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기]
동아대 산업의학과/연구기획위원 김윤규
중금속 중독의 역사, 납과 수은의 등장에서부터
인류가 금·은 또는 동 같은 금속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기원 전 6000∼5000년경으로 알려져 있으나, 암석으로부터 이들 금속을 추출할 수 있게 된 것은 기원 전 4500∼3500년경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 후 채광, 용해, 주조, 기계가공 등의 공정이 발달하게 되고 이런 공정 중에서 중금속이 인체에 침입하여 건강 장애를 일으켰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되는 동석합금에 의해 여러 가지 종류의 청동기가 만들어졌으나, 이들 물질에 의한 중독이 기록된 문헌은 없다. 중금속 중독의 역사를 보면 납과 수은이 거의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히포크라테스도 선통 발작을 기술한 바 있는데, 이 원인이 납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1세기경 디오스코리데스는 연 중독에 따른 복부선통과 사지 마비, 그리고 로마 시대 스페인의 수은 광산에 종사하는 노예들이 수은에 중독된 사실이 기록된 바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중금속 중독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비소, 아연, 은 등을 비롯하여 근대공업으로의 발전에 따라 많은 종류의 금속이 노동보건의 문제가 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보건의 중요성 강조
1760년부터 1830년 사이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노동보건에서 큰 관심 끄는 분야가 되지 못하고, 극히 일부 학자들에 의하여 연구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수력, 석탄, 철을 원동력으로 하는 공장들이 건설되면서, 이제까지의 각자의 생활을 위한 물품을 생산하던 가내수공업은 쇠퇴하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는 노동계급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산업기술은 극히 미숙하였고, 공장의 규모나 운영도 지금과 같은 상태가 아니었으며, 의학의 발달도 부진하여 많은 질병의 원인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 영국에 많은 10세 미만의 굴뚝 청소부들에게서 굴뚝 검댕(다핵방향족탄화수소)에 의한 직업성 음낭암의 발병이 보고된 것은 우연한 사실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자의 건강이 심각하게 되자 노동보건의 중요함을 강조하기에 이르렀고, 이 무렵 영국의 보건학자들은 질병의 발생률이 높은 노동자가 살고 있는 주택 상태와 일하고 있는 공장의 작업 환경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게 되었다.
1856년 아닐린 염료가 발견되고 40년 후에 렌이 염색공장에서 발생한 직업성 방광암을 보고하였으며, 고무공업, 그리고 그 후 영국에서는 비스코스레이온과 인견공장에서 이황화탄소중독이 보고 되었다. 1893년에는 황산과 염산에 의한 치아산식증이 알려졌다. 20세기에 이르러 캐논은 성냥공장에서의 인중독, 그리고 해밀턴은 납중독을 보고하였다.
해방 전후 우리나라의 직업병 진단 사례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 자본주의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를 발생시켰고, 당시의 위험하고 유해한 작업환경 속에서 각종 사고와 직업병이 발생되었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직업병에 대하여 제일 먼저 알려진 것은 1958년, 탄광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진폐증에 대한 것이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는 진폐증, 소음성난청은 물론이고 유기용제중독, 납중독, 면폐증 등 많은 직업병이 새롭게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1961년 군사정권의 등장 이후 시작된 경제개발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직업병이 주로 발생하고 늘어나게 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도 1965년도에는 의료용품을 만드는 회사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벤젠중독으로 인하여 악성빈혈에 걸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68년 제련소, 축전지, 연 광산, 인쇄, 도자기 등의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 217명을 대상으로 연중독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결과, 58명이 연중독으로 진단된 바 있다.
고도성장과 중화학 공업이 가져온 직업병
1970년대에는 수출입국, 고도성장의 구호의 그늘에서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새로운 종류의 직업성 질환들이 대거 밝혀지게 되었다. 즉 유기용제중독에서도 트리클로로에틸렌중독, 노말헥산중독, 사염화탄소중독 등이 새로이 보고 되었으며, 수은 및 크롬중독, 납중독 등의 중금속중독은 물론이고 직업성 피부염, 진동 신경염 등 과거 선진국에서 경험한 대부분의 직업병들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였다.
제 5공화국정부는 1981년 노동청을 노동부로 승격시키고 산업안전보건법을 제정하여 당시까지의 사후 처리, 보상 위주의 산재 대책을 예방적 차원으로 끌어올린 정책을 펼쳤지만, 1980년대 이후 급격히 발전한 중화학 공업의 성장에 가려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은 계속 해서 위협받고 있었다. 특히 1988년 여름 15살 소년 고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을 계기로 전국 곳곳의 거의 모든 분야의 산업에서 직업병이 속속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이 나라 노동자들의 건강 수준이 세계 최악의 지경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게 되었다. 1988년 이후 1991년 1월까지 사망자 11명을 포함하여 이황화탄소 중독자 70명을 발생시킨 원진레이온은 직업병 인정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 건강권 확립에 주요한 토대를 마련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이상과 같이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각종 유해 인자에 의한 직업병은 다른 많은 나라에서 공업화 과정에서 경험한 예와 유사하다.
직업병 인정은 노동자의 투쟁으로부터!
이러한 직업병의 발견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적인 사례들을 보면, 노동자가 질병에 걸렸을 때 직업병을 의심하여 스스로 병원을 방문하고, 직업병 인정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을 함으로써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비로소 하나의 직업병으로 인정된 사례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직업병 인정 이후 노동자들은 투쟁에 대한 사측의 보복성 강제 퇴직 등 인사 상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라는 법적인 테두리에서 직업병 인정에 관한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당연한 노동자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행사하는 하나의 권리가 자본의 지속적 은폐와 방해로 인해 침해받고 있는 실정이었으며, 이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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