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월] 교대 근무와 관련된 수면장애

일터기사

[연구소리포트]

교대 근무와 관련된 수면장애
– 도시철도 노동자 조사결과를 중심으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2003년 봄, 연구소에서는 도시철도 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 실태와 노동 조건을 조사했다. 도시철도는 서울시의 지하철 5, 6, 7, 8호선을 움직이는 사업장이다. 여느 궤도 사업장들과 마찬가지로 역무, 승무, 기술, 차량 등 직능도 다양하고 근무 형태도 다양하다. 이번 호에서는 조사 결과 중에 교대 근무와 수면장애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1,300명 이상을 조사하였으나, 이 중에 교대 근무 형태를 명시하지 않은 백여 명은 이번 분석에서 제외하였다)

교대 형태에 따른 수면 장애 증상의 차이 – 교대제는 수면 건강의 적!

일할 때 피로감이나 졸리운 느낌을 견디느라 힘이 들고, 막상 집에 가서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는 잠이 오지 않아서 힘든 나날이 몇 달, 몇 년씩 계속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직장에서 늘 졸기만 하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는 것도 억울하지만, 피로한 몸을 쉬고 싶어도 제대로 잠들 수 없는 괴로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터이니 스트레스는 또 오죽할까. 게다가 일하는 도중에 잠시 졸거나, 머리가 띵하여 판단이 흐려지는 순간은 노동자들에게 또 얼마나 크나큰 위험인지.
이런 상태를 의학적으로는 ‘수면-각성 일정 장애’라고 한다. 수면-각성 일정 장애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잠들 수 없고, 깨어있고 싶은 시간에 졸음이 오는 증상으로 나타나며, 다른 말로 ‘일주기 리듬 수면 장애’라고도 한다. 이 중 교대 근무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를 따로 일컬어 ‘교대 근무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교대 근무와 수면 장애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80%가 수면 장애라니!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수면 장애 증상을 조사한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총 1,212명에 대해 분석한 결과, 80.6%가 하나 이상의 수면 장애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중 불면증이 71.4%, 수면 박탈(수면 부족)이 64.4%, 주간 졸림이 60.6%이며, 세 가지 증상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이 48.2%나 된다.
교대를 하지 않는 통상 일근은 50~60% 정도가 증상을 보이는데 비해, 어떤 형태이건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60~80% 정도가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독일 수면의학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대 근무자 중 80%는 수면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수면 장애 증상률 80%는 결코 과장된 수치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한편, 교대를 하지 않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수면 장애 증상을 보인다는 사실은, 교대 이외에도 수면 장애를 초래할 수 있는 장시간 근무․스트레스 등의 문제들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리라는 것을 추측케 한다.

도시철도 노동자의 수면 실태

그렇다면 도시철도 노동자들이 도대체 얼마나 잠을 못 자는걸까?
교대제는 수면 시간을 많게는 2시간까지도 감소시키고(특히 야간 근무 때) 수면의 질을 저하시킴으로써 수면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의 결과는 도시철도에서도 야간 근무 때 수면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수면의 질은 과연 어떨까? 모든 교대 형태에서 일관되게 주간 근무보다 야간 근무 때의 수면의 질이 확실히 나쁘게 평가된다. 주간 근무 때는 30-40%가 “좋다”, “아주 좋다”라고 응답하고 “나쁘다”, “아주 나쁘다”라는 응답은 20%를 넘지 않지만 야간 근무 때는 정반대로 수면의 질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채 10%를 넘지 못하며, 80% 이상의 노동자들이 “나쁘다”, “아주 나쁘다”고 평가하고 있다.

수면 문제의 원인은? 그 결과는?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야간 근무 때의 수면 시간이 줄어들고 수면의 질도 나빠지는 걸까?
우선 생리적인 원인을 들 수 있다. 사람의 몸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쉬도록 프로그램 된 ‘생체 시계(혹은 생물학적 시계)’에 따라 조절되는데, 야간 근무는 이 생체 시계의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에 더 피로해지고 제대로 잠을 잘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두번째 원인은 수면 조건이다. 많은 도시철도 노동자들이 지적하였던 것은,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숙면을 취하고 싶어도 주위가 너무 환하거나 시끄럽고 집에 있는 가족들이 활동을 하기 때문에 수면에 방해가 된다는 점이었다.

결국 교대 근무는 생체 시계에 역행하여 노동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피로를 누적시키고, 피로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채 다시 근무를 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은 위장 장애, 심근 경색, 신경 장애, 우울증 등이 더 많이 발생하며, 교대 근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평균 10년 이상 수명이 단축된다는 것이다.
또한 교대 근무로 인한 노동 재해와 사고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야간 근무 시에는 낮시간보다 노동 재해와 사고가 두세 배 더 흔히 발생하며, 교대 근무자가 충분히 피로를 풀지 못한 채로 주간에 근무하는 경우에도 위험이 높아진다. 노동자 자신의 생명과 안전만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도 교대 근무자의 실수에 의해 초래된 것이듯,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참극을 낳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교대 근무는 노동자의 사회적 건강도 갉아먹는다. 불규칙한 근무 시간 때문에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기조차 어려워 교대 노동자의 스트레스는 이중 삼중으로 가중된다.

수면 장애에 대한 대처 방법 – 약 먹고 견디기?

그렇다면 과연 노동자들은 수면 장애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놀랍게도 도시철도에서는 8.2%나 되는 사람들이 수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이나 술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과를 다니면서 수면제를 복용하는 경우도 흔하게 마주칠 수 있었으며, 근무시간 중에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성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노동자도 있었다.
원칙대로 말하자면 생체 시계의 문제나 부적절한 수면 환경의 문제는 야간에 근무를 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수면 장애가 심각한 경우에는 교대 근무를 중단해야 한다. 수면 건강을 위한 첫번째 조건은 규칙적인 수면 습관인데, 교대 근무를 하는 한 도저히 규칙적인 수면 습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노동자들이 수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대 근무를 그만두는 일은 매우 드물다. 만성적인 고용 불안 속에서는 그저 묵묵히 야근을 하는 수밖에. 설령 사업장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일근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해도 정작 교대제를 그만두는 경우는 드물다. 얇디얇은 월급봉투를 그나마 야근 수당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고용과 임금 조건의 개선이 없이는 교대 근무의 덫을 피해가기 어렵다.

일을 줄여야 한다!

한편, 업무량 증가, 담당 업무의 변화,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강도의 강화가 교대제의 부작용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도시철도는 꾸준히 구조조정을 진행해 온 사업장이다. 특히 1999년 2월 노사합의에 의한 인원감축에 따라 정원이 7,944명에서 6,288명으로 20.8% 감축되어 2000년 11월에 전 노선이 완전개통된 이후 노동강도가 대폭 강화되었다. 이번 조사에서도 통상 일근자들 중 72.8%, 교대 근무자들 중 83.4%가 “노동강도가 강화되었다”고 평가하여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몸으로 노동강도의 강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은 야간 근무의 질을 한층 더 악화시키고 있었다. 3조 2교대의 경우, 야간 근무는 저녁 6시에 출근하여 다음날 아침 9시에 끝나고 자정 즈음에 1시간, 새벽에 4시간가량 휴게 시간(수면 시간)이 주어지는데, 이 휴게 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 1는 야간 휴게 시간에 일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수면장애 증상이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불면증, 수면박탈, 주간 졸림 증상 모두 이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도시철도에서는 낮 시간에 열차가 쉬지 않고 운행되기 때문에 차량이나 선로, 역사의 보수와 점검이 야간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앞에서 살펴본 수면 장애의 원인, 즉 생체 시계 리듬의 교란이나 열악한 수면 환경의 문제처럼 야간 근무에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요인들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야간 휴게 시간에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노동 조건 개선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고칠 수 있는 문제, 없앨 수 있는 위험이라는 것이다. 가령 인력을 충원하여 주간에 해야 할 업무가 야간으로 미루어지지 않고, 야간에 발생할 수 있는 비상 상황에서도 개별 노동자가 담당해야 할 업무량을 줄인다면, 수면 장애 증상을 20-30%는 줄일 수 있다. 또한 야간 휴게 시간에 제대로 쉴 수 있는 휴식 시설을 갖추는 것도 도시철도 노동자들의 수면 건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교대 근무로 인한 수면 장애의 심각성을 보여준 동시에, 노동 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수면 장애를 비롯하여 그에 따른 이차적인 건강 문제나 안전사고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 자고 건강하게 노동할 수 있도록 일을 줄이자!

<도움되는 읽을거리>
“ 의료 기관 등 일부 분야에서는 교대제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원을 늘려서 의사, 간호사, 기타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저녁 근무나 야간 근무를 덜 하게 한다면 교대제로 인한 부작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병원들이 점점 더 경제적 문제에 연연하게 되면서 정작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힘들고 위험한 형태의 교대제가 증가하고 있다.
다른 한편, 탄광업 등 다른 분야에서는 교대제를 철폐할 수 있다. 단, 이윤 추구의 동기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산업이 나날이 자본 집약적으로 변화해가면서 시설비용이 인건비를 넘어서게 되어 고가의 기계들이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가동되고 있다. 기계가 멈춰있는 시간은 용납되지 않는다. 심지어 교대를 하기 위한 시간조차 없애려고 하기 때문에 8시간 교대보다 12시간 교대가 더 흔히 쓰이게 되었고, 그 결과 피로와 수면 부족에 의한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초과 근무를 고려하지 않고 임금을 일정하게 지급하는 경향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Leanne Josling, <교대 근무와 불건강>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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