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 경기남부지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편집실 허 경
언뜻 보면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다. 희뿌연 건설현장, 거친 시멘트벽을 드러낸 아파트들 사이에 버티고 서있는 그것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한다.
1. 와이어로 고정된 고공의 위험지대
“이번 태풍 매미 때문에 타워크레인 52대가 넘어갔잖아요. 그게 현장에 사람이 없는 추석연휴니까 그렇지, 한참 작업 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대형사고예요. 대형사고…”
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의 경기남부지부장인 김호진씨와의 만남은 이번 태풍에 관한 얘기로 시작됐다.
타워크레인기사들을 ‘하늘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최하 60m에서 100m 이상까지 쌓아올린 타워크레인의 높이와 조종석의 높이가 거의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것을 달랑 쇠줄 몇 개로 고정해놓으니 안 넘어가면 이상하죠.”
한 건물의 외벽에 H빔으로 타워를 고정하는 통상적인 방법 대신, 현장의 한가운데에 타워를 세우고 와이어로 고정하는 ‘우리나라만’의 방식인 와이어 고정식. 많은 구조물을 한꺼번에 작업반경에 두기 위한 와이어 고정식에 대한 그의 얘기는,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타워크레인기사들의 별칭인 ‘하늘로 출근하는 사람들’에 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듯 했다.
타워크레인이 대형사고의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와이어 고정식말고도 많이 있었다. IMF 구조조정기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장비 업체들은 기존 보유하던 설치 해체팀, 장비 A/S팀을 별도 법인으로 분사시켰다. 그로 인해 다단계 하도급이 발생하고 부적격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기술력, 전문성 등이 저하되어 작업에 대한 안전도가 떨어지게 되었다. 또, 임대업체들은 자체 보유 운전원(기사)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이윤 극대화를 위해 전문성이 없는 운전원 배치로 무리한 작업을 진행하는 것과, 산업안전 규정·규칙 등에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노후화 장비의 무차별 설치하는 것 등, 현장 내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죽으면 땡이야… 장비가 넘어가면 기사가 죽잖아요. 기사가 운전 잘못해서 죽었다고 해요. 다 씌워요. 죽어도 억울해…”
2. “비는 행복한 비하고 불행한 비가 있어요.”
“비는 행복한 비하고 불행한 비가 있어요.”
김호진씨의 예쁜 딸, 다은이가 알 수 없는 얘기를 한다.
“비가 오면 아빠가 출근을 안 하시니까 행복한 비구요, 바람 많이 부는 비가 오면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니까 불행한 비예요.”
김호진씨가 일하는 현장에 가보았다는 다은이와 동생 동명이는 아빠가 얼마나 위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부인은 작업현장에 가봤냐는 질문을 하자마자 곧바로 눈시울을 붉혔다.
“애들 아빠 일하는 거 생각만 하면…”
늦게까지 가족들과의 대화가 있던 밤, 아이들은 곤히 잠들었고 다음날 새벽 5시 쯤부터 출근을 준비하는 아빠의 모습을 아이들은 보지 못했다. 그 날 아침 행복한 비는 내리지 않았으므로.
3. 10시간 이상 하늘에서 일하다
김호진씨와 함께 타워크레인의 조종석까지 올라보기로 했다. 어떻게 올랐는지 기억하기 힘들지만 조종석에 올랐을 때, “20분만에 왔네. 처음치고는 잘 한 거야.”
그의 격려가 있었지만 뛰는 심장이 잦아들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조종레버가 있는 의자와 뒤쪽에 있는 약간의 공간이 전부인 조종석은 모든 기사들이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하는 작업공간이다.
“항상 아래를 보며 작업을 하니까 목하고 허리가 항상 아파요.”
“키 큰 사람들은 똑바로 서있기도 힘들다니까요. 타워기사들은 왜 또 그렇게 큰사람들이 많은지…”
“겨울에는 엄청 춥죠. 난로하고 히터도 두개씩 올려놔도 틀어놓은 곳만 뜨겁지, 조종석이 철판이니까 따뜻해지질 않아요. 여름에는 말도 못하죠.”
멋진 전망, 거대한 크레인을 움직이는 짜릿함… 이런 것들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었다.
“화장실은 어떻게 가세요?”
그가 좁은 조종석 구석에 놓인 생수병을 손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4. “타워노조가 철의 노동자야.”
점심시간에는 현장의 다른 타워크레인 기사분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사들은 원청(시공업체)에 타워크레인을 임대하는 임대업체에 고용되는데 거의 현장계약직이죠. 현장 끝나고 타워가 해체되면 자동퇴사가 되는 거죠. 그 현장 끝나고 갈 곳이 없으면 보통 한두 달 정도는 노는 거죠.”
“지금은 조합이 있어서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사장 눈 밖에 나면 바로 짤렸어요. 말도 없이 다른 기사를 집어넣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올라갔다가 그냥 내려와야 되요.”
작업시간 중 기사들이 유일하게 땅을 밟는 시간인 1시간 정도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하늘로 향하는 철사다리를 오르는 그의 모습을 한참 올려 보았다. 사실 그를 만나기로 했을 때, 지는 해의 붉은 빛을 배경으로 서있는 타워크레인이 만들어 내는 도심의 장관을 기대 했었다. 하지만 그 철골구조물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그로부터 전해 듣고는, 타워크레인 뒤로 지는 해가 내뿜는 석양의 빛은 붉은 핏빛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타워노조가 철의 노동자야. 우리는 항상 철에서 놀지, 맨날 하는 일이 철드는 일이니깐…”
“우리가 철의 노동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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