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월] “1년 노동재해, 거의 이라크 전쟁수준이죠”

일터기사

[일터이야기]

“1년 노동재해, 거의 이라크 전쟁수준이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편집실 이민정

“미장일 하다보면 50대 정도 되면 한쪽 팔 못써요, 한 20년 하다보면 전부 관둔다고 하죠.” 주공 건설현장에서 쉴 새 없이 상가 벽을 바르던 오씨는 고개한번 돌리지 않고 덤덤하게 말한다. “다른 분야도 애로사항이 다 있겠지만, 한 팔로 하루 일을 다 해요. 어깨가 아프면 마누라가 주물러 주고요, 어깨 한쪽에 바른 맨소래담만 한 50통일 거에요.” 옆에서 듣고 있던 경기서부건설노조 이명하씨가 “맨소래담 장기복용하면 근육마비 오는 거 아세요? 그거 오래 쓰시면 안 되는데…”라고 참견해도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병원 가서 물리치료도 받아봤자 그 때 뿐이고,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이걸 안 하는 거죠. 그래도 지금 현재 10만원 받고 있는데 다른 일 하면 더 힘들게 일해도 10만원을 받을 수가 없죠. 또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죠. 일이 힘든 날은 자다가도 아파서 ‘어구, 어구’하고 깨요. 나이 들어서는 못할 일이죠.” 미장일을 하려면 하루종일 시멘트를 개서 한 손에는 시멘트를 얹은 판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벽을 발라야 한다. 일이 많은 날은 드럼통 크기의 통에 시멘트를 가득 담아 20통이나 쓰기도 한다. 그렇게 일하고도 어깨나 팔이 성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을 때 벌어서 빨리 떠나야 된다”

‘일요일에도 일하세요?’라고 묻자 운동삼아 일 다닌다던 옆의 동료는 “노가다에 일요일이 어딨어?”라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하루 일당으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일요일 하루도 쉴 수가 없다. 하루에 십만원씩, 한달을 꼬박 일하면 3백만원을 겨우 벌 수 있지만, 비라도 오면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어서 날이 좋을 때 일해서 벌어놔야 한다. 그래도 15년째 미장일을 하던 오씨는, 지금은 예전에 비해 일하기에 나은 편이라고 한다. 팀장이 임금 떼먹고 달아나는 일이 많아서 예전에는 회사 찾아가서 소장실 뒤엎기를 많이도 했는데, 요 근래는 그나마 나아진 편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간이화장실이며 빈약한 샤워시설은 불편하고, 그나마도 제대로 청소를 안 해 몇 개 안 되는 간이화장실이 꽉 차는 일도 있다고. “벽돌만 쌓은 벽은 한 번만 바르면 되고, 콘크리트 벽은 본드를 바르고, 약품을 넣어서 또 바르고… 무슨 벽이냐에 따라 바르는 방법이 다 틀려요. 15년 정도 했더니 벽을 보면 ‘어떻게 발라야겠다’가 대강 나오죠.” 흔히들 아무 기술 없이 몸뚱아리 하나 있으면 될 것으로 생각하는 ‘노가다’가 아닌, 15년의 노하우를 지니고 있는 오씨는 자신의 미장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힘든 일을 평생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을 때 벌어서 빨리 떠나야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건설현장 150개 직종에 정규직 거의 없어

건설노동자는 미장․방수․내장․철근․목수 등 150여 개의 직종으로 나뉘어져 있는데다 취업형태도 직영부터 도급, 용역 등으로 다양해 얼핏 들어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이 중에서도 오야지(팀장)가 사람을 몇 명씩 뽑아 일을 따내고 들어오는 형태인 다단계 하도급이 대부분인데, 이것은 불법임에도 건설현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런 불법하도급 때문에 임금체불 같은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만, 오야지가 또 도급을 내리는 등 다단계 하도급이 워낙 광범위해 그 규모를 짐작키조차 힘들다. 한 현장에 백명 정도가 일하고 있다면, 이중 건설회사가 직접 고용하는 직영은 3명에서 10명 정도, 건설공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능공들은 도급형태로 들어오고, 현장 청소 등 잡다한 일을 모두 맡는 이는 용역회사를 통해 일일 근로계약을 하고 들어오는 용역노동자들이다. 건설회사 직영 역시 임시계약직이라 한 현장에 백명이 일을 하고 있다면 이중 소장이나 관리직, 기사 등을 빼고는 정규직이 없는 셈이다.

임금체불도 많은 도급보다는 직영이 일하기 낫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직영노동자들의 임금이 도급보다 낮은 것을 감안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도급은 도급대로 약속한 기일을 맞추기 위해 팀장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기 때문에, 1주에 일하는 시간만 70시간을 넘는다. 법정 1주 노동시간인 44시간의 2배에 달하는 시간이고, 이는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10시간씩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3달 동안 딱 2번 쉬는 일도 허다하고, 몸이 힘들다보니 점심때도 한 잔, 일 끝내고도 한 잔씩 하며 음주로 피곤한 몸을 달래는 게 습관이 된다. 이렇게 한 달을 죽어라 일해서 버는 돈이 기능공은 일당 10만원가량, 조공은 6-8만원, 잡부는 하루 5만원 정도이고, 직영은 가장 낮아 4-5만원 정도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일해도 워낙 부도가 흔한 게 건설이다 보니, 집단 임금체불도 흔하게 벌어진다. 1만 3천개의 건설회사 중 일년에 3천개 가량이 부도를 낸다. 건설회사가 차라리 파산신고라도 제대로 내면 임금 부분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데, 대부분이 그렇게 하지 않아 가운데 낀 오야지들이 손해를 보고 도주해버리곤 한다. 도급으로 들어왔던 노동자들은 도망간 오야지를 잡을 길도 없고, 건설회사는 ‘자기 책임이 아니다’고 내빼버리게 되면 그간 힘들여 일했던 임금을 받을 길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굳이 임금체불이 아니더라도, 용역으로 들어오면 임금을 한 달씩 늦게 주는 일도 흔해 결국 나중에 회사가 한 달을 공으로 먹는 경우도 많다. 건설현장에서는 이를 ‘스내끼리’라고 부르는데, 그나마 노조가 들어간 곳은 건설회사와 ‘15일 이상 못 까도록’하는 단체협약을 맺기도 한다. 하지만,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15일이고 한달이고 스내끼리를 하기도 하니 노조가 없는 곳이 어떨런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용역회사가 ‘건설회사에서 늦게 나와서 어쩔 수 없다’고 하면 용역직 노동자들은 별 도리 없이 기다려야 한다. 사무실에 전화 한 통만 설치해도 ‘인력업체’라고 내걸 수 있다보니 얼굴도 구경 못 해본 인력업체 사장이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는 것도 항상 걱정이다. 그렇게 스내끼리까지 해서 한 달에 2번 쉬고 일해 버는 돈이 80만원도 안 된다. 그래서 용역노동자들은 “용역을 때려 부숴서 없애버려야 돼.”라고 입을 모은다.

워낙 위험한 작업현장이기에, 추락사고 등의 방지를 위해 안전난간이나 추락방지망을 설치했다가도 오히려 일할 때 불편하다고 작업할 때면 철거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니 사고도 끊이질 않는다. 경기서부건설노조 이명하 오산․화성지부 현장사업팀장은 “1년에 산재가 1만 3천 건이 발생하고, 이 중 사망사고가 7백 건 가량 돼요. 거의 이라크 전쟁수준이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1만 3천 건 중 산재로 처리된 경우는 거의 없어, 일하다 다쳐도 웬만큼 크게 다치지 않고서는 대부분 돈을 받고 공상으로 합의를 하게 된다. 건설회사들은 산재처리가 많으면 사고발생율이 높은 업체가 되어 공사 입찰시 불리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공식적인’ 산재 발생을 줄이려 애쓴다.

건설노동자도 일요일에는 쉬고 싶다

하지만 사고와 임금체불, 장시간 노동으로 가득한 건설현장의 현실을 모두가 그대로 받아들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설노동자도 일요일에는 쉬고 싶다’며 진행되고 있는 일요휴무정착투쟁으로, 노조가 있는 곳은 일요일 현장가동율이 3-50% 정도로 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일용직이 무슨 노조냐’고 푸념하던 건설노동자들이 하나둘씩 노조로 모여들면서 일요휴무, 임금체불, 안전사고 등을 해결하기 위한 건설노조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요휴무투쟁의 경우, 직영․용역․도급 할 것 없이 휴일 없는 노동시간에 힘겨워하던 터라 ‘적어도 한달에 두 번은 쉬어야 하지 않겠냐’며 반기는 것이 대부분이고, 여수․포항지역 등은 노조활동이 활발해지자 주차나 월차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전국 방방곡곡을 수시로 옮겨 다니며 일해야 하는 건설노동자이다 보니 이들이 하나로 뭉치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수십 년 억눌려 살았던 세월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어서 그 희망 역시 새롭기만 하다.

“작년에 경기도 지역에서 자살한 15명 중에 12명이 건설노동자였대요. 건설현장에서 비관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여주는 것일 테지만, 이런 것이 또 다른 폭발성을 갖고 있는 거겠죠.” 당장 1,2년에 모든 일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던 경기서부건설노조 이명하씨가 조심스럽게 꺼낸 말에서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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