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리포트]
– 풀무원 춘천공장의 질적연구를 중심으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2003년 겨울, 연구소에서는 전체 조합원 102명에 불과한 작은 사업장인 풀무원 춘천공장을 대상으로 <근골격계 직업병 실태와 노동조건에 대한 조사>를 했다. 풀무원 춘천공장은 2000년 노조결성 전까지는 비인간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렸다. 그간의 악랄한 노동조건은, 여성노동자의 100%가 미국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기준에 적합한 근골격계 환자로 만들었다. 약 절반정도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시행한 1차 검진결과 역시 중증의 질병을 앓고 있는 노동자들이 매우 많았으며, 대부분 손가락이 휘는 등의 장해를 갖고 있는 충격적인 결과를 보였다. 이번 호에서는 풀무원의 여성 노동자들을 병들게 만든 가장 핵심적인 노동강도강화 기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풀무원(주)의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
풀무원은 95년 이후 ‘자연 친화적인 깨끗한 식품이미지’ 극대화를 통한 차별적인 고급브랜드화를 추구하면서 성장해오고 있다. 풀무원 춘천공장은 95년 이후 생산량 급증으로 노동강도가 강화되며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노동시간이 늘어나자, 이에 맞서 2000년 노동조합의 건설되었고, 일정정도의 노동시간단축과 100% 정규직화를 쟁취하게 되었다. 그러자 회사는 구조조정 시절의 노동강도에 숙달된 여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생산에 투입하여 노동밀도를 높이고 작업량을 늘렸고, 남성과 여성의 직무를 구분하여 여성노동의 활용을 통한 저임금구조를 유지하며 노동강도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구조조정 과정은 심각한 집단적 작업환경 악화와 100%의 작업자들에게 해당되는 근골격계 질환의 유병률을 초래하였다.
가랑비에 옷 젖는 것을 모르게 하라! – 인력감축
풀무원의 경우, 눈에 띌 정도의 확연한 인력감축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 결과 40%정도의 여성 노동자들이 작업반에 최근 5년간 인력이 줄지는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IMF이후 정규직 인력이 충원되지 않으면서 자연퇴사로 인한 자연스런 인력감축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48.9%의 여성노동자가 5~10년 정도의 숙련된 노동자로써 전라인의 생산과정을 넘나들며 작업이 가능한 점을 이용하여, 작업량이 적은 날은 작업량이 많은 다른 라인의 작업량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 있다.
특히나 계절별 변동이 많은 식품산업의 특징상 면의 경우 5월부터 8월까지 4개월간 여름상품의 출하로 생산량이 2배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 때는 일시적으로(그러나 정기적으로) 비정규직을 투입하고 있다. 이 때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직무가 구분되어 본라인에는 정규직이 투입되고 조립라인에 비정규직이 투입하는데, 이는 숙련된 정규직을 하루종일 본라인에서 일하게 함으로써 노동강도를 더욱 더 높이고 최소 인력으로 최대의 생산량을 뽑아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니까 어짜피 양이 많지가 않으니까 한 곳에다가 이렇게 소면하고 짜장을 생산을 하면서, 그 이외에 남는 인원이 이제 다른 일을 한다던지 그렇게 일을 하니까… 그래서 인원을 더 증원을 안 시키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저기 정년퇴직을 하거나 아니면은 그만 두었을 때에는 증원을 안 시키니까 자연적으로 감원이 되잖아. 그런데다가… 변동은… 그 인원이 대부분… 왜냐면은 처음에는 제품이 포장이 요즘 들어서 약간 변동됐잖아요? 처음에는 생칼(생칼국수) 라인 같은 경우에도 5명만 있어도 포장하고 작업이 가능했는데, 요즘에는 7명이 필요하거든요.” (면공장 여성 조합원)
노동자는 기계다! 열심히 쥐어짜라! – 저임금으로 강요되는 노동
풀무원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노동조합이 결성되기 전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상승되었지만, 전체매출이 연 21%이상씩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데 비하면, 저임금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풀무원 춘천공장의 남·여성 노동자 대부분이 생계형 노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풀무원 노동자들은 아픈 몸을 감내하며 한 달에 1회 이상의 휴일도 없는 휴일근무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인제… 하여튼 경제적인 생활을 하는 게 힘이 들어요. 쉴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어요. 거의 만근은 한다고 보면 되고, 1년… 지금 9년 동안에 1년에 쉴 수 있는 시간이 손가락 열 손가락 안에 이렇게 꼽히니까, 꼭 쉬어야 할 일이 아니면, 거의 쉬지 못했다고 봐야 해요. 그러니까 그게 지금 몸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두부공장 여성노동자)
“특근은 계속 그 정도로 했어요. 계속… 왜냐면은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안 해 가지고는 생활이 안 되고, 헤쳐나갈 수가 없으니까, 쉬어야 하는지는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그러니까 그 때는 그렇게라도 해서 생활을 해야 됐기 때문에, 이거 아픈 거 어떻게… 이런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죠. 그냥… 오로지… 생활을 해야 하니까…” (두부공장 남성노동자)
이렇게 적은 수의 숙련 인원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은, 그 속도가 가히 살인적이라 할 수 있다. 면 담기와 두부포장 공정에 대한 job strain index 결과는, 각각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7점보다 훨씬 높은 182.25와 243점으로 매우 심각한 수준을 나타내었다. 면 담기 공정의 경우 라인속도를 절반으로 줄일 경우 작업강도, 매 회당 긴장기간 백분율, 분당회수, 작업의 속도가 감소하여 27.5로 떨어지기는 하나 job strain index가 제시하는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망가진 기계에 대한 대책? – 계속되는 현장 탄압
3월 27일 집단요양 투쟁이후 계속된 풀무원 춘천공장의 중식집회와 노동부 앞 1인 시위가 170여일을 넘겨가고 있다. 170여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건만 병든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은 하나도 없다. 몇 번 협상에 나서는 듯 하던 사측은 생산량이 급증했던 추석시즌 이후로는 협상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사측이 지금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조합원을 분열시키기 위한 현장 탄압이다. 이미 인정한 월차에 대해 손배를 걸고,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한 노동자들에게 태업이라며 손배를 걸고 얼마 되지도 않는 임금의 절반을 가압류하고 있다. 계속되는 손배와 가압류, 그리고 명예훼손으로 순진한 노동자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풀무원의 비약적인 성장에는 풀무원 노동자들의 병든 몸이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조합이 있어서 그나마 여건이 좋다는 춘천공장의 상황이 이러할진대, 조합이 없는 지방의 다른 공장들(풀무원은 10개 지역에 공장이 나누어져 있으며 이 중 2개의 공장에만 조합이 있는 상태이다.)의 노동조건은 직접 가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저임금구조를 유지하여 잔업 특근을 하지 않고서는 실질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 숙련된 여성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풀무원이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고장이 나면 갖다 버리면 되지만 노동자는 인간이기에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사측의 행태는 노동자들을 인간이 아닌 컨베이어벨트의 한 부품쯤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풀무원은 골병들게 하는 살인적인 라인속도를 줄여야 한다. 라인속도의 감축은 인력충원을 통해서만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의 저임금구조로 인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까지의 임금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근본적인 개선이 없다면 건강한 노동의 실현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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