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충청지역 노동건강 협의회(준) 송관욱
가을로 접어들면서 감기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감기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매우 흔한 질환이며 그 증상의 경중도 다양하나, 그 흔함으로 인하여 일상 속에서 병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임상에서 접하는 감기환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웬만하면 참고 견디려 했는데…’이다. 대부분 이정도면 일상생활에 많은 장애를 가져올 정도의 심한 감기를 앓는 경우이다. 따라서 환자는 ‘단방’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주사와 처방을 원하고, 의사는 환자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비방을 찾게 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어떠한 비방이라 한들 일시적인 증상완화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미국에서는 감기로 병원을 찾으면 오렌지쥬스나 마시며 며칠 푹 쉬라고 돌려보낸다는데, 한국에서는 주사도 놓고 약도 색깔별로 구색 맞추어 처방하니 과잉치료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맞는 말이다. 사실 감기에 약이 필요 있겠는가. 체력이 떨어지고 저항력이 약해져서 생긴 병이니, 잘 먹고 푹 쉬면 대개는 합병증 없이 1주 이내에 회복되는 것이 감기이다. 약을 먹는다고 해서 유병기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한국사회에서 감기를 이유로 며칠 푹 쉴 수 있는 팔자 좋은 (혹은 배짱 좋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물론이요, 가정주부도 육아와 가사노동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는 아이들도 학교와 학원수업에 매여 아파도 병원 올 시간이 없다. ‘우리아이가 어제부터 열이 나고 기침할 때 목이 아프다는데, 학원에서 매일 늦게 오니 병원에 올 시간이 없답니다. 약만 처방받을 수 있을까요?’라며 찾아온 보호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취하게 하라는 권유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노숙자진료소에 처음 나가던 날, 감기증상을 호소하는 한 노숙자에게 약을 처방해주고는 나름대로 성의껏 설명을 덧붙였다. ‘물을 자주 드시고, 과로하지 말고 일찍 주무시고, 잘 때 건조하지 않게 방에 빨래를 널어놓으세요.’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상황수습을 한답시고 다시 한마디 덧붙였다. ‘담요는 있으세요?’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보시는 아저씨 앞에서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건강은 만인의 관심사이다. 서점에 가면 언제나 비슷비슷한 건강지침서들이 서가 한쪽을 차지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이론이 바로 ‘생활습관을 바꾸면 건강해진다’이다. 요약하자면 현대인의 질병은 해로운 음식을 먹고 나쁜 생활습관에 길들여진 탓이며, 따라서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생활습관을 가지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이론이다. 그러나 다분히 단편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개인의 생활습관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지적해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지나치게 일면적인 접근은 경계되어야 한다. 이는 자칫 질병의 원인을 환자의 부주의하고 방만한 생활습관으로 한정지어 결과적으로 질병에 대한 책임마저 개인에게 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은 사회적인 것이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접근에서 질병의 사회적 성격이 배제된다면, 빈부의 차이를 개인의 씀씀이의 차이로 설명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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