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준) 연구기획실 고상백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실태
뇌ㆍ심혈관계 질환은 1996년 이후 한국인의 사망원인 제1위로 가장 중요한 질병일 뿐 아니라(그림 1), 사망하지 않은 경우에도 심각한 합병증으로 개인의 건강은 물론 가족의 생활까지 파탄에 이르게 하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자원을 소모하게 하는 질병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 속에 뇌심혈관계 질병에 이환되는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2020년에 전체 사망의 36%를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와 같이 구조조정을 겪는 개발도상국의 공통된 현상이며, 특히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현장을 떠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측은 생산량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노동시간 및 노동자의 수를 신축적으로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고용관계의 단절을 통해 야기되는 실업, 불안정 노동자의 확대, 고용불안은 노동구조를 이중화하며 노동자의 작업량과 노동강도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다양한 기능 습득과 작업량의 증대 및 작업의 복잡성으로 직무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있다. 여유시간의 감소, 작업속도의 증가 및 노동강도의 강화가 노동자의 건강을 악화시키다 못해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노동강도의 강화 경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 사업장에 급속도로 전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노동보건의 주요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것은 근골격계 직업병과 함께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등 노동강도 관련성 직업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 자료에 따르면,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이 95년에 비해 2000년에 5배나 증가하였다. 하루에 4명 정도의 노동자가 매일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고 있으며, 이중 1명 이상이 사망하고 있다(그림 2).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병의 인정기준?
노동자가 재해성 사고가 아니면서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갑작스럽게’ 사망할 수 있는 질병으로는 주로 심장질환이나 뇌혈관질환이다. 이를 흔히 노동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과중한 노동부담이 원인이 되어 고혈압과 동맥경화증 등 기초질병이 악화되어 급성으로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하여 사망과 노동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하여 “과로사(過勞死)”라는 용어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대부분 연령 증가에 따른 단순한 노화의 과정으로 이해되거나 혹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개인적인 질병이 악화되어 발생하는 것으로만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작업현장에서 발생한 뇌심혈관계 질환의 사례를 검토하고 그 인과성의 증거를 모으는 과정에서 뇌심혈관계 질환은 장시간 노동, 교대제근무, 불규칙한 작업일정 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뇌심혈관계 질환이 업무와 관련 있으면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인정되기에 이르렀다.
표 1. 현행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인정기준(산재보험법 시행규칙)
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에 다음의 1에 해당되는 원인으로 인하여 뇌 실질내 출혈, 지주막하 출혈, 뇌 경색, 고혈압성뇌증, 협심증, 해리성 대동맥류, 심근경색증이 발병 되거나 같은 질병으로 사망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를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 업무 수행 중에 발병되지 아니한 경우로서 그 질병의 유발 또는 악화가 업무와 상당인과관 계가 있음이 시간적. 의학적으로 명백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
(1) 돌발적이고 예측곤란한 정도의 긴장, 흥분, 공포, 놀람 등과 같은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로 근로자에게 현저한 생리적인 변화를 초래한 경우
(2) 업무상 양, 시간, 강도, 책임 및 작업환경의 변화 등 업무상 부담이 증가하여 만성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과로를 유발한 경우
(3) 업무수행 중 외 실질내 출혈, 지주막하 출혈이 발병되거나 같은 질병으로 사망한 원인이 자연발생적으로 악화되었음이 의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지 아니하는 경우
나. 가 목(1)에서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라 함은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과중부하를 말한다.
다. 가 목(2)에서 “만성적인 과로”라 함은 근로자의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 전 3일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 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발병 전 1주일 이내에 업무의 양, 시간, 강도, 책임 및 작업환경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를 말한다.
질병 발생 상황에 따른 특성 분류와 문제점
일반적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은 대부분 과중한 업무와 관련되어 있으나, 발생하는 상황은 모두 똑같다고 볼 수는 없으며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표 2).
이 중에서 세 번째 유형이 최근 구조조정과 노동강도 강화 속에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에는 업무의 변화가 업무상 과로로 인정되려면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 전 3일 동안 연속적으로 일상업무보다 30% 이상 증가하거나, 발병 1주일 이내에 업무의 양, 시간, 강도, 책임 및 환경의 변화가 일반인이 적응하기 힘든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과학적 근거도 없고, 매우 막연한 규정으로 최근의 노동강도 강화로 인해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외면하는 기준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의 노동강도 강화저지 투쟁 속에 진행해 왔던 근골격계 투쟁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의 살인적인 구조조정에 무기력하게 당하고만 있던 노동자 계급이,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하고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투쟁이었다. 개별 노동자의 산재요양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집단적 작업환경요인에 대한 건강권 침해를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역시 근골격계 직업병과 같이 노동과정의 결과로서 생기는 질병으로 이와 맥을 같이 하여야 한다. 급성 질병으로서 평가받는데 안주하거나,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관심한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 노동자가 신자유주의 정책 이후의 일상적인 업무 특성 자체가 구조적으로 작업조직이 변화하고 노동강도가 강화된 속에서 서서히 신음하고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노동강도 평가와 적정 노동량의 결정은 뇌심혈관계의 질환의 필수적 요소이며, 그 위험요인을 찾는 노력이 말로 시급한 것이며, 노동강도 강화를 저지하려는 몸부림이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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