전대책을 교육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승무 노동자들의 업무량을 증가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동시에 평가 결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남기고 있다.
4. 현안에 대한 대응 방향
건강했던 두 젊은 노동자가 입사 후 정신질환을 얻어 수년간 고통받다가 결국 삶을 마감하게된 이번 사건은 도시철도의 노동조건이 치명적인 수준으로 노동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등과도 같다. 따라서 가장 먼저 두 기관사의 죽음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승무노동자, 더 나아가 도시철도 노동자 전체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두 분이 직업병에 의해 돌아가신데 대한 정당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쟁취해야 한다.
두번째 과제는 고인들과 유사한 질환을 경험해온 노동자들의 적절한 치료와 보상을 쟁취하는 것이다. 질병과 재해의 종류가 무엇이건 노동과정에서 건강을 상실한 노동자들이 오히려 차별과 불이익을 받아온 것이 법제도의 현실인데다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높기 때문에 이들이 정당한 치료와 보상을 받는 것조차 치열한 투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들이 질병 때문에 ‘열차 운행 부적격자’로 매도되어 노동조건이나 고용조건에서 어떠한 차별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에서 업무 복귀나 전직이 논의되어야 한다.
세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정신적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사실 지하철 운행에서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나 시간 엄수의 중압감, 지하터널 운행이 초래하는 정신적 부담 등의 위험 요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이를 최소화하는 방안은 찾아낼 수 있다.
특히 도시철도에서는 효율 경영을 명분으로 한 만성적 인력 부족과 1인 승무 체제, 그리고 과도한 교육훈련과 개인 근무실적 평가를 이용한 현장통제가 노동조건의 유해성을 극대화하고 있으므로 이를 근절하기 위한 투쟁이 기획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력 충원(단기적으로는 질환자나 치료 후 복귀자들이 2인 승무를 통해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는 전 승무노동자의 2인 승무가 가능하도록), FTX 등의 교육훈련 및 개인 실적 평가의 폐지를 통한 정신적 노동강도 저하를 목표로 차근차근 현장의 투쟁을 준비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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